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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의 ‘음악 발전소’에 200년 뒤 록 둥지 튼 헨드릭스

중앙선데이 2014.09.14 01:01 392호 14면 지면보기
런던 메이페어 지역의 브룩 스트리트 23/25번지. 영국 클래식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하나인 헨델을 기리기 위한 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헨델은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에서 47년을 살다가 영국에서 죽었다. 이곳은 그가 1723년부터 사망한 1759년까지 살았던 집으로 오라토리오 메시아 등을 작곡한 곳이다.

영국 록의 원류를 찾아서 ② 런던 속 로큰롤 성지들

공교롭게 200년 뒤 이 건물 안에 또 다른 불세출의 음악인이 살게 된다. 미국 출신이지만 영국으로 건너와서야 스타로 거듭난 기타리스트. 바로 지미 헨드릭스다. 미국에서 좀처럼 상업적인 성공을 보지 못하던 헨드릭스는 뉴욕의 ‘카페 와(Wha)?’에서 그의 공연을 본 록밴드 애니멀스 출신의 베이시스트 체스 챈들러에 의해 재발견된다. 챈들러는 헨드릭스에게 런던에서 활동할 것을 제안하고 헨드릭스는 1966년 9월 24일 기타 한 대와 단돈 40달러를 들고 런던에 도착한다.

이후 런던 로큰롤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은 “헨드릭스를 처음 본 날 ‘나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훗날 회고하기도 했다. 68년부터 여자친구와 브룩 스트리트에서 살기 시작한 헨드릭스는 헨델이 한때 같은 건물에 살았다는 얘기를 접한 뒤 그의 음악에 심취했고 종종 집안에서 그의 유령이 보인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그가 헨델의 음반을 종종 구매하던 HMV 음반매장은 아직도 영국의 대표적인 대형 음반매장으로 영업중이다.

헨드릭스 전문가들은 그의 말기 공연 연주에 헨델의 영향을 받은 기타 리프가 자주 등장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클래식과 로큰롤의 기묘한 첫 만남. 이는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헨드릭스가 살던 공간은 현재 헨델 박물관의 행정사무실로 사용 중이다.

켄싱턴의 머큐리 자택엔 끝없는 팬 행렬
런던의 많은 랜드마크들은 로큰롤과도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영국 여왕이 거주하는 버킹엄궁은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로 인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정규 음반을 발매하기도 전에 EMI 음반과의 계약이 파기된 섹스 피스톨스는 77년 3월 10일 A&M 음반과의 계약식 서명행사를 버킹엄궁 앞에서 갖는다. 행사 이후 만취 상태로 A&M 음반사를 방문하는 등 통제불능의 상황이 계속 이어지자 결국 6일 뒤 계약이 파기됐다. 우여곡절 끝에 버진 음반과 계약한 그들은 유일한 스튜디오 음반인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를 10월에 발매한다.

런던 최고 명물인 빅벤 시계탑은 후(The Who)의 데뷔 음반인 ‘The Who Sings My Generation’의 수출용 음반 표지 배경으로 사용됐다. 템즈 강에 놓은 다리들 중 유명한 타워브리지는 폴 매카트니가 이끈 윙스의 78년작 ‘런던 타운’ 음반과 헤비메탈 밴드 아이언 메이든의 2000년작 ‘브레이브 뉴 월드’ 음반 표지에 등장한다. 바터시 발전소는 핑크 플로이드의 ‘애니멀스’ 음반에서 돼지 풍선이 떠 있는 표지로 유명하다. 표지 촬영 당시 돼지 소품이 줄에서 떨어져 인근 비행장 활주로에 착륙하는 웃지 못할 일이 생기기도 했다.

하이드 공원은 역사에 남을 야외 공연들로 유명하다. 69년 롤링 스톤스와 76년 퀸 공연이 대표적이다. 모두 20만여 명을 동원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공식집계가 아니어서 양측 팬들은 서로가 최다동원 기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살다가 숨진 인근 켄싱턴 지역의 저택 담은 늘 세계 도처에서 찾아온 팬들이 남긴 추모 편지들로 도배돼 있다. 프레디는 잘 알려진 대로 동성애자였지만 이 집은 그가 사랑했던 여인에게 유산으로 남겨줬다.

9만석 규모의 영국 최대 실외경기장 웸블리는 스포츠가 아닌 로큰롤에서도 중요한 행사가 여러 차례 개최됐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기아문제 해결을 위해 가수 밥 겔도프의 제안으로 85년 7월 13일 열린 라이브 에이드가 대표적이다. 미국 필라델피아 JFK 경기장과 함께 두 곳에서 동시에 진행됐는데 시차로 런던에서 먼저 시작됐다. 레드 제플린과 후 등 전설적인 밴드들이 해산 이후 처음 무대에 오르는 등 100여 아티스트가 참가했다. 록밴드 제네시스의 드러머 필 콜린스는 시차를 이용해 런던 공연을 마친 뒤 이제는 퇴역한 당시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기로 미국으로 이동, 두 곳에서 연주하는 놀라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인디문화 중심 캠든, 패션과 맛의 거리로
캠든 지역과 중심도로인 캠든 로드는 영국 인디 문화의 중심지다. 상업적으로 변모한 패션 매장과 식당들이 가득하지만 60년대 중반부터 라운드하우스 공연장을 중심으로 개성 있는 로큰롤 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미국의 도어스가 유일하게 영국에서 공연한 곳도 라운드하우스로, 이곳에서의 공연 실황은 비공식 음반으로 발매되기도 했다. 전설적인 펑크록밴드인 클래시의 77년 데뷔 앨범 재킷도 캠던에서 촬영됐다. 밴드가 연습하던 스튜디오 바로 건너편 계단에서 촬영됐는데 지금도 형태를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어 아직도 찾아오는 팬들을 즐겁게 해준다.

