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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여자 오디세이] ② 김완선과 여행하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4.09.09 00:08


















여성중앙17세에 혜성처럼 등장해 이제는 한국 댄스 뮤직의 대모로 불리고 있는 김완선을 만났다. 만들어진 삶과 자유로운 삶의 사이를 오가다 운명의 수용이 곧 자유임을 깨달았다는 그녀가 내게는 예쁘게 무르익은 와인의 인상으로 남는다.



1986년 ‘오늘밤’으로 데뷔했을 때 김완선이 내게 남긴 인상은 ‘기괴하다’는 것이었다. 요즘이야 댄스 뮤직이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눈으로 보는 음악’ 자체가 대중에게 생소한 장르였고, 그녀의 강렬한 눈빛, 화려한 의상, 관능적 몸짓은 어딘지 전위적인 느낌까지 주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오늘밤’은 음악 자체도 기묘했던 것 같다.



“그 노래는 밴드 ‘산울림’의 베이시스트가 여자 로커를 위해서 쓴 곡이에요. 원래는 밴드 음악인데 춤을 추도록 편곡을 했으니 기괴할 수밖에요. 근데 그 괴상함이 외려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움으로 들린 덕분에 엄청나게 어필을 했죠.”



그렇게 혜성처럼 등장한 17세의 소녀가 이제는 한국 댄스 뮤직의 대모로 불리고 있다. 불혹이 지난 그녀는 슬리퍼와 티셔츠, 찢어진 청바지 차림의 여전히 앳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이번에 나온 새 싱글 앨범(‘굿바이 마이 러브’)에 관한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Q : ‘굿바이 마이 러브’를 통해 “트렌디한 것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김완선만의 색깔을 찾으려 했다”고 했는데, 김완선만의 색깔은 뭐죠



그건 말로 표현이 안 되는데요. 앨범 작업이 한 일 년이 걸리다 보니까 다양한 곡을 해야 했어요. 그런데 그게 다 욕심일 뿐, 정작 ‘이게 내 곡이다’ 하는 곡은 없었어요. 왠지 전부 내 노래 같지가 않았어요. 하지만 ‘굿바이 마이 러브’는 어딘지 모르게 김완선의 냄새가 나요.



Q :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그야말로 무관심.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아요. 저에 대한 호기심이 아예 없는 거죠. 음악을 찾아 듣는 10대에게 김완선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에요. 나이 많은 이들은 저를 알아도 “신곡 나왔대. 빨리 가서 다운로드해야지” 이러지는 않고요. 그냥 TV에 나오면 “어, 김완선이네. 반갑다” 하는 정도죠. 무대에 올라가면 금방 느껴져요. 음악 방송에 나가면 10대들이 앞에 막 모여 있는데, 그 앞에선 나도 실은 아무 느낌이 없어요. 객석과 느낌이 맞아야 하는데.



Q : 음악의 소비층이 너무 아래로 내려간 탓일까요



아뇨. 그냥 저 개인의 문제 같아요. 음악은 오히려 다양해졌죠. 10년 전엔 그저 아이돌 세상이었다면, 요즘은 록이면 록, 재즈면 재즈,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하고, 그들 나름의 시장이 있어요. 나만 없지. 제가 게을렀지요. 10년 정도 활동을 안 했잖아요. 꾸준히 관객과 소통한 게 아니라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고, 그러다가 관객과의 끈을 놓쳐버리니 다시 잇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아요. 전 항상 무언가를 결정할 때마다 ‘죽는 순간 후회할까?’ 하고 스스로 물어요. 그게 제가 결정을 하는 방법이고, 그렇게 결정한 것들에 대해 미련이 없어요.



Q : 어린 시절에 이모가 “가수가 너의 천직이라는 것만 알아라”고 했다던데요



실은 외가가 음악, 무용 쪽으로 재능이 많아요. 엄마도 노래를 무척 좋아하시고, 이모들은 거의 다 창을 하세요. 따로 배운 게 아니라 그냥 어릴 때 들은 걸로 하시는 거래요.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승무를 추신 분이 저희 이모님이에요. 저도 어릴 때 창을 배우러 다녔고요.



