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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겨울 … 푸틴 히든 카드 꺼낼까

중앙일보 2014.09.14 16:49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하면서 표정관리에 들어간 사람이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을 지원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가스 성수기인 겨울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은 우크라이나와 그 후견인인 유럽을 동시에 압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2009년 가스대란 때처럼 온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갈 수 있는 무기를 다시 한 번 꺼낼 수도 있다.



미국의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BI)는 최근 "푸틴이 가진 비장의 카드는 '다가오는 겨울'"이라고 했다. BI는 "겨울이 시작되면 우크라이나의 가스 저장량이 떨어져 갈수록 푸틴이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푸틴 대통령도 한 인터뷰에서 "러시아를 빼고 어느 누구도 그것을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고 경고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의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은 소강상태다. 이달 초 잠정 휴전 합의 후 간간이 충돌이 일어나는 정도다. 반군을 지원하는 러시아는 장기전에 대비하며 우크라이나의 약점을 공략할 준비를 하고 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최종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는 최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의 '국가 지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처럼 동부지역도 러시아에 합병하거나 독립시키겠다는 의도일 수 있다. 이에 대해 아르세니 야체뉵 우크라이나 총리는 13일 "푸틴이 동부 도네츠크와 루간스크만을 원하는 게 아니라 전 지역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독립국 지위 박탈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의 최종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가스관 카드'는 협상이나 압박에 요긴하게 쓰일 게 틀림없다. 특히나 겨울철을 앞두고는 더욱 그렇다.



러시아는 친유럽·서방노선으로 완전히 돌아선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압박하기 위해 벌써부터 정지작업에 들어갔다. 역시 무기는 가스였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는 50%나 된다. 지난 4월에는 수출가격을 한꺼번에 80%나 올려버렸다. 이전까지 1000㎥당 268 달러였던 가스 값은 485달러로 폭등했다. 다행히 겨울을 벗어나는 시점이어서 큰 타격은 없었다. 하지만 이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6월16일에는 아예 수출을 중단해버렸다. 우크라이나가 가스대금 53억 달러를 연체했다는 구실을 붙였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자구책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러시아로부터의 가스공급이 막히자 우크라이나는 유럽국가들이 러시아에서 수입한 가스를 역수입했다. 그러자 이를 막기 위해 러시아가 슬로바키아·폴란드·헝가리에 수출하는 가스 량을 대폭 줄여버린 것이다. 슬로바키아로부터 역수입하는 가격은 1000㎥당 약 360달러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요구하는 직수입 가격 485달러보다 훨씬 쌌다.



푸틴은 또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탄광 공격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곳에서 채굴되는 석탄을 사용하지 못하게 위해서다. 석탄이 우크라이나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나 된다. 우크라이나로서는 지하저장고에 모아둔 가스를 빼내 써야 할 형편이 됐다. 그나마 재고량이 부족해 머지않아 고갈될 수 있다. 야체뉵 총리는 지난달 28일 "우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에너지 공급을 완전히 차단하려는 계획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은 유럽 국가들도 불똥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석유회사 가즈프롬이 지난해 유럽에 수출한 천연가스는 1550억㎡로, 유럽 전체 수요의 31%에 달했다. EU는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우크라이나가 가스를 도중에 가로채 사용하면서 유럽으로의 가스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유럽행 공급량은 전체의 절반인 15%나 된다.



러시아가 가스관 밸브를 잠그기라도 한다면 유럽인은 추운 겨울에 떨어야 하고 산업도 직격탄을 맞게 된다. EU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역외로의 가스 수출 금지와 산업용 수요 제한 등 비상 수급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유럽의 가스 사업자들은 가스 비축량을 저장용량의 90% 수준으로 끌어올려 놓았다.



가스는 서방의 경제제재에 맞설 푸틴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러시아 외무부는 "우리의 보복제재가 조만간 취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악의 경우 가스 공급이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 유럽과 미국은 최근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발표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EU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거부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보도됐다.



유럽과 미국이 올 겨울에도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확대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특히 러시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유럽으로서는 밀어붙이기가 어려울 것이다. 혹독한 겨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전에 타협이 불가피하다. 푸틴은 이때를 노려 비싼 값에 가스협상이라는 히든카드를 내밀지도 모른다.



중앙SUNDAY 한경환 외교안보에디터 helmut@joongang.co.kr



사진=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 “세계경제는 아직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고 정치적 위험 또한 상존한다”며 “SCO의 무역 및 경제협력 강화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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