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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의 야망 “김정은과 중국견제 공조 꿈꾼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4.09.09 00:05

올가을 아베-김정은 평양정상회담 가능성…내년 가을 자민당 전당대회 직전 북일수교 완성 최상의 시나리오로 상정




2013년 10월 8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APEC 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 아베 일본 총리는 이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접근해 악수를 나눴지만 그의 시큰둥한 반응에 크게 실망했다.

지난 2월 13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에 참석한 아베 총리. 방송용 카메라의 불빛인 빨간 원이 마치 일장기와 거기에 서린 아베의 야망을 상징하는 듯하다.


월간중앙 아베는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에 기대면서도, 결국 미군에 의지하지 않는 독자적 방위력 강화를 모색한다. 중국을 ‘가상 적국’으로 규정한 자위대의 전투 능력을 빠른 속도로 높여가는 한편, 시진핑의 미움을 받는 김정은과의 결합을 중국 압박의 절호의 카드로 활용하려 한다.



각의(閣議·내각회의)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아침 9시부터 (국회 휴회 중은 아침 10시부터) 도쿄 나가타초(永田町)의 수상관저 회의실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각료 전원을 소집해서 열리는 일본 정부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이다. 18명 전원이 착석한 후, 아베(安倍) 총리가 회의실에 들어와 중앙 좌석에 착석한다. 아베 총리는 간단한 인사와 그날 각의에 올려지는 의안에 대해 설명한다. 그 후, 각 각료는 의안이 기록된 문서에 한 사람씩 서명하고, 날인해간다. 이 행위를 ‘카오우(花押)’라고 부른다. 전원이 ‘카오우’를 마치면, 의안은 각의결정이 되어 일본 정부의 결정사안이 되고, 내각회의는 종료된다.



일본은 1881년(메이지 14년) 10월 이후, 133년간이나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의 오전 9시부터 각의를 한다’는 이 제도를 관철하고 있다. 메이지(明治) 시대는 매회 3시간이나 각료들끼리 설전을 벌이며 논의를 주고 받았던 모양이지만, 현재는 평균 15분이면 회의를 마친다. 일본 정부의 최고 의사결정 회의치고는 뭔가 싱겁고 맹숭맹숭한 ‘의식’이다. 물론, 각료들은 자신의 정치신조와 맞지 않는 의안이라고 생각하면 ‘카오우’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또한 내각 전원 일치가 원칙이므로 각료 한 사람이라도 ‘카오우’를 거부하면 의안은 통과되지 못 한다.



2005년 8월 8일, 당시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의 정치적 신념이었던 우정사업 민영화에 영향을 미치는 각의 결정에, 시마무라 요시노부(島村宜伸) 농림수산 대신(장관)이 무슨 일이 있어도 ‘카오우를 거부하겠다’며 버텼다. 그러자 고이즈미 총리는 즉석에서 시마무라 농림수산대신을 파면하고, 자신이 농림수산대신을 겸임하는 인사를 발령했다. 그리고 인사 발령 후, 수상의 란과 농림수산장관의 란에 2회에 걸쳐, 스스로 ‘카오우’를 적어 넣음으로써 내각회의 결정을 만들어냈다. 과거 10년 동안 필자가 기억하는 각의결정의 지연은, 이때 단 한번뿐이다. 즉, ‘일본은 민주국가’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총리에게 독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절대권한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1일 화요일과 7월 4일 금요일, 이 각의에서 각각 중요의안이 결정됐다.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용인과, 북한에 대한 일본 독자의 경제제재에 대한 일부 해제다. 우선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서 설명해보자. 집단적 자위권에 관한 각의 결정은 ‘나라의 존립을 완수하고, 국민을 지키기 위한 빈틈 없는 안전보장 법제의 정비에 대해서’라고 하는 표제가 정식명칭이다.



필자는 그 전문을 숙독해보았지만, 표현이 난해할 뿐 아니라 상당한 긴 문장으로, 전문을 다 읽기까지는 30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것만 보아도 각의에 참석한 18명의 각료는 아마 단 1줄도 읽지 않고, 아베 총리가 내놓은 의안에 유유낙낙하며 순순히 ‘도장’을 눌렀을 것으로 추측된다.