김완선의 이모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예 매니저 한백희씨다. 그녀 역시 미8군 가수 출신이었으며, 가수 인순이를 발굴했다. 이후 김완선의 매니지먼트를 전담했고, 지난 2006년 세상을 떠났다. 또 승무를 추었다는 그 이모는 한국 고전 무용의 대가인 한영숙 명인(1920~1989). 그분에게 춤을 가르쳐주신 할아버지는 한국 근대 무용을 집대성한 벽사 한성준 명인(1874~1941)이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어마어마한 가문이다.



“기억은 안 나는데 외가댁에서 잠깐 살았어요. 그때 저희 이모들이 재미로 꼬마들 데리고 노래자랑을 시킨 적이 있는데, 제가 결승전에 올라 우리 동네에서 1등을 하고 옆 동네까지 원정을 갔었다고 해요.”



그 시절의 수수께끼 같은 일화가 있다.



“어릴 때 저는 굉장히 활달한 애였대요. 엄마가 저를 외가댁에 맡겨놓았다 찾으러 왔는데 안 간다고 막 울었대요. 엄마는 그게 섭섭했나 봐요. 나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근 채 있다가 나왔는데,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그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활달했던 제 성격이 내성적으로 확 바뀌었대요.”



이 말이 묘한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뭔가 트라우마에 가까운 일이 있었나? 그래서 기억이 지워졌나? 알 수 없다. 아무튼 외탁을 하여 가무의 소질을 타고났지만, 그녀는 노래보다는 춤 쪽에 재능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연습생 시절에 춤을 굉장히 빨리 배웠어요. 이모한테 들은 얘기인데, 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나는 쟤가 무서워요’ 그랬대요. 노래로는 미쳐본 적이 없지만 춤에는 미쳐봤어요. 저는 제 목소리나 창법이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가끔 ‘나는 만들어진 가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노래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직업이니까 하는 거지, 이걸 잘해서 꼭 멋진 노래를 부르겠다는 다짐은 없었어요. 진지하지는 않았던 거죠. 하지만 그런 것들이 쭉 쌓여 지금의 내가 됐겠지요?”



현재의 김완선과 어린 김완선, 그녀의 선택은



Q : 김완선은 철저히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아이돌의 시초이기도 합니다. 가수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힘들었을 텐데요



아뇨. 연습생 시절은 행복했어요. 통제받는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내가 선택한 길이고, 거기에 책임을 져야 하고, 성공도 하고 싶었으니까. 외려 힘든 것은 데뷔해서 활동할 때였어요. 만날 똑같은 노래 부르고, 오늘처럼 웃으며 사진 찍는 일을 가는 데마다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오늘밤’을 한 1만 번은 부른 것 같아요.



Q : 그 시절 “좋은 매니저 덕분에 귀한 영상 자료도 많이 보고 접하기 힘든 음악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고 했는데, 어떤 것들이었나요



AFKN의 ‘소울트레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흑인들이 주로 나와요. 나이트클럽처럼 스튜디오에 음악 틀어놓고 춤추고 가수들 나와 공연도 하죠. ‘소울트레인’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와 닿았다면, 그 시절의 제게 꽂힌 가수는 마이클 잭슨이었어요.



Q : 매니저인 이모의 엄격한 통제가 힘들었을 법도 한데



아뇨. 일에 관해서는 이모와 잘 맞았어요. 스마트하고 단호하고 무서우면서도 능력 있는 분이셨으니까. 갈등이 생긴 건 데뷔하고 난 후의 일들이죠. 3집 정도 내니까 한국 나이로 스무 살. 막 자아가 생기려 했는데, 그걸 이모는 억눌렀죠.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자아가 자라지 않는 것은 아니잖아요.



Q : 음악 내적 갈등인가요, 외적 갈등인가요



둘 다예요. 예를 들어, 한번은 신인 작곡가가 악보와 가사를 보내왔어요. 악보를 읽고 노래가 신선하고 좋아서 ‘예술이다! 이거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당시에 지금처럼 데모 테이프라는 게 있었다면 이모도 생각이 달랐을 텐데 이모는 나를 믿기보다는 안전한 기획으로 가고 싶어 했어요. 여기서 큰 괴리감을 느낀 거죠. 다른 예를 들면, 매니저인 이모와 24시간 붙어 있다 보니까 누군가를 만나도 꼭 같이 가야 해요. 개인적으로 누구 한사람을 단둘이 만나본 적이 없어요. 그건 외려 편했는데, 문제는 누구를 만나면 뭐라고 얘기하라고 시켜요. 내가 꼭두각시는 아니잖아요. 내 세상은 아직 너무 작아서 나를 찾고 키워가고 싶은데, 이모의 생각을 내 것처럼 얘기하게 시키니 얼마나 싫었겠어요.



