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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필요한 ‘듀퐁 서클’

중앙선데이 2014.09.14 03:21 392호 30면 지면보기
지난 달 초 박근혜 정부가 재임 기간 중에 추진해 나갈 국가안보전략의 지침을 담은 『희망의 새시대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했다. 국가의 주권과 영토, 그리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안보상의 위협요인을 어떻게 식별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국방·외교·통일 정책 등을 어떤 기조에 따라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인가를 밝히는 것은 여러 국가정책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다. 그런 취지에서 노무현 정부 이래 역대 정권이 취임 이후 국가안보전략서를 내외에 공표하는 전통을 이어왔는데, 박근혜 정부도 뒤늦게나마 그 관행을 계승한 것이다.

새롭게 공표된 국가안보전략서는 그간 대통령이 여러 차례에 걸쳐 밝힌 국가안보정책의 기조를 고루 담고 있다. 대량파괴무기 개발, 사이버 및 테러전 등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도발이 우리가 직면한 일차적 안보위협이라고 지적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능동적 억제전략’에 기반한 확고한 국방태세 확립과 한미간 전략동맹의 발전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동시에 북한과는 대화도 추진하면서 양측 합의사항의 이행을 통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동북아 지역에서는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적 태도, 중국의 일방적 방공식별구역 선포, 역내의 도서 해양 영유권 갈등과 같은 역사와 영토 문제가 지역질서의 평화와 안정을 해칠 수 있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역내 국가들과 기후변화, 테러, 마약, 원자력 안전, 환경, 재난구조 등 협력이 용이한 분야에서의 다자간 대화와 협력을 통해 상호 신뢰를 구축하면서 동북아 평화협력을 이룩해 나갈 것임을 천명했다.

새롭게 공표된 국가안보전략서는 한국이 처한 안보정세에 비추어 적절한 기조와 정책방향을 담고 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 등 여타 국가들에서 국가안보전략서가 책정되는 과정과 비교해 보면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0년에 국가안보전략서를 책정하고 2012년에는 그에 기반한 국방전략서를 공표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오바마 대통령 자신이 국방부와 합참을 포함한 관련 분야 정책결정자들과 많은 회의를 거치면서 전략방향을 가다듬었고, 책정 이후에는 대통령이 직접 발표를 주관하거나 관련법에 따라 의회에 보고하는 절차를 밟았다.

일본도 지난해 말 공표된 최초의 국가안보전략서를 책정하는 과정에서 학계·경제계와 전직 관료들로 구성된 전문가 그룹을 조직하였고, 총리가 직접 참가하는 수 차례의 회의를 통해 초안을 만들었다. 초안 작성 이후에는 관련 부처와 여당과의 협의를 거쳐 최종 공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어느 나라든 국가안보전략은 기밀로 다뤄져야 할 사항이 적지 않아 그 세부적인 책정과정을 모든 국민에게 전부 공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선진국들은 국가안보전략의 책정과정에서 가능한 한 전문가들의 중지를 모으고 의회 등에 대한 보고를 통해 국민들에게 주요 내용을 공지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중요 국가안보정책에 대한 국가적 합의를 손쉽게 달성하고 정책 추진의 추동력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서 책정 과정에서 전문가들이나 여론 주도층의 참여를 통해 사회적 중지를 결집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가지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토도 작고 자원도 부족한 한국이 건국 이후 지난 60여년 간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그리고 국가안보의 과제들을 동시에 성취한 성공 모델이 되었던 것은 정부를 중심으로 학계·언론계·경제계·시민사회의 리더들이 상호 소통과 토론을 통해 국가발전방향에 대한 합의를 형성해 온 점이 적잖게 공헌했다. 그러한 국가발전의 방정식이 박근혜 정부의 등장 이후 동요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주요 정부 부처들의 지방 이전 이후 수도권에 집중해 있던 국책연구기관들의 상당수가 지방에 이전되면서 정책 결정자와 여론 주도층의 상호 의견교환과 소통 기회가 적지않게 감소되는 징후가 보이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국가안보전략서 책정 과정에서 사회적 중지를 모으는 모습이 부족했던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워싱턴의 듀퐁 서클이나 동경의 가스미가세키 같이 중요 국가정책에 관해 정책결정자와 여론 주도층들 간에 국가적 담론이 소통되고 사회적 중지(衆智)가 형성되는 공간을 어디엔가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박영준 일본 도쿄대 국제정치학 박사, 미국 하버드대 초빙교수, 주요 연구로 『제3의 일본』 『안전보장의 국제정치학』 『21세기 국제안보의 도전과 과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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