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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시절엔 ‘어둠 속 횃불’ … 외연 확대 뒤 “정치화” 비판

중앙선데이 2014.09.14 00:40 392호 11면 지면보기
정의구현사제단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엇갈린다. 지난해 11월 사제단 소속 문규현(왼쪽)박창신 신부가 전북 군산시 수송동 성당에서 열린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에 들어서고 있다. [중앙포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이 오는 26일로 창립 40주년을 맞는다.

40주년 맞는 정의구현사제단

 독재정권 시절, 사제단은 ‘암흑 속의 횃불’로 불렸다. 사제단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고통과 박해의 길을 자청했다. 2014년 현재, 사제단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단으로 갈린다. “가장 낮은 곳에 임하셨던 예수의 길을 따르는 사제들”이라는 지지와 “초심을 잃고 정치적으로 편향돼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엇갈린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우리 사회에 종교의 사회참여라는 화두를 던졌다. 사회참여의 최전선에 서 있는 사제단, 불혹을 맞은 이들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사제단은 유신정권이 정점으로 치닫던 1974년 9월 26일 결성됐다. 직접적 계기는 지학순(1921~93) 주교의 투옥이었다. 같은 해 7월 6일 바티칸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던 그는 김포공항에서 중앙정보부에 연행됐다. 성모병원에 연금된 그는 “진리에 반대되고 민주헌정을 파괴한 유신헌법은 무효”라는 성명을 배포한 뒤 구속됐다.

 9월 26일은 한국순교자축일이었다. 이날 사제단은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한 뒤 ▶유신헌법 철폐와 민주헌정 회복 ▶긴급조치 해제와 구속인사 석방 등을 요구하는 제1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초대 대표는 박상래 신부가, 총무는 함세웅 신부가 맡았다.

 87년 민주화를 이뤄낼 때까지 사제단은 민주화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80년 5월 30일 광주교구 사제단이 ‘광주사태에 대한 진상’ 발표를 한 것을 시작으로 전두환 정권 내내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힘썼다. 85년 김근태 민청련 의장 고문사건, 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규탄하고 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폭로한 것도 사제단이었다.

 이후 사제단 활동은 외연을 확대한다. 통일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사제단은 89년 밀입북한 임수경씨의 동행귀환을 위해 문규현 신부를 북한에 보냈다.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90년대 말 이후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운동 등을 주도한 사제단은 2000년대 들어 주요 사회적 이슈마다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차기 전투기(FX) 사업, 새만금 간척사업, 부안 핵폐기장 건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등 굵직한 국책사업에서 반대 목소리를 냈고, 2000년대 중반 이후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삼성 비자금사건 폭로 등 경제 이슈에도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광우병 촛불집회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보수세력의 공격을 받았다. 최근에는 사제단 소속 박창신 원로신부가 시국미사에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사건과 관련해 북한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

바티칸 “사회참여는 교회의 책임”
가톨릭은 종교의 사회참여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까. 중앙SUNDAY는 사제단 바깥에서 활동하는 10여 명의 주교, 원로 사제, 신부들에게 질문을 해 봤다. 사제단 활동을 지지하고 비판하는 입장은 서로 달랐지만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다.

 교황 요한 23세는 현대 가톨릭 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90년 만에 공의회를 소집했다. 후임 교황 바오로 6세까지 이어진 공의회는 중대한 개혁적 결정들을 내렸다. 라틴어로만 진행되던 미사에 각 나라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했고, 평신도의 역할을 새로 규정했다. 사회적 불의에 개입하는 교회의 ‘예언자적 책임’도 명시했다.

 서울대교구 대변인 허영엽 신부는 “가톨릭의 사회참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기본정신이기도 하고 종교와 사회·국가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사회참여란 가난한 사람들,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 신부는 “사제단은 우리 현대사에 한 획을 그었고 지금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가톨릭이 ‘보편교회’란 의미가 있는 만큼 신자들 사이에서도 사제단 활동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가톨릭 최고협의체인 주교회의 이영식 미디어부장은 “가톨릭이 사회참여 교리를 반세기 동안 이어왔지만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요한 23세 이후 교황들은 같은 기조를 유지해 왔다. 교계에선 “파격적 실천을 몸소 행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이후 많이 알려졌을 뿐, 가톨릭의 적극적 사회참여는 계속돼 왔다”고 말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1월 즉위 후 처음 발표한 교황권고문 ‘복음의 기쁨’에서 “사목자들은 인간생활과 관련되는 모든 것에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다”면서 “누구도 종교가 사적인 영역에 국한돼야 하고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도록 준비하기 위해서만 종교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총무인 이동익 신부도 “예수님이 관심을 가지셨던 인간의 모든 문제에 교회가 관심을 갖는 것을 정치·사회개입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며 “인간의 기본적 삶에 어려움을 준다면 특정한 사람에게 투표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것 또한 교회”라고 말했다. 이 신부는 “교회가 인간성을 말살하는 공산당에 투표하지 말라고 공식 건의한 적도 있다”며 “정치에 개입하고 권력을 갖겠다는 게 아니라 인간을 향하는 것이 교회의 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제단의 활동이 큰 흐름에서 가톨릭의 사회참여 교리에 따른 것이란 데에는 가톨릭 내부에서도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방법론을 놓고서는 조금씩 생각이 다르다.

 이동익 신부는 “다른 사회단체들과 연대해서 활동할 때에는 교회의 뜻이 왜곡되거나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지, 교회를 이용하려는 게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로신부도 “사제들이 모든 사회갈등을 해결하려 하면 안 된다”며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도록 설득하고 화해하고 중재하는 노력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지금 사제단 언어는 고통과 감정의 언어”
보수성향 가톨릭 단체에선 더 가혹한 비판을 내놓는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 공동대표 서석구 변호사는 “국보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같은 주장은 북한의 대남전략에 동조하는 것”이라며 “왜 북한의 인권 문제는 침묵하면서 하느님을 부정하는 김일성 주체사상 세력들을 옹호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그는 또 “사제단의 행태는 2000년 전 예수님을 핍박했던 율법학자들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학계의 시각도 다양하다. 사제단의 지나온 길은 평가하되 앞으로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성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종교사회학회 회장인 송재룡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사제단이 사회적 정의와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제시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에 종교 영역, 성직자의 역할을 벗어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며 “분단이라는 정치적 맥락과 기억의 사슬을 고려하는 언어, 사회 구성단위의 분노를 자극하지 않는 언어를 써야 하는데 지금 사제단의 언어는 고통과 감정의 언어로 번져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정외과 박명림 교수는 “종교와 권력이 유착되고 물질숭배가 팽배한, 거대한 기업권력이 존재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는 자와 아파하는 자, 성문 밖에 있는 자를 향하는 사제단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며 “다만 사제단이 모든 사안에 대해 발언하고 현장에 있어야 하는지, 모든 사안에 완벽한 해답을 갖고 있는지는 한 번쯤 성찰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동현·유재연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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