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즘 웰빙가에선] 비만 예방교육의 정석

중앙선데이 2014.09.14 01:50 392호 22면 지면보기
올 초 미국 연수 때 경험한 일이다. 주 관심사가 비만 치료이다 보니 어딜 가더라도 먹거리나 특이한 운동들엔 눈길이 갔다. 우연히 보스턴의 한 음식점에서 보게 된 어린이 전용 메뉴판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미국에서도 대부분의 음식점에선 어린이 메뉴판엔 아이들을 유혹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마카로니와 치즈·파스타·치킨·햄버거 중 하나와 과일주스나 우유 같은 음료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메뉴판이 ‘강요’한다. 하지만 보스턴의 그 식당에선 아이들 메뉴판에 단백질·채소·곡류·과일·유제품 등 각종 영양소를 대표하는 식품군(群) 별로 선택할 수 있는 음식들을 나열한 뒤, 각 식품군마다 한 가지씩을 골라 주문하도록 했다. ‘영양이 골고루 든 패키지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단백질·채소·곡류·과일·유제품으로 분류된 메뉴판을 앞에 두고 각 식품군에서 어떤 음식을 골라 먹을까 머리를 싸매고 있는 아이들을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린이 비만 환자들을 진료할 때면 식판을 직접 그려가면서 식판의 각 부분에 단백질·탄수화물·지방·비타민·미네랄 등을 잘 채워서 먹어야 한다는 것을 늘 강조하곤 한다. 이런 것들을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하도록, 착한 메뉴판을 제공하는 식당을 발견한 것이 너무나 반가웠다.

일러스트 강일구
국내 대부분의 학교에선 영양교사와 보건교사를 두고 있다. 어릴 때부터 건강에 이로운 먹거리 선택법을 가르치고, 건강한 생활습관이 몸에 배도록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이 잘 갖춰진 셈이다. 요즘은 학교에서 영양성분 표시 읽는 법을 가르치고 음식들을 신호등 색깔로 구분해서 건강에 유해한 정도를 알려주기도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이런 것들을 배우다 보니 아이는 아는데 오히려 부모들이 모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얼마 전 비만치료를 받기 위해 진료실에 온 10세 남아는 영양에 대한 지식이 매우 해박했다. 내심 놀란 나는 함께 온 엄마에게 “아이가 이렇게 많이 알고 있으니 앞으로 치료에도 잘 따라 올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이는 “제가 아는 게 많으면 뭐해요. 장보고 밥 해주는 엄마는 하나도 모르는데…”라고 말하는 것 아닌가.

먹거리 교육은 연령대에 따라 약간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생은 아직 스스로 음식을 선택할 능력이 안 되고 대개는 부모가 해 주는 음식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내가 해보니 이 시기엔 아이보다 부모들을 대상으로 먹거리 교육을 실시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초등학교 고학년생들은 직접 가르치는 것이 더 나았다. 이 연령대에선 또래와 어울려 다니며 음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사 먹는 경우가 많아서다.

요즘 젊은 엄마들 사이에선 현장 체험학습이 인기다. 휴일에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곳에서 아이들과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워서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영양 등 먹거리 지식들을 확실한 것으로 만드는 현장 체험학습은 의외로 쉽다. 주말마다 가족이 함께 장을 보면서 영양표시를 읽고 나트륨이 적은 면류 고르기, 지방과 나트륨이 적은 치즈 선택하기, 혈당을 빠르게 올리는 단순당(單純糖)이 적게 첨가된 유제품 찾아보기 같은 것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복습효과가 있다.


박경희 한림대 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