Q : ‘오늘밤’의 안무는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아요. 누구 아이디어였나요



‘오늘밤’에는 따로 짜놓은 안무가 없었어요. 지금도 나 혼자 추는 춤은 즉흥적으로 추어요. 군무일 경우 맞추는 연습은 하지만. 춤을 출 때 음악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아요. 춤추기 좋은 리듬과 사운드를 만나면 더 잘 출 수 있죠. 하지만 내 노래는 그 느낌이 안 났어요. 사실 억지로 춘 거지요. 얼마 전 MBC 예능 프로그램 ‘별바라기’에서 마이클 잭슨의 ‘Love never felt so good’을 틀어놓고 설렁설렁 대충 췄더니 거기 있던 출연자들이 벌떡 일어나 찬사를 보냈어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에 내 느낌을 담아 춘 것이 좋아 보였나 봐요.



Q : 내 노래가 내 춤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는 걸 당시에는 몰랐나요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요즘 친구들은 그런 음악을 하잖아요. 저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 같아요. 너무 일찍 태어난 것 거죠.



Q : 어린 시절에 직접 곡을 쓰기도 했죠



화성학부터 오케스트라 편곡까지 작곡 수업을 따로 받았거든요. 그런데 이모는 “네가 쓴 곡이 네 이미지와 다르다”고 하셨어요. 제가 반항기가 심해요. 그래서 “에잇, 나 다시는 안 해” 하고 확 돌아서버렸죠. 나를 망쳐버리는 것으로 화풀이를 한 셈인데, 돌이켜보면 어리석었던 것 같기도 해요.



Q : 현재의 김완선이 그 시절로 돌아가 어린 김완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는 절대로 안 돌아가요. 굳이 돌아가야 한다면, 32세로 가고 싶어요. 30대 때 신 나게 놀았거든요. 방탕하게 지냈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일을 안 했어요.



Q : 자신의 곡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뭔가요



그 질문은 의미가 없어요. 대중의 기억에 제일 오래 남는 것이 나의 대표곡이니까요. 제가 어릴 때 냈던 곡들은 전부 다 좋은 곡이라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이고요. 최근 것 중에서 굳이 하나를 꼽는다면 2012년에 낸 싱글 앨범. 하지만 발매만 하고 PR을 못했어요. 싸이가 갑자기 뜨면서 타이밍이 아니구나 싶어 접었는데, 그 안에 있는 ‘오늘’이란 곡이 좋아요.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를 리메이크했는데 가사가 아름다웠어요. 에피톤 프로젝트한테 몇 살인데 이런 가사를 썼느냐고 물어봤더니, 작사자가 스물일곱밖에 안 됐대요. 역시 뮤지션들은 20대 초반이 피크인 것 같아요. 그때까지만 하고 빨리 접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나는 이때까지 하면서 남들한테는 접으래. 하하하.



Q : 몇몇 후배 가수들이 김완선씨 노래를 리메이크했더라고요



아주 좋아요. 제가 작곡한 건 아니지만, 작곡가한테도 물어봤더니 좋아해요.



Q : 가수가 자기 노래를 리메이크할 수도 있나요 전 했어요. 2002년에 한 번 했는데 또 해볼까 생각 중이에요. 아무리 새로운 곡을 불러봐도 예전 제 노래처럼 좋은 곡이 나오지 않거든요. 2002년에 CD를 두 장 냈어요. 하나는 신곡으로만 10곡 채우고, 하나는 전부 제 노래를 새롭게 편곡해서. 그때 제가 시도한 게 일렉트로닉이라는 장르였는데 너무 앞서갔죠.



Q : 앨범 제작도 했죠.