독재적 절대권한 갖는 일본 총리



집단적 자위권이란 개별적 자위권의 정반대의 개념이다. 자국이 타국에 공격을 당하면, 공격한 나라에 대하여 반격한다고 하는 것이 개별적 자위권이다. 그에 비해 타국이 자국의 우호국을 공격했을 경우, 그 공격한 나라에 대하여 반격한다고 하는 것이 집단적 자위권이다. 집단적 자위권은 유엔 헌장에서도 인정받고 있지만, 일본국 헌법은 ‘전쟁의 포기’와 ‘무력의 포기’를 제9조에서 강조하고 있으며 따라서 지금까지 ‘봉인’되어온 것이다.



1972년 9월, 다나카 카쿠에이(田中角榮) 총리가 정권 출범 후 불과 2개월 만에 중국을 방문하여 일·중 국교정상화를 이루었다. 이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지만 같은 해 11월에 일본 국회에서 일어났던 논의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미국의 닉슨 정권은 베트남전쟁에 매진하던 때로 일본에도 자위대 파견을 요청했다. 같은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은 연인원 30만 명 이상의 한국군을 베트남에 파견했다.



이때 다나카 총리는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리고 국회답변으로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소유하고 있지만 행사는 하지 않는다”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후 이 답변이 일본 역대정권의 ‘본보기’가 됐다. 비교적 우경화의 색채가 강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根康弘) 총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마저도 같은 답변을 되풀이하면서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거부해왔다. 때문에 일본은 1991년의 걸프전쟁, 2001년의 아프간전쟁, 2003년의 이라크전쟁 등 미국이 일으킨 어떤 전쟁에서도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일본의 자위대는 일본이 패전한 1945년 이후 현재까지의 69년간에 걸쳐 한 사람의 외국인도 죽이지 않았고, 물론 전쟁에 의한 자위대의 순직자도 없었다. 이것은 일본이 세계에 자랑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과거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 엄청난 폐를 끼쳤지만, 그 반성을 기반으로 전후에는 평화주의 원칙을 훌륭하게 관철해온 것이다.



2002년 9월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왼쪽)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오른쪽)과 인사하는 모습. 당시 관방부장관이었던 아베 신조(왼쪽 세번째)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지켜보고 있다.


아베의 야심, ‘헌법개정이 나의 정치 목표’



그런데 그러한 원칙이 이제부터는 하루아침에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 전후 일본이 소중히 키워온 ‘귀중한 보물’을, 아베 총리는 왜 뒤엎으려고 하는 것일까? 필자는 각의결정이 이루어진 후 총리관저에 있는 아베 총리 측근 중 한 사람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것은 외조부인 키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유훈’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957년에 수상이 된 키시 노부스케는 미국의 억압에 의해서 만들어진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일본의 자위대를 군대로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1960년의 일·미 안전보장조약 변경과 함께, 뜻을 접고 사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베 총리의 집무실에는 키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패널 사진이 걸려 있는데, 총리는 가끔 조용히 사진을 응시한다. 아마 “조만간 제가 헌법을 개정하여 자위대를 군대로서 자유롭게 움직이겠습니다”라고 외조부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번엔 비록 헌법개정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헌법해석을 변경하여 자위대를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군대로 바꾸는 것에 멋지게 성공했다. 총리 측근의 설명의 이렇다. “총리는 각의 결정 뒤 곧바로 집무실로 되돌아왔는데, 아마도 외조부의 사진 앞에 서서 손을 모으고 길보를 보고한 것이 틀림없다.”



