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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앞서 가는 상품 개발 비결은 “끊임 없이 실수하라”

중앙선데이 2014.09.14 02:32 392호 24면 지면보기
이케아 창업자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소문난 구두쇠다. 아껴야 할 것에는 돈뿐 아니라 시간도 포함된다. ‘지금 당장 책임을 떠 맞지 않으려 다음 회의 때까지 문제 해결을 미루는 것’ 따위를 혐오한다. 아울러 직업 윤리와 노동의 기쁨을 강조한다. 그 자신 이렇다 할 취미 하나 없이 70여년간 일에 몰입했다. 이케아 매장에 선 캄프라드. [사진 이케아 홈페이지]
최근 온라인 상의 각종 광고·마케팅 전문가 그룹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된 동영상이 있다. 스웨덴의 글로벌 가구업체 이케아(IKEA)가 얼마 전 내놓은 2015년 카탈로그 홍보물이다. 영상은 전개 방식이며 배경음악, 모델들의 손놀림까지 애플의 2010년 아이패드 광고를 빼닮았다. 카탈로그의 날렵한 옆 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해, 간단한 손놀림으로 (책을 펼치면) 인터페이스를 두 배로 확장할 수 있다거나, 케이블이나 배터리 없이 영원히 쓸 수 있고, 콘텐트 또한 무료라는 식의 설명을 천연덕스레 이어간다. 이케아 카탈로그야말로 아름답고 혁신적이며 놀라운 기능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39> 이케아 설립자 잉그바르 캄프라드

허세나 코미디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런 식의 패러디를 이케아가 하니 조금도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외려 ‘아, 잡지도 아이패드 이상으로 멋진 디바이스였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위트 있고 세련된 상상력을 펼쳐 보이는 이케아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케아는 이미 5, 6년 전 집 내부를 찍은 사진 위에 가구 이미지를 끌어다가 가상의 공간을 꾸며볼 수 있는 모바일 앱을 출시해 정보기술(IT) 동네 사람들을 감탄케 한 적이 있다.

실용적인 것, 앞서가는 것, 능동적인 것은 이케아의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이자 유전자(DNA)다. 이를 앞세워 이케아는 43개국, 349개 대형 매장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매출은 292억 유로(약 40조4000억원)에 이른다. 곧 우리나라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박리다매로 해외시장 공략 주효
이케아 제품은 정말 싸다. 6단 책장이 9만원, 의자가 3만원, 다리미판은 6000원 정도다. 품질 또한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밝고 단순하며 실용적인 북유럽 스타일 디자인이 강점이다. 가구뿐 아니라 조리기구, 이불 보, TV까지 1만여 개 생활용품을 판매한다. 이를 통해 세계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이케아는 친절하지 않다. 저렴한 대신 소비자가 직접 물건을 날라와 조립해야 한다. 한데 이 귀찮은 과정을 많은 이들이 즐긴다. 직접 조립한 만큼 더욱 애착이 간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이케아 효과’라 부른다. 이 회사가 ‘스웨덴식 디즈니랜드’라 불리는 연유다.

1943년 이케아를 설립하고, 지금까지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는 잉그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88)다. 포브스에 따르면 약 52조원의 재산을 가진 세계 5위 부자(2013년)다. 고집 센 구두쇠인데다 까다롭고 가부장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놀라운 추진력과 통찰력을 지닌 유럽의 대표적 기업인이다. 대출도, 투자 유치도, 주식 공개도 거부한 채 ‘이케아 왕국’이라 불릴 만한 거대한 기업 집합체를 구축했다. 절세가 지나쳐 늘 탈세 의혹에 시달리고, 젊은 시절 나치즘에 경도됐던 전력으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반세기 이상 ‘아름답고 기능 뛰어난 가구와 집기들을 최대한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목표를 철저히 추구함으로써 위대한 창업자의 반열에 올랐다.

캄프라드는 직업학교 졸업반이던 17세 때에 통신판매업체인 이케아를 창업했다. 애초 잡화를 취급하던 이케아는 1940년대 말 가구에 눈을 돌린다. 장사는 잘 됐지만 경쟁 치열한 통신판매업계에서 도약하려면 계기가 필요했다. 고심하던 그는 1953년 고향 인근 대도시 엘름홀트에 첫 전시장을 연다. 첫 날에만 천여 명 이상이 다녀갈 만큼 큰 화제가 됐다.