80년대 초 음악차트를 석권했던 매드니스도 캠든 출신으로 그 어느 아티스트보다 이 지역을 노래와 뮤직비디오에 잘 담아냈다. 90년대에 들어 캠든은 블러·스웨이드와 펄프 등을 앞세워 세계적인 음악현상이 된 ‘브릿팝’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이 지역의 대표 공연장인 코코는 브릿팝의 후예인 콜드플레이가 사랑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뮤직비디오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MTV 방송의 런던 겸 유럽 본부가 이곳에 자리 잡았다는 점은 문화 아이콘으로서 캠든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캠든은 인기 여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사랑하고 2011년 7월 23일 생을 마감한 장소이기도 하다. 선배 로커들인 지미 헨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커트 코베인 등이 사망했을 때와 같은 27세였다. 지금도 에이미가 살던 집 앞의 나무는 팬들이 남긴 추모 편지들로 늘 뒤덮여있다.

런던 남부의 반스는 규모는 아담한 지역이지만 로큰롤에서 중요한 몇몇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로 기억된다.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 사망 소식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77년 9월 16일 로큰롤 세계에는 반스발 충격적인 뉴스가 또 한 번 퍼진다. 로큰롤의 큰 줄기가 된 글램록 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 티 렉스의 마크 볼란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여자 친구가 운전하던 미니 GT 승용차를 함께 타고 귀가하다 단풍나무를 들이받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 장소에는 이제 그의 추념비가 세워지고 팬들이 남긴 편지들로 뒤덮인 성지가 됐다. 차가 들이받은 나무는 언젠가부터 볼란 나무로 불리고 있다.

시각적 스타일을 중시하던 글램록의 선구자였던 만큼 이곳 추념비에는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형형색색의 장식물들이 걸려 있어 마크 볼란이 강조하던 스타일을 대변해 주고 있다. 죽어서 이름과 음악 말고도 스타일까지 남긴 진정한 스타일리스트 뮤지션인 마크 볼란의 성지는 규모는 작지만 여운만큼은 오래가는 곳이다.

숱한 거물 낳은 올림픽 스튜디오
반스의 중심도로인 처치 로드에는 수많은 음악인이 거쳐 간 녹음 스튜디오가 하나 있다. 바로 올림픽 스튜디오다. 로큰롤 역사에서 런던의 애비로드나 미국 LA의 선셋 만큼이나 중요한 스튜디오로 기록되는 명소다. 몇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지금은 작은 영화관과 카페로 변모했지만 녹음 스튜디오 기능도 조만간 다시 갖추게 될 것이라고 현장 관리자가 귀띔했다.

올림픽 스튜디오의 전성기 때 이곳에서 녹음된 곡들과 음반들은 지금도 로큰롤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롤링 스톤스의 ‘Beggars Banquet’, 지미 헨드릭스의 ‘Are You Experienced’, 후의 ‘Who’s Next’, 퀸의 ‘A Night at the Opera’ 등은 이곳에서 녹음된 음반들의 일부일 뿐이다. 비틀스도 올림픽에서 ‘All You Need Is Love’ 곡을 녹음했다.

그러나 올림픽 스튜디오 하면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밴드는 다름 아닌 하드록의 원조인 레드 제플린이다. 기타리스트 지미 페이지가 동료 기타리스트인 제프 백이 선물로 준 펜더 텔레캐스터 기타를 들고 녹음을 위해 올림픽 스튜디오를 처음 들어갔을 때 제플린은 정식 음반 계약도 하기 전이었다. 한정된 예산에 유료로 운영되는 스튜디오 안에서 긴 시간을 보낼 수 없었던 이들이 1집 녹음을 위해 스튜디오 내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 36시간. 음반 발매 직후 언론 평도 부정적이었다. 미국의 한 유력 음악전문지는 보컬 로버트 플랜트를 로드 스튜어트와 비교하면서 “목소리에 활기찬 맛이 없고, 이 밴드가 성공하려면 프로듀서부터 다시 찾아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몇 달 만에 기우로 나타났고 제플린은 결국 로큰롤의 역사를 웅장하게 다시 써내려가게 된다. 이후 이들은 올림픽 스튜디오에서 4장의 음반을 더 녹음했다. 레드 제플린 1집에 대해 악평을 쓴 위의 음악전문지는 수십 년 뒤 이 음반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로큰롤 음반 500선에서 29위에 올려놓았다. 모든 역사의 위대한 장면들이 항상 거창하게 시작된 것만은 아니다. 로큰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조현진 YTN 기자·아리랑TV 보도팀장을 거쳐 청와대에서 제2부속실장을 역임하며 해외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1999~2002년 미국의 음악전문지 빌보드 한국특파원으로서 K팝을 처음 해외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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