‘오룡비무방’이던가 ‘다섯 마리 용이 날면서 춤추는 집단’이라는 뜻인데, 아이디어는 이모가 내고 저는 나중에 돈만 투자했어요. 이모는 사람들의 재능을 알아보는 독특한 재능이 있어요. 아무리 묻혀 있어도 딱 재능을 알아보고 곡을 써보라고 하죠. 걔들이야말로 진짜로 스튜디오에 감금당했어요. 오후 4~5시에 와서 다음 날 새벽 5~6시에 가는데 그때마다 곡이 하나 만들어져 있어요.



‘오룡비무방’의 노래를 쓴 분은 정말 훌륭한 뮤지션이었어요. 타이틀곡으로 삼은 것이 ‘빕밥바 룰라 룰라’인데, 펑키 장르예요. 당시는 힙합이 대세라 수록곡 열 곡 중 아홉 곡은 힙합이고, 그거 하나만 펑키였죠. 그런데 이모랑 나의 취향이 펑키인 게 문제였어요. “이거 정말 좋다. 이걸 타이틀로 하자”고 했는데 잘 안 됐죠. 열 곡 중 아홉 곡이 다 타이틀이 될 만했고, 한 곡만 좀 떨어졌는데 하필 그걸 타이틀곡으로 삼았으니. 안 되려면 뭘 해도 안 돼요. 어릴 때는 당돌하게 ‘내 인생은 내가 만들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운명이란 게 있나 봐요. 내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하지만 그런 일을 겪다 보니까 포기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다릴 줄 알게 된 것 같아요.



Q : 제작자로서 후배 가수를 양성하는 일도 했는데요



4년 전에 1년 반 정도 했죠. 그 친구한테 투자를 많이 했어요. 사무실도 차리고, 사람도 쓰고, 여기저기 학원도 보내고. 그런데 갑자기 임신을 하는 바람에 결혼하고 그만뒀어요. 예쁜 애는 남자들이 가만히 안 놔두나 봐요. ‘만날 시간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했는데 연기 학원에서 함께 연기 배우던 남자애가 채간 거예요. 패션쇼에도 세우고 해서 화장품 모델 제의가 들어온 바로 그 타이밍에 그렇게…. 지금은 아이 키우면서 잘 살고 있어요. 운명인지도 모르죠. 꼭 연예인이 되어야 행복한 건 아니니까요.



Q : 흥미롭게 지켜보는 후배 가수가 있나요



투애니원, 지디, 태양의 팬이에요. 걸 그룹들은 고만고만한 것 같아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다들 고르게 잘해요. 지디와 태양은 음악을 만드는 게 멋있어요. 표현 자체도 훌륭해서 자극을 받죠. 투애니원은 노래를 잘해요. 가수로서 훌륭한 프로듀서를 만나는 것도 참 복이라고 생각해요.



Q : 걸 그룹의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너무 많다는 거 아닐까요. 누가 누군지 구분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니까. 물론 10대의 눈으로 보면 다르겠죠. 어쩌면 구별을 못 한다는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고, 그 순간부터 이 세계를 떠나야 하는지도 모르죠(웃음).



Q : 그래도 음악은 계속하지 않을까요



은퇴한다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이렇게 지내다 어느 날 다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하겠죠. 그러나 음악은 정말 젊은이만의 문화인 것 같아요.



Q : 음악 얘기는 여기까지 하죠. 하와이에서 디지털 아트를 공부했다고 들었는데요 그냥 외국에 오래 있고 싶었는데, 방법이 학생 비자밖에 없더라고요. 마침 9?11 사건이 일어나 학생 비자로 간 사람들은 학교를 꼭 가야 한대요. 그래서 얼떨결에 들어갔는데, 가보니 재미있는 거예요. 내가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으로 살 줄은 정말 몰랐어요. 한 1년간 화창한 날씨 아래서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사니까 불만, 원망, 억울함 같은 부정적 감정이 옅어졌어요. 마음의 상처들이 치유된 것 같아요. 내가 살아 있는 게, 이렇게 아름다운 걸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한 거예요. 우울증이 있는 분들께 열흘 정도 햇빛이나 하늘만 보며 지내보길 권해요.



인생의 법칙은, Follow your heart!



Q : 디지털 아트가 뭐죠



간단하게 얘기하면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거기에 필요한 것을 배우는 거예요. 사진도 배우고 그림도 배웠어요. 프로그래밍도 배워야 하고. 덕분에 친구랑 친해질 기회도 있었어요. “저 사람이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친구가 도와주면 밥도 사주고. 저도 몰랐는데 저는 그쪽에 훨씬 재능이 있었어요. 노래보다는.



