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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박영선과 기자 본색

중앙선데이 2014.09.14 03:33 392호 31면 지면보기
“이상돈 비대위원장 영입 절대 불가”로 새정치연합이 벌집 쑤셔 놓은 듯 시끄러웠던 지난 며칠, 박영선 국민혁신공감위원장은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말이 목까지 차 올랐을 듯싶다.

‘아니 누가 당 대표 주겠대, 잠시 관리만 맡기자는 거야. 그것도 둘(안경환 추가)에게. 게다가 이상돈은 박근혜에게 팽(烹)당한 뒤 청와대·새누리당에 계속 쓴소리 하지 않았냐고.’

박 위원장으로선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이 떠올랐을지 모른다. ‘5·16 쿠데타 주모자인 유신 본당(김종필)과도 손잡았던 당이 합리적 보수 인사에게 임시로 컨설팅 맡기는 게 무슨 문제냐’고 말이다. 하지만 DJ는 되고 박영선은 안 되는, 고무줄 인심이 정치판 생리라는 건 그 역시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박 위원장은 방송기자 출신이다. 기자라면 말빨 세고, 비판 능력이 뛰어나다고들 한다. 이런 이미지에 의원 박영선은 최적격이었다. 그가 인사청문회에서 송곳 같은 질문으로 공직 후보자들이 혼쭐날 때마다 지지자들은 통쾌해했다. 또 지난해 말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외국인투자촉진법을 놓고 “법사위원장의 양심상 통과시킬 수 없다”며 버티던 모습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한다’는 기자본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선명성이 부메랑이 돼 그의 목을 조르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상돈·안경환 투톱 카드는 기자 사회 용어를 빌리자면 ‘야마(핵심) 잘 잡은’ 셈이었다. 합리적 보수와 균형 잡힌 진보 인사의 영입으로 외연을 넓히는 것만큼 새정치연합의 위기를 타개할 방안이 있겠는가. 기자 박영선이 이런 내용으로 글을 쓰거나, 방송을 했다면 백 번 박수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당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다. 훈수 두는 게 아니라 실제 일이 되게끔 해야 한다. 전혀 다른 차원이다. 세밀하고 정교한 정세 파악으로 내 편은 얼마나 되고 적은 얼마나 될지 따져봐야 했다. 반대파를 설득할 논리와 자원이 있는지, 그게 아니라면 밀어붙일 강단과 후폭풍을 견뎌낼 맷집이 있는지 판단했어야 했다. 그로선 회심의 승부수였겠지만, 자기 주변에 얼마나 사람이 없는지만 드러내고 말았다.

결과론이지만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의 첫 번째 합의안이 당내에서 거부됐을 때 박 위원장은 직을 걸어야 하지 않았을까. 명분보다 관철이 권력의 본질임을, 한 번 등을 보이면 더욱 심하게 물어 뜯길 수 있음을, 그는 간과했다. 이제 비대위원장은 물론 원내대표까지 빼앗길 상황이다.

정치인 박영선이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는, 어쩌면 기자의 미덕이라는 ‘거리두기’일지 모른다. 냉정하게 자신의 위치를 응시하는 것 말이다. 무엇을 하려 하기보다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 지를 우선 살필 때 아닌가 싶다. 시간이 썩 많아 보이지 않는다.


최민우 정치부문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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