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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원자력 ‘새 협정’의 조건

중앙선데이 2014.09.14 03:24 392호 30면 지면보기
한국과 미국 간의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막바지를 달리고 있다.

양국의 관심사는 다르다. 미국이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핵 비확산이다. 미국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와 체결한 원자력 협정에서 농축과 재처리를 금지하는 이른바 ‘골드 스탠다드’를 도입한 이래, 다른 국가들과의 개정 협상에서도 이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한국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란 게 미 행정부와 의회의 입장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의식한 듯 국내 일각에선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얻어내지 못하면 ‘핵 주권’을 훼손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농축과 재처리 권한은 우리가 협상의 마지노선으로 삼아야 할 정도로 절박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 농축 우라늄 시장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우리가 직접 농축 시설을 보유해야 할 만큼 급한 상황이 아니다. 또 농축과 재처리 부지 선정을 놓고 빚어질 사회적 갈등 해소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것이란 점도 감안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같이 커다란 국익이 걸린 외교협상에서 민족주의적 사고에 빠져 실익을 놓쳐선 안된다는 얘기다. 농축과 재처리 권한보다 시급하게 한국이 따내야 할 진짜 실리는 따로 있다.

먼저 사용후 핵연료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거쳐야 하는 미국의 까다로운 사전동의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현재 우리가 사용중인 핵물질은 18가지다. 이에 따라 사용후 핵연료도 특성이 다른 18가지 종류가 나온다. 이를 안전하게 관리하려면 건전성 검사가 필수다. 핵연료가 사용된 뒤에는 물리·화학적 특질이 변하는데, 이를 확인하는 절차가 건전성 검사다. 이 검사 결과는 핵연료의 안전성과 직결되기에 수출에도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나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르면 이 사용후 핵연료 하나하나에 대해 건전성 검사를 할 때마다 미국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새 협정에서는 이를 바꿔야 한다. 18개 물질에 대해 한꺼번에 미국으로부터 약식 사전승인을 받은 뒤 한국 주도로 검사를 하는 것이다. 그런 뒤에 미국이 사후 검증을 하는 ‘선 시험 후 검증’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둘째, 새 협정은 1978년 국내에서 첫 원전이 가동된 이래 임시저장시설에 쌓여온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폐기물이 쌓이는 추세를 감안할 때 별다른 조치가 없다면 2016년부터 저장시설이 하나둘씩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핵폐기물 저장·운반 분야에서 앞서 있는 미국으로부터 기술 이전을 받게끔 보장하는 조항을 새 협정에 명문화해야 한다. 18개나 되는 물질을 한 가지 방식으로 저장·운반하는 건 안전성을 담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셋째, 미국에서 수입한 원자력 관련 장비와 부품을 우리가 제3국으로 재수출할 때 적용되는 미국의 통제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 현행 협정에 따르면 미국의 수출 통제 법규에 따라 허가를 받아야만 재수출을 할 수 있다. 새 협정에선 우리가 자율적으로 수출 절차를 진행한 뒤 미국이 사후에 법규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도 미국에 수출하는 원전 핵심부품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협정을 개정해야 한다. 40년 전 한·미가 원자력 협정을 맺을 당시엔 우리에게 핵물질과 핵심부품 생산·수출 능력이 없었기에 한국의 통제권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한국에 제공하는 핵물질에 대한 미국의 통제권만 명시됐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한국은 일급 원전 부품을 만들고 수출하는 나라가 된 만큼 새 협정에선 우리의 통제권 행사 근거 조항을 당연히 확보해야 한다.

정부가 목표로 삼는 ‘선진적이고 호혜적인 협정 개정’은 바로 이런 실리를 챙길 때 가능하다. 아직 원자력을 수입하는 단계에 있는 베트남·대만과 비교하더라도 수출 경쟁력 제고와 사용후 핵연료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미국의 협력을 얻어내는 것은 한국만이 할 수 있고, 해내야 하는 일이다.


박종래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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