Q : 카메라로 주로 뭘 찍었나요



사람 얼굴 찍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스튜디오에서 제대로 조명을 맞추고 사람 얼굴만 찍어보고 싶어요. 내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요. 제가 많이 찍혀봐서 그런지 보는 눈이 길러진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다른 학생들보다 나이도 많고, 심지어 우리말로 배우는 것도 아닌데, 내가 봐도 내 작업이 훨씬 낫더라고요. 음악 하고 미술 하고 무용, 예술은 서로 다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Q : 직접 그린 그림을 보았습니다. 장식성이 강한 세기말 비엔나풍이더군요



그 그림, 실은 학교 수업의 하나로 클림트를 모작한 거예요. 아예 한 부분을 확대해서 크게 그린 거죠. 예쁘게 나왔어요. 명암, 원근법, 콜라주 등을 배운 다음에 모작을 거쳐 자기 작품을 하면 한 학기가 끝나죠. 다른 건 다 버렸는데 그 그림은 무척 마음에 들어서 남겨놓았어요.



Q : 이전에도 그림을 그렸었나요



아뇨. 그림은 굉장한 재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거라는 선입견이 있어서 배우겠다는 생각을 감히 못 했죠. 다만 스무 살 때 사진을 배우고 싶어서 조세현 작가님께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너무 어려우니 배울 생각 말라”고 하셔서 그마저도 접었죠.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와 아트 클래스를 하나 들어야 하는데, 마침 페인팅이 있어 배우게 됐어요. 깜짝 놀랐어요. 아직 내게 열중할 수 있는 뭔가가 남아 있구나. 한 15분 지났으려니 했는데 다섯 시간이 지나 있었어요. 시계가 고장 난 걸로 착각할 만큼 그림에 몰입을 했어요.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 이 몰입의 경험이 좋았죠.



Q : 세라믹 아트 만든 것도 보았습니다



우연히 TV에서 하는 것을 보고 근처의 공방을 찾아갔어요. 그런데 거기서도 대여섯 시간이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요. 실은 친할아버지가 탱화 화가셨대요. 할아버지 제자가 만복 스님이고요. 아빠도 어렸을 때 탱화를 그렸는데, 한자를 배우기 싫어 그만두셨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나중에 토목 설계를 하셨으니까 아주 동떨어진 일은 아닌 셈이죠. 언젠가 아빠가 심심하셨는지 유화 도구를 사서 초급자를 위한 책을 보며 그림을 그리시는데, 아주 훌륭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 큰언니의 학교 숙제를 아빠가 대신 그려주곤 했는데, 선생님이 그걸 보시고 “소질이 있으니 그림 가르치라”고 했다는 에피소드가 생각나네요.



Q : 그림을 보러 다니기도 하나요



한국에서는 바빠서 서울 삼청동에 있는 갤러리에도 못 가보다가, 하와이에서 아트 전공하는 학생들을 모집해 처음으로 유럽 박물관 투어 수학여행을 갔었어요. 인상 깊었던 것은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본, 크기가 어마어마한 작품이에요. 왕이 자살하는 그림이래요. 남들 다 죽이고.



Q :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아닌가요. 들라크루아 작품…



맞아요. 그게 정말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아요. 그 밖에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암스테르담의 고흐 미술관에도 갔고요.



Q : 최근 데이비드 호크니의 인터뷰집을 흥미롭게 읽었다고요



책에 관한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배당된 책이었어요. 데이비드 호크니는 이름만 들었지, 작품은 잘 몰랐었죠. 이분이 카메라 아홉 대를 각각 다른 각도로 설치해놓고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뭔가 시도하려는 열정 자체가 부러웠어요. 자극이 되었죠. 그 책을 읽고 아파트 구조인 우리 집 거실을 아예 작업실로 만들었어요. 공간의 형태가 바뀌면 생활 패턴도 바뀌는 것 같아요. 예전엔 일 없는 날엔 소파에 누워 빈둥거렸는데, 이젠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피아노 앞에서 뚱땅거리기도 하고, 그림을 끼적이기도 하고요.