확실히 아베 총리는 1993년 정치에 입문했을 때부터 일관되게 ‘헌법개정이 나의 정치목표’라고 공언해왔다. 2006년에 처음 총리가 됐을 때는 헌법개정을 아베 정권의 간판정책으로 내세웠지만, 국민이 바라는 것은 경기회복이었기 때문에 지지율이 급락하고, 다음해 사임하는 위기에 몰렸다. 2012년 12월에 재등판했을 때에도 다시 한번 헌법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역시 국민들이 기대하는 것은 경기회복이었다.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아베노믹스’라고 하는 경제 정책을 전면적으로 추진했다. 더불어 헌법개정이 아니라 헌법해석 변경이라고 하는 ‘비법’을 사용하여 드디어 이번 자위대 해외파병에의 발판을 닦은 것이다. 이 아베 총리의 측근은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아베 총리는 이미 예전부터 우리들 내부 인사들에게 ‘반드시 7월 1일에 각의 결정을 이루어낼 것이다’라고 거듭 장담해 왔다. 당시는 왜 7월 1일인지 불분명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이날은 자위대 창설 60주년 기념일이었다. 아베 총리는 자위대 창설 이후 처음 60년간은 과거의 전쟁 책임을 위해서 참고 평화헌법을 따르는 기간, 그리고 지금부터는 강력한 군대로 변모시키는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7월 1일의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는 “일본은 두 번 다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발언했지만, 본심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계속해서 필자는 도쿄 이치가야(市谷)에 있는 방위성을 방문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방위성의 정문 동쪽 끝에 위치한 방위성 산하의 ‘호텔 그랜드힐(Hotel Grand Hill)’이다. 이곳에서 전 방위성 간부에게 이번의 집단적 자위권 용인 결정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결정에 즈음하여, 아베 총리는 ‘특정한 나라를 상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이는 표면상의 발언으로, 실제로는 오로지 중국이라고 하는 ‘특정한 나라’에 대항하기 위한 조치다. 일본은 과거 10년간 방위비 예산을 절감하고 있지만 이웃나라인 중국은 네 배 이상 늘리고 있다. 현재로서는 날로 증가하는 중국의 위협에 대하여, 방위성 내부에서는 이대로는 센카쿠 열도는 물론, 오키나와(沖繩)마저도 중국에 빼앗길지 모른다는 강한 위기감이 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어떻게든 미군을 끌어들여 일·미 대 중국이라고 하는 대립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미군을 끌어 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해상자위대가 미국 제7함대와 완전히 일체화되어야 한다. 항공자위대도 미국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인 F35스텔스 전투기를 도입하여 영공방위의 일체화를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미군과 일체화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본국 헌법의 해석을 변경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것이 불가결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현재 방위성과 자위대는 집단적 자위권 이외에도 고려하고 있는 것이 있다고 한다.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또 하나 필요한 것은, 앞의 말들과 모순되는 것 같지만, 미군에 의지하지 않는 독자적인 방위력 강화다. 미국의 군사예산은 2010년의 7천억 달러에서 2015년에는 5천억 달러 규모로 크게 삭감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오바마 정권이 아무리 미군의 ‘리밸런스(재균형)’를 통해 동아시아 지역을 중시하겠다고 말해도, 미군에만 의지해서는 가까운 미래의 동아시아 해역이 모두 ‘중국의 바다’로 변할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에 따라 중국을 ‘가상적국’으로 규정한 자위대의 전투 능력을 빠른 속도로 높여갈 생각이다. 아마 3년 후, 혹은 5년 후의 일본에서 논의되고 있을 것은 집단적 자위권이 아니라 일본의 핵무장일 것이다.”



지난 3월 26일 한·미·일 3자회담을 하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 미국 대사관저에 도착한 박근혜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오키나와마저 중국에 빼앗길라!



이 전 방위성 간부에 따르면 이번에 아베 정권이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한 후, 그 첫째 임무로 중동으로부터 일본으로 원유를 들여오는 씨 레인(해상수송로)의 경비를 미군과 해상자위대가 공동으로 책임지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는 것이다. “석유가 없으면 일본인의 생명이 위험하므로, 중동에서 미군에 협력하는 것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조건을 만족한다”는 것이 방위성의 견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 앞서 언급한 총리관저의 아베 총리 측근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4월 24일에 방일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일·미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우리들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센카쿠섬을 미군이 방위한다고 약속하게 만들었으므로 아베 외교는 대성공이다’라고 널리 알렸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일미정상회담에서는 첫머리부터 오바마 대통령이 ‘나는 올가을에 중간선거라는 큰일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 일본은 돼지고기의 관세를 몇 %로 하고, 쇠고기의 관세는 몇 %로 하면 좋겠다…’라면서 계속해서 일방적 요구를 읊어댄 것이다.



