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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이른 추석이 왜 이리 허전한가

중앙일보 2014.09.10 00:38 종합 20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종수
논설위원
이른 추석을 쇠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분주하다. 대체 휴일로 하루를 더 쉬는 관공서와 금융회사 등도 있지만 오늘부터 업무를 재개하는 일터가 많다. 그런데 명절을 지냈지만 왠지 아쉽고 허전하다. 올 추석이 절기를 앞질러 일찍 온 탓도 있을 거다. 풍성한 수확의 계절을 상징하는 한가위를 실감하기엔 9월 초는 아무래도 너무 이른가 보다. 햇곡식은 아직 덜 여물었고, 밤·대추도 익으려면 며칠 더 기다려야 한다. 묵은쌀로 빚은 송편과 철 이른 과일을 차례상에 올리자니 영 명절 기분이 나질 않고 공연히 조상님께도 죄송스럽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추석 귀성길을 다녀오는 이들이 느끼는 허전함의 밑바닥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크지 않았을까. 그나마 선물을 챙겨들고 고향에 다녀올 수 있었던 사람들은 이른 추석이라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직장을 잡지 못했거나 사정이 어려워 빈손으로 고향에 가기가 영 내키지 않았을 많은 사람들은 절기와 상관없이 이번 추석에도 명절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쩌면 추석 같지 않은 추석이 오히려 다행스러웠을는지도 모르겠다.



 추석 직전에 발표된 한국은행의 국민소득 통계는 온 국민이 올 추석 명절에 느꼈을 허전함의 실체가 혹시 침체된 경기와 경기회복에 대한 의구심일 수 있다는 우울한 증거를 보여준다. 올 2분기 (전기 대비) 실질경제성장률은 0.5%로 1년9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여기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경상성장률)이 마이너스(-0.4%)로 돌아섰다고 한다. 2분기에 국내에서 생산된 총부가가치의 현재가격이 1분기보다 줄어든 것이다. 물량으로는 0.5% 늘었는데 금액으론 0.4%가 줄었다는 것은 열심히 물건을 더 만들어 팔았는데 손에 쥔 돈은 더 적었다는 얘기다. 원화환율이 떨어져 수출을 더 해도 원화로 환산한 수출대금이 줄어들었고, 국내에서도 저물가 탓에 판매물량의 증가만큼 매출액이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기가 살아난다는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체감경기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당장 이번 추석에 명절보너스를 아예 받지 못했거나 지난해보다 덜 받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귀성길에 선물 보따리를 챙기기도 부담스럽고 명절 용돈 마련하기도 빠듯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사고 여파로 내수가 줄어든 데 이어 이번 추석에도 내수판매가 썰렁한 이유다. 실제로 2분기 민간소비는 전분기보다 0.3%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사고가 소비부진에 미친 파장이 예상보다 깊고 길었다는 얘기다. 여기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효과를 나타내기엔 추석이 너무 빨리 왔다. 국민들이 경기회복을 실감할 수 없는 판에 추석 명절이라고 갑자기 지갑을 활짝 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정부가 내놓은 경기부양책이란 것도 대부분 말뿐이었지 실제로 가동된 것은 몇 가지 되질 않는다. 그나마 시행에 들어간 부양책도 약발이 듣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것은 경기대책에 포함된 많은 법안들이 세월호 불통정국에 막혀 단 한 건도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법률로 정해야 할 경기대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이렇게 보면 추석 전에 정부가 내놓은 경제회생이란 선물보따리는 사실상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다. 정치권은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공방을 벌이느라 국민들의 추석 귀향길을 빈손으로 내몰았다. 추석을 맞아 귀성길에 나선 국민들에게 선물보따리를 쥐여주진 못할망정 어렵사리 마련한 선물마저 뺏은 꼴이다. 이러니 이른 추석이 아쉽고 허전할 뿐만 아니라 씁쓸하기까지 한 것이다.



 문제는 추석 이후다. 추석 이후에도 정치권이 민생법안 처리를 미적거리면 겨우 살아날 조짐을 보이는 부동산시장조차 다시금 위축되고, 내수소비와 투자는 아예 차갑게 식어버릴 공산이 크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석 전에 국회에 민생법안 처리를 호소하면서 “우리 경제의 맥박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고 했다. 아마 2분기 국민소득통계를 감안해서 한 이야기였을 듯싶다. 산업생산증가율은 지난 6월 2.2%에서 7월에는 0.2%로 급격히 떨어졌다. 그대로 두면 산업의 맥박이 약해지다 못해 멈출 수도 있는 지경이다. 주요 경제예측기관들은 그간 상저하고(上低下高)를 반복해온 최근의 성장패턴이 아예 상저하저(上低下低)의 저성장 구조로 고착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내수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수출여건마저 악화되고 있어 이 같은 우려가 단순히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엄포만은 아닌 것 같다.



 세상에 ‘줬다가 뺏는 것’만큼 야속한 일이 없다. 새 경제팀은 출범과 함께 야심 찬 부양책을 선보였다. 일각에선 무리수라고 일컬을 정도로 ‘지도에도 없는’ 특단의 경제회생책을 쏟아냈다. 그런데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하지 않아 이런 대책들이 시작도 못해본 채 무산된다면 국민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애초에 무리수를 둔 정부를 원망할 것인가, 아니면 세월호특별법과 연계해 무작정 법안처리를 거부한 야당의 무책임을 탓할 것인가. 추석 민심은 경제회생의 선물보따리를 누가 뺏어갔다고 보았을지 궁금하다.



김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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