Q : 어느 방송에서 집 안을 공개했을 때 거실 한쪽에 만화『유리가면』이 빼곡히 쌓여 있는 것을 봤어요



초등학생 때 만화책을 정말 좋아했어요. 꿈이 만화가일 정도였죠. 연습장 사다가 그리기도 했거든요.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맞다. 내가 지금 학생도 아니고 돈도 있으니 만화책을 사려면 얼마든지 살 수 있네.’ 그래서 좋아했던 만화책 시리즈를 몇 개 샀어요.『유리가면』은 강렬한 작품이에요. 미숙했던 아이가 노력하며 점점 발전하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 만화죠.『장미를 위하여』는 예쁜 만화고,『베르사유의 장미』와『올훼스의 창』은 고전이죠. 우리나라 작품 중에선『북해의 별』. 어렸을 때는 비극적이란 생각만 했는데 다시 보니 정말 멋있더라고요. 완전 영화예요, 영화.



Q : 패션에도 관심이 있었나 봐요. 2005년에는 두타에 ‘카멜리아S’라는 매장을 열기도 했다고요



패션에 관심이 있어서 열었다기보다도 어떤 애한테 꾐을 당한 거죠. 이렇게 하면 떼돈 번다고 해서 차렸는데 잘 안 됐어요. 다시 활동을 막 시작한 시기였는데 바빠서 매장에 가보지도 못했고, 결국 빨리 정신 차리고 접었죠. 이번에는 다른 사업을 하려고 해요. 팥빙수 체인점을 광교 카페 거리에 내려고 하는데, 그 거리에 가보셨어요? 저도 이번에 처음 가봤는데 정말 예뻐요.



Q : 예쁜 고양이를 기르고 있더라고요



동생이 기르던 고양이를 잠시 저한테 맡긴 적이 있어요. 동생 말로는, 고양이는 낯을 가려서 장소가 바뀌면 처음엔 숨어서 안 나온대요. 그런데 얘가 3일 만에 나와서 애교를 부리는 거예요. 동생은 그게 너무 섭섭했대요. 처음 동생 집에 왔을 때는 석 달 동안 안 나왔다는데. 얘가 나를 무척 좋아하니까 결국 못 데리고 갔어요. 그런데 제가 일을 하니까 고양이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잖아요.



그게 안쓰러워 두 마리를 더 입양했죠. 고양이만의 매력이 있어요. 강아지처럼 부산스럽게 반가워하진 않아도 내가 어디를 가든 따로따로 나를 따라와서는 꼭 내가 보이는 데에 앉아요. 또 하나 발견한 건, 집 안에서도 자기들만의 영역이 있다는 거예요. TV 보는 방은 레이의 영역이에요. 가운데 레이가 있으면 다른 아이들은 내 가까이 못 와요. 화장실에 앉으면 꼬맹이가 와 있어요. 다른 애가 오면 쫓아버려요. 그런 특징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요. 또 좋은 점은, 동물은 불평불만이 없어요. 어떤 상황, 어떤 조건이건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점을 고양이들에게 배웠죠.



Q : 혼자여서 불안할 때는 없나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는 사심을 갖고 상대를 만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해요. 결혼하고 싶었던 적은 있어요. 30대 초반에. 그때 만났던 남자가 있어요. 결혼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헤어지게 되었죠. 돌아보면 나의 사심이었던 거죠. 여자나 남자나 서로 사심 없이 만나야지, 그렇지 않으면 뭔가 삐거덕거리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이 행복해요. 남자도 사귀어보고 지지고 볶고 다 해봤는데 현재가 가장 마음이 평화로워요. ‘내가 뭘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까’를 치열하게 생각했어요. 이제는 알아요. 마음이 고요한 게 좋고, 자연이 좋고, 홀로 보내는 시간이 좋아요. 남들이 외롭다고 하는 그 시간이 제게는 외려 행복과 치유의 시간이에요. 직업상 그래요. 눈뜨면 매일 새로운 곳에 가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데 집에 들어갔을 땐 혼자 있을 수 있어서 좋아요. 이런 일을 하면서 집에 갔는데 애 있고 남편 있으면 돌아버리지 않을까요(웃음).



