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재숙의 ‘新 名品流轉’] 문화재 귀향 도운 YFM의 힘

중앙선데이 2014.09.14 03:18 392호 29면 지면보기
900년 만에 귀향한 고려 나전경함. 고려 미술을 대표하는 나전칠기는 국내에 한 점도 없다가 YFM(박물관의 젊은 친구들)의 후원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 됐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YFM이란 그룹이 있다. Young Friends of The Museum, 즉 ‘박물관의 젊은 친구들’의 약칭이다. 한국에서 내로라는 대기업의 젊은 수장들이 주요 회원이다. 국립중앙박물관 후원 단체인 국립중앙박물관회 산하 모임으로 2008년 6월 창립했다. 박물관회는 1974년 고(故) 최순우 선생이 주도해 만들었던 ‘청자회’의 맥을 잇고 있으니, 지난 40년 간 한국 고미술을 애호해 온 문화재 지킴이라 할 수 있다. YFM은 이 박물관회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젊은 피라 하겠다.

지난 7월 15일 서울 서빙고로 국립중앙박물관 제2강의실. 큼직한 보자기를 덮어쓴 물건 하나를 둘러싼 관계자들은 달뜬 표정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900년 만에 일본에서 돌아온 고려 나전경함(螺鈿經函)이 첫 선을 보이는 자리다. 전 세계에 9점뿐인 고려 나전경함 중 한 점이 처음 고향에 돌아왔으니 감동할 만했다.

취재진에게 환수 과정을 설명하던 신성수(62) 고려산업 회장은 “유물을 본 순간, 그 감격을 어찌…” 하고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박물관회 컬렉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좀처럼 나전경함을 내놓으려 하지 않던 일본 수장가를 설득하려 지난 가을부터 여러 차례 교토를 오간 과정을 설명했다. 가격에 관해서는 고려 불화(佛畵) 수준이라 에둘러 말했다. 전문가들은 13억원 선일 것이라 했다.

고려 나전경함의 귀향 뒤엔 YFM이 있었다. 70여 명 회원들이 자선 경매와 특별회비 모금 등 다양한 활동으로 기부금을 마련했기에 구입할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1년치 유물 구입 예산은 30억 원이 채 되지 않는 상황에서 YFM은 한국 문화재의 수호천사라 불릴 만하다. 쾌거에 고무된 회원들이 내친 김에 연말까지 고려 불화를 한 점 사서 기증하자 했다니, 앞으로 이들의 활동을 눈여겨 봄 직하다.

이번에 돌아온 나전경함은 절로 고개를 숙이게 한다. 미술에 반영된 고려의 국격(國格)이 얼마나 드높은지 가슴이 서늘해질 지경이다. 불교 경전을 담는 경함 하나에도 이토록 지극정성을 다해 찬연한 미감을 빚어냈으니, 그 초월적 의지가 고려인을 하나로 묶어 나라가 어려울 때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저런 미적 체험이 모여 고려를 이끄는 정신력으로 승화했을 터이니 우리가 구호 수준으로 외치는 문화 융성의 살아 있는 교과서다.

일본 도쿄예술대학에서 나전칠기를 전공한 이난희(47)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은퇴 고미술상인 주인이 한국에 물건을 넘기면서 서둘러 보수한 탓에 상자 전면에 장식된 모란당초무늬와 연주문 등 섬세한 문양들이 뭉개지거나 칠에 덮여져 안타깝다”고 했다. 이제 못난 후손이 할 일은 타국을 떠돌며 훼손된 나전경함의 원형을 복원하고 그 정신을 기리는 것이다. YFM이 물건을 사오는 일과 더불어 보존수복과 학술연구에도 그 큰 손을 내밀어 주면 금상첨화겠다.


정재숙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