아베 총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듣고만 있었지만, 정상회담 종료 후에 ‘저런 자잘한 무역 교섭은 일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무역담당 관료나 각료가 하는 것이다. 오바마를 정말 믿어도 좋은가?’라고 투덜댔다. 이 일미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이대로 미국에만 의지해서는 일본을 방위할 수 없다’라고 깨달은 것이 아닐까?”



확실히 아베 총리와 오바마 대통령의 관계는 대단히 미묘하다. 유일한 동맹국이므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말이 맞지 않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아베 총리 측근의 말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늘 “나에게는 3명의 외국인 친구가 있다”라고 호언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호주의 애벗(abbot) 수상, 그리고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다.



덧붙여, 이것은 필자의 개인적인 악의적 추측이지만, 아베 총리는 “나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는 3명의 외국 지도자가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바마 대통령과,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는 인물은 시진핑 주석일 것이다.



아베 총리와 시 주석은 사실 작년에 두 번 악수를 나눈 적이 있다. 최초의 악수는 작년 9월 5일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 자리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당시를 회상한다.



“아베 총리로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시진핑과 악수하고 싶으니 방법을 생각해달라’는 명령을 받고 여러 가지로 방법을 강구했다. 처음에는 20명의 정상의 착석 위치가 취임한 날짜순이라고 하는 관례가 있기에 아베 총리 (2012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2013년 2월), 시진핑 주석 (2013년 3월)의 순서로 자리에 오를 것이니 착석 시에 인사를 나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회 직전에 국가원수와 비국가원수로 자리를 나눈다는 러시아 측의 요청으로, 비국가원수인 아베 총리는 국가원수인 시 주석에게서 멀리 떨어진 자리를 배정받았다.



그 다음 기회는 G20회의의 마지막 순서로 진행되는 정상들의 기념촬영 때이지만, 아베 총리는 2020년의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는 IOC총회에 출석하기 위해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촬영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생각난 것이 G20정상회담 전의 대기실이었다.



2013년 10월 8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APEC 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 아베 일본 총리(뒷줄 왼쪽 둘째)는 이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앞줄 맨 오른쪽)에 접근해 악수를 나눴지만 그의 시큰둥한 반응에 크게 실망했다.


“중국 포위망에 도움이 되는 외교일정 넣으라”



G20정상회담 당일 비 국가원수들은 먼저 대기실에 안내되었는데, 아베 총리는 방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조용히 시 주석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시 주석이 입실하자마자 뛰어나가서 ‘Nice to meet you, Mr. Xi Jinping!’이라며 악수를 건넨 것이다. 아베 총리는 러시아로 향하는 정부 전용기 안에서 ‘習近平(일본에서는 시진핑을 슈킨페이라고 부름)은 중국어로 뭐라고 불러야 하나?’라고 물었다. 우리들이 ‘시진핑이라고 말합니다’라고 대답하자, ‘시진핑, 시진핑’이라고 몇 번이나 입 밖으로 소리 내서 되뇌며 이름을 외웠다.



그러나 염원했던 악수를 마치고도 아베 총리의 표정은 썩 밝지 못했다. ‘시진핑은 내가 갑자기 달려 나가자 무척 놀란 듯 오른손이 경직되어 있었고 말도 제대로 나누려 하지 않았어’라고 불만족스러워했다. 그 다음달에도 인도네시아의 APEC에서 같은 수법을 사용해서 두 번째 악수를 했지만, 그때도 역시 아베 총리는 만족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시진핑과는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를 쌓을 수 없다’라고 판단한 아베 총리는 결국 연말에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그건 그렇고,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7월 4일의 중요각의결정 사항인 북한에 대한 일본 독자의 경제제재의 일부 해제와 연결된다. 아베 총리 측근의 설명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항상 “비어 있는 스케줄은 외유나 골프의 일정을 채워 넣어달라”고 비서에게 명령한다고 한다.