캄프라드는 사업 초기부터 박리다매를 신봉했다. 디자인 단순화와 대량 주문을 통해 단가를 낮췄다. 철제 빨래바구니는 통조림 공장에, 쇠 다리가 달린 탁자는 쇼핑카트 제작공장에 맡기는 식으로 공급처를 다변화했다. 다른 가구업체 디자인을 살짝 변형해 훨씬 저렴하게 팔거나, 제품 판매가 금지된 전시회에서 버젓이 장사하는 행위도 마다치 않았다. 기존 가구상들의 보이콧으로 결국 스웨덴 내 공장들로부터 충분한 물량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자 캄프라드는 폴란드로 눈을 돌렸다. 당시 사회주의 국가이던 폴란드의 계획경제는 장기 계약과 대량 생산이란 이케아의 제품수급 정책과 잘 맞아 떨어졌다. 덕분에 이케아 가격을 더 낮출 수 있었다. 이를 무기로 본격적인 해외시장 공략을 시작했다. 훗날 캄프라드는 이런 말을 했다. “위기가 전화위복이 됐다. 쉬지 않고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한 결과다. 부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조금도 유리하지 않다.”

“실수는 행동하는 자의 권리”
1970년 스톡홀름 외곽지역에 있던 매장에 큰 불이 났다. 이케아는 이 또한 재도약의 계기로 삼았다. 캄프라드는 현장 직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소비자들이 가구 구매 과정의 80%를 담당하는 캐시 앤 캐리(cash and carry) 시스템을 구축했다. 매장에는 레스토랑과 어린이 놀이공간을 설치했다. 매장을 라이프 스타일 놀이터 내지 가족 소풍 장소로 탈바꿈시켰다. 레스토랑에서 파는 핫도그 또한 소비자가 직접 만들어 먹게 했다. 이로써 가격을 외부의 절반으로 낮췄다.

독일·영국처럼 전통 깊은 유럽국가에 진출할 때는 스웨덴 특유의 사회민주주의적 색채를 강조했다. 생각이 젊고 자유로운 이들이 택하는 가구, 의사든 청소부이든 누구나 부담 없이 사서 즐겁게 쓸 수 있는 가구.

이러한 브랜드 이미지는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발행 부수가 많다고 알려진 이케아 카탈로그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매년 2억2000부 가량 발행하는 이케아 카탈로그에는 오늘날 가정과 사무실의 시대상이 오롯이 투영돼 있다. 동성 부부, 여러 인종이 뒤섞인 가족, 유행하는 음식과 책들이 놓인 거실. 세계 소비자들은 이 카탈로그를 보고 또 보면서 어느새 이케아 스타일에 중독되고 만다.

지금도 이케아의 가격 인하 노력을 계속되고 있다. 모든 제품은 생산비와 재료비, 물류비용을 낮추는 방향으로 디자인된다. 플라스틱 나사 기둥에 홈을 파서 무게를 0.1g 줄인다거나, 책상 프레임을 ‘사용에 무리가 없을 만큼’ 얇게 만들어 재료비를 줄이는 식이다.

캄프라드는 86년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경영에 깊숙이 관여한다.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애용하고 지하철 노인 할인도 빠짐없이 챙겨 받는다. 직원들에게는 “절약하라”“회사 일 외 취미를 갖지 말라”고 잔소리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임직원 서로 반말을 쓰게 하고 권한을 과감히 이양하는 등 지극히 현대적인 경영 방침을 실천한다. 아울러 “끊임없이 실수하라”고 강조한다.

그가 쓴 ‘또 다른 길’이라는 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실수는 행동하는 자의 권리다. 실수를 할까 두려워하는 것은 관료주의의 요람이고 모든 발전의 적이다. 100% 옳은 결정이란 없다. 추진력 있게 일해 보면 그 결정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실수를 얼마든지 허락한다.”(『이케아, 불편을 팔다』)

이케아의 성공 비결 역시 결국은 기업가정신이었다. 기회를 포착해, 난관과 두려움을 뚫고, 혁신적 사고와 행동으로, 시장에 새 가치를 창조하는.


이나리 은행권청년창업재단 기업가정신센터장 naree@dcam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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