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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취급받던 리위친, 전범 신세된 푸이에게 ‘한방’

중앙선데이 2014.09.14 03:12 392호 29면 지면보기
전범 푸이는 황제 시절 학대했던 네번째 부인 리위친이 면회 오는 것을 좋아했지만 결국은 이혼당했다. 붓으로 자술서를 쓰는 푸이. 1954년, 푸순(撫順). [사진 김명호]
만주 꾸냥(아가씨라는 뜻의 중국어, 姑娘) 리위친(李玉琴·이옥금)은 15세 때 만주국 황제 푸이(溥儀·부의)의 선택을 받았다. 공부시켜 준다는 말만 믿고 황궁으로 들어갔다. 시키는 대로, 하기 싫은 목욕만 며칠 간 하다가 푸이의 여동생을 따라 황궁 2층으로 올라갔다. 마지막 계단을 밟는 순간, 복도에 키 큰 남자가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일행을 발견하자 황급히 방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391>

여동생이 넓은 방으로 안내했다. 잠시 후 한 남자가 들어왔다. 방금 전, 힐끗 본 그 사람 이었다. “어깨는 넓고 허리가 가늘었다. 나이는 30 남짓, 복장이 특이했다. 시키는 대로 세 번 절하자 황급히 나를 일으켜 세웠다. 손이 뜨겁다며 불편한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머리가 아프다고 하자 내 이마를 어루만졌다.”

여자 나이 열다섯이면 한창 눈치가 빠를 때였다. 리위친은 이렇게 회상했다.

“푸이가 나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자 용기가 생겼다. 밥을 먹었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흔들었다. 몇 가지 음식이 나왔다. 아빠가 만든 것보다 맛있었다. 어느 음식점에서 사온 것이냐고 물었더니 웃기만 했다. 허기가 가시자 공부를 어디서 하느냐고 물었다. 좋은 선생을 초청해서 공부하도록 해주겠다기에 혼자 하는 건 싫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편의 유희였다.”

창춘시 도서관원 시절의 리위친. 수감돼 있던 푸이를 여섯번 면회했다.
푸이는 리위친이 먹기를 마치자 염주를 들고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부처님에게 일본 황군이 전쟁에서 이기게 해달라고 기원해라. 그래야 우리가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만주인들의 일본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해 있을 때였다. 매일 정오를 알리는 경적이 울릴 때마다, 일본 귀신들을 몰아내 달라고 속으로 기도하는 묵계가 있었다. 일제가 공자 추앙 운동을 전개하자 『논어』를 쓰레기통에 집어 던질 정도였다. 리위친은 무슨 말인지 의아했다. 훗날 푸이에게 이유를 물었다. “네가 일본군이 파견한 첩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자 이해가 됐다.

푸이가 “오늘부터 내 방에서 자라”고 하자 리뤼친은 “혼자 있는 게 편하다”며 거절했다. 푸이도 강요하지 않았다. 다음날 인사할 곳이 있다며 유모에게 데리고 갔다. 푸이는 유모 앞에서 어린애 같았다. 유모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황상(皇上), 우리 황상” 하며 푸이의 어깨를 연신 쓸어내렸다. 리위친을 소개받자 유모는 인연 타령부터 해댔다.

“딸을 해산한 날 용이 내 젖을 무는 꿈을 꿨다. 친정 엄마에게 꿈 얘기를 했더니 제대로 먹이지를 못해 애가 돌아버렸다며 통곡을 해댔다. 며칠 뒤 순친왕부(醇親王府)에서 유모를 구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기운이 없어서 다리를 휘청거리며 왕부를 찾아갔다. 보채기만 하던 황상(皇上)은 내가 안자 울음을 그쳤다. 생글거리더니 내 젖을 물고 잠들었다. 꿈 생각이 났다. 인연은 어쩔 수 없다.”

푸이는 리위친을 직접 공부시켰다. 붓글씨와 노래가 다였다. 이게 무슨 공부냐며 리위친이 화를 내자 얼굴을 붉히며 몽둥이를 들었다. “허구 많은 사진 중에서 내가 직접 너를 선택했다. 어제도 한 여자애가 왔지만 쫓아 버렸다. 내게 고마워 하며 충성하는 것이 당연하다. 일본 황태후에게도 네 사진을 보냈다.”

푸이는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휘어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멀리 가버린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지켜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죽 적어 내밀며 서명을 요구했다. 여자가 도망가고도 남을 내용이었다.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고, 생각도 나와 같아야 한다. 동쪽으로 가라면 동쪽으로 가고, 남쪽으로 가라면 남쪽으로 가라. 서쪽이나 북쪽으로 가면 안된다. 부모 형제와 친척들은 만날 생각도 하지 마라. 머리에서 지워버려라. 황궁 내에서 지정된 곳만 다녀라. 외부 출입도 엄금한다. 노래하라면 노래하고, 춤 추라면 춤춰야 한다.”

이쯤 되면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리위친의 설명을 들은 창춘시 인민법원은 전범관리소를 찾아갔다. 981번을 달고 나타난 푸이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푸이가 수긍하자 법원은 리위친의 손을 들어줬다.<계속>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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