“외교 일정을 넣으라”고 하는 것은 “중국 포위망에 도움이 되는 외교일정을 넣으라”는 의미다. 7월 6일부터 방문한 뉴질랜드와 호주도 그야말로 이런 문맥에 의한 외유였다. 아베 총리의 외교는 모두 ‘중국을 깎아 내리는데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가’라고 하는 기준으로 행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을 어떻게 깎아 내릴 것인가? 올해 들어 이 아베 총리의 기준에 딱 들어맞는 나라가 등장했다. 그것은 역시 아무리 노력해도 시진핑 주석과 마음이 맞지 않는 김정은 제1 비서가 통치하는 북한이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김정은 제1 비서가 작년 말에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처형한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막다른 골목에 처했다. 다음은 올해 정월에 필자가 베이징에서 중국 외교부의 관계자를 취재했을 때 들은 이야기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 중앙텔레비전의 뉴스를 보고서 비로소 장성택의 처형사실을 알았다. 그때 시주석은 참모들에 대한 분노가 굉장했다. ‘장성택은 북한 내 최고의 친중파가 아닌가! 사전에 정보를 넣어 주면 처형을 저지할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라고 격노했다는 것이다. 이후 시주석의 강력한 의지로 북한에 대한 ‘3대 원조(중유·식량·화학비료)’의 동결이 결정됐다. 또, 나선과 신의주(황금평)의 동서 경제특구 개발의 백지화도 결정됐다.”



중국은 북한에 무역의 80% 가까이를 차지하는 종주국과 같은 존재였다. 그 중국의 최고권력의 분노를 산 것 때문에, 김정은 정권은 출범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거기에 김정은 정권은 올 들어 돌연 한국에 추파를 던져왔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과의 합동 군사훈련을 예년처럼 거행했다. 이렇게 해서 궁지에 내몰린 김정은 정권은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교섭에 국운을 걸어 보는 결단을 한 것이다.



‘시진핑이 밉다’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아베 총리와 김정은 제1비서의 지시를 받은 북일 교섭은 대단히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에게 있어 북일 교섭의 최대의 장애가 되는 것은 납치 문제다. 일본 정부는 17명의 납치 피해자가 있다고 파악하고 있지만(그중 5명은 2002년에 귀국), 북한에 의한 납치 문제를 독자적으로 조사하고 있는 ‘특정 실종자문제조사회’는, 최대 850명의 납치 피해자가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0월 27일 자위대의 날 행사에 참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해 올가을 그가 북한을 전격 방문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시진핑이 밉다’라는 공통분모



3월 30일과 31일, 베이징의 북한대사관과 일본대사관에서 1년 4개월 만에 일본과 북한의 정부간 협의가 열렸다. 북일 교섭은 언제나 ‘행동 대 행동’이 원칙이다. 이번에는 일본 측이 행동을 보여야 하는 순서로, 북한 측은 조선총련 중앙본부 빌딩의 명도 철회를 요구해왔다.



도쿄 치요다구(千代田區) 후지미초(富士見町)에 위치한 조총련 중앙본부의 토지와 건물은 파산한 조선은행의 627억 엔의 채권에 대한 담보로서, 작년 3월에 경매에 부쳐졌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가가와현(香川縣)의 부동산투자 회사인 마루나카가 취득하기로 되어 있었다.



한 일본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증언했다. “아베 총리는 아직 임기 도중인 다케자키 히로노부(竹崎博允) 대법원 장관을 3월 말에 퇴임시키고, 그 후임에 데라다 이츠로(寺田逸郎) 대법원 판사를 임명했다. 데라다 씨의 부친도 대법원 장관으로, 법조계에서는 ‘2세 장관은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는다’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지만 이를 무릅쓰고 취임을 강행한 것이다. 그런데 그 조건이 조총련본부의 빌딩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 인사를 보고 북한 측도 유연한 태도를 보여와서 5월 26일에서 28일까지, 스톡홀름에서 두 번째 북일 정부 간 협의가 개최됐고, 그 결과 북한 측이 일본인 납치 피해자 등을 재조사하는 ‘일본인 특별조사위원회’를 발족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것이었다.



