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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소용돌이 벗어나자 … 조타실 멤버 확 바꾼 현대중

중앙일보 2014.09.15 00:07 경제 4면 지면보기
권오갑
현대중공업이 조타실 멤버를 확 바꿨다. 선장을 바꾸지 않고선 ‘적자 소용돌이’를 벗어날 길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인화력 강한 권오갑 사장 선임
최길선 회장과 투톱체제 갖춰
이재성 회장은 상담역으로 물러나

 현대중공업은 14일 이재성(62) 총괄회장이 상담역으로 물러난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사장에서 회장으로 승진한지 10개월 만이다. 그는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새누리당 전 대표와 고교·대학을 같이 다닌 친구이자,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의 사돈이다. 실적 앞에선 50년 우정도 힘을 쓰지 못한 셈이다.



 현대중공업 사장은 권오갑(63) 현대오일뱅크 사장이 맡는다. 권 사장은 지난달 현대중공업 조선·해양·플랜트 부문 회장이 된 최길선(68) 회장과 함께 조타기를 쥐게 됐다. 현대오일뱅크 사장은 문종박(57) 현대오일뱅크 부사장이 맡는다. 현대중공업 그룹 측은 “그룹사 경영을 쇄신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하기 위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길선-권오갑 체제’가 헤쳐나가야 할 바다는 거칠다. 현대중공업은 2분기 1조104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1973년 창사 이후 최악의 성적이었다. 무엇보다 배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줄었다. 1~8월 전세계 조선 수주(2680만CGT)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 줄었다. 특히 한국 업체의 타격이 더 크다. 중국 수주량이 14.5% 줄어드는 동안 한국은 31.7% 감소했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하반기에도 실적 개선의 폭과 속도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적부진엔 내부 요인도 있다. 현대중공업이 대규모 적자를 낸 것은 저가 수주와 시행 착오의 영향이 크다. 수주량 감소가 경기 흐름의 문제라면, 이는 경영 판단을 잘못해서다. 게다가 노르웨이에서 수주한 해양플랜트 제조 비용이 당초 예상(12억 달러)의 두배 가까이로 불어난 것도 적자를 키웠다.



 조직도 뒤숭숭하다. 현대중공업은 19년 연속으로 무분규 임단협 타결을 해 온 회사다. 그러나 올해는 아직 임단협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노조는 파업에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긴급 투입된 ‘최길선-권오갑 팀’은 역전의 용사들이다. 최 회장은 2005~2009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을 지내며 영업이익을 25배로 늘렸다. 최 회장은 회사 창립 멤버여서 회사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나온 그는 기술분야부터 영업까지 두루 능통하다. 현대중공업 그룹의 조선 3사(현대·미포·삼호) 사장을 모두 지내기도 했다.



 권오갑 사장은 최 회장이 사장을 할 때 서울사무소장(부사장) 등을 지냈다. 78년 현대중공업 입사 후 해외플랜트 사업부, 런던사무소 외자구매부 등에서 일했다. 무엇보다 2010년 8월부터 현대오일뱅크를 맡아서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 정유업도 조선업만큼 상황이 여의치 않지만 현대오일뱅크는 올해 상반기 흑자를 냈다. 정유 4사 중 유일한 흑자다. 대주주의 신망도 두텁다. 현대축구단 단장을 지낸 그는 현재 한국실업축구연맹 회장과 프로축구연맹 총재를 맡고 있다. 최 회장이 돌아와 비상 경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권 사장까지 현대중공업으로 다시 불러들인 데는 ‘인화와 소통’이란 권 사장의 장점이 한 몫했다.



그는 사원급 직원은 물론이고 건물 청소 용역 직원까지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오일뱅크 사장으로 갔을 때는 사장용 에쿠스를 결혼하는 직원의 웨딩카로 사용하도록 조치했다. 2012년엔 모친상을 회사 내부에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치르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노조와 대화를 권 사장만큼 원만하게 풀어갈 인물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사 협의가 발등의 불이라면, 경영체제 정비는 권 사장이 책임져야할 중장기 과제다. 현대중공업 그룹은 이번 인사를 통해 중공업 기획실을 그룹 기획실로 확대 개편했다. 실장은 권 사장이 맡는다. 회사 관계자는 “보다 효율적인 경영체제를 위한 것”이라며 “그룹 전체가 위기감을 가지고 비상 경영을 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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