Q : 이민호와 연애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사실 저만의 문화는 영화였어요. 드라마는 템포가 너무 느려서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거든요. ‘저 답답한 걸 어떻게 봐’ 그러다가 우연히 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봤는데 재미있더라고요. 내친 김에 재밌다고 입소문 난 다른 드라마들도 찾아보다가 ‘신의’를 보게 됐어요. 거기서 최영 장군으로 나오는 이민호를 보고 속으로 소리를 질렀죠. ‘오 마이 갓, 내가 쟤를 왜 이제 발견한 거야?’ 원래 이상형은 라이언 레이놀스, 윌 스미스, 리처드 기어, 해리슨 포드였고, 한국 남자 배우는 잘 몰랐어요. 송강호, 하정우씨를 봐도 ‘연기 잘한다’ 그 정도지, 눈빛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홍콩 배우 양조위가 매력적이었죠. 이민호는 스물다섯 살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는지. 생긴 것도 조각인데 최영 장군과 일체화된 거예요. 반했어요.(이쯤에서 자르지 않았다면 이민호 예찬은 끝없이 이어졌을 것이다.)



Q :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까요



어릴 때에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한순간에 잊히면 얼마나 불행할까.’ 홍콩에서 활동하다 돌아와서 보낸 30대 시절이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관심도 없고, 내게 아무 상처도 주지 않아요.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죠. 예전보다 나에게 집중을 많이 해요. 어떻게 보면 삶의 세계가 작아졌지만 만족도는 높아요. 직업상 남들한테 잘 보여야 하지만 ‘인기가 없어서 슬프다, 외롭다’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아요.



Q : 인생을 계획에 딱 맞춰 정해놓고 살아가는 타입은 아닌 듯하네요



그때그때 순간순간 내가 원하는 걸 하는 거죠. ‘Follow your heart.’ 어릴 때부터 내가 원하는 바를 잘 찾아서 가는 것 같아요. 결정을 할 때는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선택해요. 그러면 스트레스 안 받아요. 그런데 이렇게 스트레스 안 받다가 너무 오래 살면 어떡하지(웃음)?



Q : 여유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이제는 누가 봐도 눈이 무섭다고 안 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아요. 며칠 전 집에서 촬영할 일이 있었어요. 화장실에서 준비하느라 늦게 나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는데 여기자분이 부들부들 떠는 거예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너무 무서워서요….” 내가 뭘 했다고 무서워요. 아무리 나이를 먹고 세월이 지나도 이미지는 없어지지 않나 봐요.



하긴 이계진 전 아나운서가 직접 나서서 해명해주기 전까지 그녀는 오랫동안 ‘닭’의 맞춤법도 모르는 멍청한 여자로 지내야 했다. (과거에 그녀가 한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해 ‘닭’을 ‘닦’으로 적었다는 이야기가 돌았는데, 당시 프로그램 진행자였던 이계진 전 아나운서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해당 내용의 주인공은 김완선이 아니라 다른 가수였다’고 설명하면서 ‘닭’ 사건의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내가 만나본 그녀는 자신을 냉정히 객관화할 정도로 명민하고, 모든 예술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정도로 섬세하며, 행여 험한 댓글이 달릴까 봐 13년 동안 한 푼도 주지 않았다는 이모를 애써 변명해줄 정도로 착했다. 만들어진 삶과 자유로운 삶의 사이를 오가다 운명의 수용이 곧 자유임을 깨달았다는 그녀가 내게는 예쁘게 무르익은 와인의 인상으로 남는다.



진중권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언어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다. 현재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 탄탄한 논리, 정확한 근거, 조롱과 비아냥거림, 풍자와 위트를 뒤섞은 신랄한 문장 등 백 가지 무기로 현상을 해석하는 우리나라 톱 논객으로 꼽힌다. 그러면서 비행기 조종이 취미이고, 고양이 루비를 애지중지하는 감성 로맨티시스트이기도 하다. 여성중앙에서는 ‘시대의 여자’들을 만나 섹시한 인터뷰를 펼쳐 보인다. 날 선 독설과 ‘루비 애비’ 특유의 감성을 넘나드는 인간 해석이 관전 포인트다.



기획=조영재 기자

글=진중권

사진=박지홍(cao studio)

스타일링=박송이(진중권) 김묘정(김완선) 의상 협찬 자라, H&M, 앤디앤뎁, 슈즈원, 스타카토

헤어&메이크업=우천용, 정은주(essensuals by 眞) 장소 협조 미래 소년(02-542-9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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