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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익은 자존심 회복뿐 … 무모한 독립에 제동 걸릴 듯

중앙선데이 2014.09.14 00:11 392호 6면 지면보기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운동을 주도한 앨릭스 샐먼드 자치정부수반(가운데)이 지난 9일 수도인 에든버러에서 시민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오는 18일 스코틀랜드와 영국의 운명이 판가름 난다. 이날 스코틀랜드가 307년 만에 영국으로부터 분리독립하느냐를 결정 짓는 주민투표가 실시된다. 그동안 반대가 우세했던 여론은 투표를 코앞에 두고 엎치락뒤치락 요동치고 있어 결과를 예상하기 어렵다.

[전문가 대담] 18일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찬반투표

주민투표는 양쪽에 모두 중차대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스코틀랜드로선 어엿한 독립국가가 된다는 자부심과 함께 영국이라는 보호막을 벗어나 명실상부한 자립을 이뤄야 하는 부담이 뒤따르는 모험이다. 반면 영국은 투표가 통과될 경우 영토의 3분의 1, 인구의 10분의 1을 떼어내야 하는 실질적 손실을 입는다. 이 선택을 앞두고 12일 주영(駐英) 대사 출신의 추규호 한국외교협회 부회장과 한국영국사학회장을 지낸 박지향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서양사학과 교수)을 만나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앞날을 전망해봤다.

-투표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나.
▶추규호 전 주영 대사=주영대사로 재임 중이던 2년 전만 하더라도 독립은 현실성이 별로 없다고 봤다. 하지만 지금은 예단하기 어렵게 됐다. 분리독립을 주도하고 있는 스코틀랜드국민당(SNP) 지도자 앨릭스 샐먼드를 2012년 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지금까지는 괜찮다(So far so good)”며 웃으며 말했지만 그땐 반대가 우세했다.
▶박지향 서울대 교수=반대표가 많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표 차이는 크지 않을 것이다. 스코틀랜드인들이 결국엔 ‘무모한 독립’에 제동을 걸 것으로 본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2012년 찬반투표를 수용한 건 사태를 지나치게 낙관한 결과다. 독립파 진영에 2년이라는 시간을 줬는데 샐먼드가 이를 충분히 활용했다. 지난해 표결했더라면 확실히 부결됐을 것이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캐머런 총리는 영국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 것이다.

-여론이 팽팽해진 결정적 요인은.
▶박=보수당 정권에 대한 불만이 많이 작용한 것 같다. 특히 세계 금융위기 이후 캐머런 총리가 복지를 축소했는데 스코틀랜드가 더 큰 타격을 입었다고 생각했다. 그게 제일 큰 것 같다. 스코틀랜드에서 지지율이 높은 노동당 정부 때는 상대적으로 덜했다.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스코틀랜드 태생이다. 그땐 웨스터민스터(의회)에 목소리가 그런대로 반영된다고 봤는데 2010년 캐머런 정부가 들어서면서 관계가 소원해졌다.
▶추=북해 유전이 독립 후 경제적으로 뒷받침해 줄 것으로 믿는 것 같다. 영국과 갈라설 경우 유전 소유권을 어떻게 나눌지는 협상해봐야 알겠지만 스코틀랜드는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 샐먼드의 기질과 리더십도 독립 분위기 조성에 큰 역할을 했다. 설령 이번에 독립이 안 된다 하더라도 자치권은 더 강화될 것이다. 손해 볼 게 없다는 계산을 한 것 같다.

-차별을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도 문제다.
▶추=1707년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통합된 이후 지난 300여 년 동안 법률·화폐·종교 등 여러 분야에서 자치권이 많이 주어졌다고 본다. 스코틀랜드 의회는 지금도 거의 독립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박=잉글랜드와 경제적 통합을 하면서 도움을 받은 게 사실이지만 차별당해 왔다는 의식이 강한 것 같다. 일종의 ‘2등 국민’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갈라설 정도로 차이가 큰가.
▶박=인종적으로 보면 앵글로색슨과 켈트족으로 나뉜다.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영국 섬에 들어온 앵글로색슨족이 켈트족을 밀어냈다. 북쪽에 남아 있는 원주민 지역이 스코틀랜드다. 통합 후에도 앙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스코틀랜드인은 선진 잉글랜드 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정체성을 유지해야 하는 불편한 이중감정을 가지고 있다. 민족감정은 생각보다 컸다.