그리고 6월 20일에는 대법원이 조총련본부의 토지와 건물을 입찰을 통해 낙찰받았던 마루나카의 매각수속을 일시 정지하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는 그야말로 아베 정권에 의한 ‘초법적 조치’라고 말할 수 있었다. 아베 총리는 7월 2일 저녁 이번 인사에 협력해 준 다케자키(竹崎) 전 장관을 위로하는 연회를 개최했다.  



지난 6월 29일 새벽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강원도 원산 인근에서 실시된 스커드 미사일의 발사 장면을 뒷짐을 진 채 바라보고 있다.


북일 수교로 1조 엔 경제원조 배상 예상



그 전날 7월 1일에는, 베이징에서 올해 세 번째가 되는 북일 정부간 협의가 열렸다. 거기에서는 북한이 30명 규모의 멤버로 일본인 특별조사위원회를 즉시 발족시키는 것, 위원장에는 서대하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이 취임하는 것, 8월 하순부터 9월 상순을 목표로 최초의 조사 결과를 일본 측에 전하는 것 등이 결정됐다.



이를 받아서 7월 4일 아베 총리는 각의에서 북한에 대한 일본 독자의 경제제재 일부를 해제했으며, 같은 날 김정은 제1비서가 남포시에 사는 일본인 여성에게 100세 생일 축하 밥상을 선물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아베 총리와 김정은 제1비서는 아직 면식은 없음에 이미 ‘손발이 척척 맞는 호흡’으로 의사소통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북일 교섭의 향방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앞서 언급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밝힌다. “9월 초순께 북한에 생존해 있는 납치 피해자, 전쟁 전부터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 전후에 재일 조선인 남편을 따라 북송된 일본인 등이 파악된 시점에서 아베 총리가 직접 북한을 방문하여 그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1970년 일본항공기 ‘요도호’를 납치한 후 평양에 살고 있는 4명의 일본인 범법자도 넘겨 받을지 모른다.



평양에서는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과의 북일 정상회담이 열리고, 아베 총리는 김정은 제1비서에게 빠른 시일 내에 일본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할 것이다. 김정은 제1 비서는 적당한 시기에 국가원수가 된 후 최초의 해외 방문국으로서 부인인 리설주를 동반하여 일본을 방문한다. 양국의 수뇌는 이 모든 것을 시진핑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해 연출하는 것이다.”



일본과 북한의 국교정상화가 실현되는 것은 내년 여름쯤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아베 총리는 모든 정치 외교관련 스케줄을 내년 9월의 당 총재선거에 맞춰 짜고 있다. 내년의 총재선거에서 재선하게 되면, 드디어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의 장기정권이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년의 정기국회가 종료되는 6월 혹은 7월에 북한과 국교정상화를 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북한으로서도, 내년 8월에 광복절 70주년, 10월에 조선 노동당창건 70주년을 맞이하게 되므로, 역시 최고의 타이밍일 것이다. 일본과의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면 약1조 엔 규모의 경제원조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꺾인 절’의 기념일을 성대하게 축하하고, 김정은 정권은 장기적인 안정을 꾀할 수 있다.”



내년 여름에는 집단적 자위권의 법적 정비도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이렇게 해서 지금부터 앞으로의 1년을 걸고, ‘시진핑의 중국’에 대항하는 ‘두 가지 무기’ 즉, 전투집단으로서의 자위대와 김정은의 북한을 연마하려는 것이다. 한편 시진핑 주석도 7월 3일과 4일에 걸쳐 한국을 단독 방문하는 등, ‘한중 준동맹’의 양상이 보여진다. 냉전시대의 ‘한·일 대(對) 북·중’에서 ‘북·일 대 한·중’의 구도로, 지금 북동아시아의 패러다임(paradigm)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現代> 총괄 부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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