-영국은 어떤 노력을 해왔나.
▶추=의회 민주주의의 탄생지로서 피통치자의 동의라는 면을 강조해왔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할지, 남을지는 모르지만 이번 투표가 주민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했다는 측면에서 결과가 주목된다. 주민들이 독립에 찬성한다면 양쪽이 다시 협의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낼 것이다.
▶박=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왕세손 윌리엄 왕자도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스대학을 다녔다. 영국은 말로는 통합을 내세우지 않지만 이를 실천하고 제도로 만든다. 스코틀랜드 왕(제임스 6세)으로 영국 왕이 된 제임스 1세는 교과서에 ‘제임스 1세 및 6세’라고 표기할 정도로 스코틀랜드의 자존심을 세워준다. 이처럼 제도가 아무리 보완해 줘도 뿌리 깊은 저항감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추=독립이 되더라도 새 정부가 들어서는 2016년 3월까지 계속 양측이 협상을 통해 조정해 나갈 것이다. 영국 민주주의 역사를 잘 보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좋든 싫든 협상해서 결론을 내는 전통이 있다. 협상을 통한 분리(negotiated separation 또는 consultive separation)로 갈 것 같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뭘 얻을 수 있나.
▶박=자존심은 얻을 수 있다. 그 밖엔 별로다. 노르웨이 모델을 따라가려고 하는데 경제적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추=갈라선다면 서로 경제적으로 큰 손해다. 간단치 않을 것이다. 비용이 많이 들 것이다. 영국도 인구와 국토가 줄어든다. 하지만 완전히 파탄 나는 것은 아니다. 스코틀랜드도 입헌군주로 영국 여왕을 인정하겠다는 생각이다. 호주나 캐나다처럼 영연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식구로는 남되 독자적으로는 좀 더 자치를 갖겠다는 뜻이다. 스코틀랜드는 문화적으로 상당히 고집이 세고 정체성이 강한데, 이런 건 보전할 수 있겠지만 실리는 별로 없을 것 같다.

-잉글랜드도 스코틀랜드 못지않은 타격을 받을 수 있는데.
▶박=국내정치가 더 문제다. 영국 의회 650석 중 스코틀랜드 몫은 59석이다. 이 중 40석을 노동당이 차지하고 있다. 스코틀랜드가 떨어져 나가면 보수당 영구 집권 시나리오가 가시화할 수도 있다.
▶추=그런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라도 정치권이 재편될 것이다. 300년이 넘는 통합의 역사가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은 영국 국민의 반응이다.

-영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위축되진 않나.
▶박=별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런던이 거의 모든 것의 중심이다.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면 오히려 스코틀랜드 인구는 지금의 520만 명보다 줄어들 수 있다. 스코틀랜드보다 영국이 제공하는 기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는 계속 작아지고, 잉글랜드는 커지는 현상이 아마 똑같이 진행될 것이다.
▶추=영국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 영국은 여전히 막강한 외교력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 위상보다는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한국의 교역 규모가 영국을 따라잡았지만 아직 외교력에선 비교가 안 된다. 혹자는 영국더러 ‘곱게 늙어간다’고 하는데, 대영제국은 쇠퇴해 가지만 국력보다는 여전히 외교력이 훨씬 강하다.

-결국 영국 정부에 달린 건가.
▶박=캐머런 정부가 조만간 큰 선물을 던져줄 것 같다.
▶추=샐먼드는 주도면밀하고 영민하다. 중앙정부와의 협상에 능하다. 선동도 하고 끌고 가는 힘이 강하다. 중앙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캐머런 정부가 샐먼드를 상대하기는 상당히 까다로울 것이다.


한경환 기자 helmu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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