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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새정치민주연합 이대로 침몰하나 - '고질병' 계파정치가 당도 선거도 망쳤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4.09.08 02:48

새정치민주연합이 7·30 재보선 참패 이후 깊은 수렁에 빠졌다. 마치 브라질월드컵에서 참패한 국가대표팀을 보는 듯하다. 김한길-안철수 ‘투톱’이 사퇴하고 박영선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까지 맡아 당을 추스르고 있지만 위기에서 당을 구할 ‘원톱’으로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새정치연합의 고질병인 계파정치 문제를 진단했다.




'계파정치'로 날 지새우다 무기력한 '관제 야당'으로 전락…
"국민지지 회복할 대안으로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주장 거세

당 재건의 책임을 맡고 비대위원장이라는 ‘독배’를 든 박영선 원내대표. 권력의 공백기에 등장한 ‘관리형’으로 허약한 ‘원톱’이라는 지적이 많아 순항 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월간중앙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은 이대로 몰락하는가? 한국갤럽이 8월 15일 발표한 국민들의 새정치연합 지지도는 23%다. 새누리당 지지율 44%의 절반 수준이다. 새정치연합은 원내의석 130석을 가진 거대 야당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에게 제 1야당이라는 존재감을 주지 못한다는 평가다. 오히려 무기력한 정치력 때문에 ‘관제야당’ 이라는 비판까지 듣는다. 왜 그럴까? 가장 최근에 있었던 7·30 재보선 이후 벌어진 일련의 상황을 복기해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미니총선’으로 불린 7·30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이 15석의 의석 가운데 4석을 얻는 졸전을 치르며 참패하자 당내에서 비판이 난무했다. “질래야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졌다.”(조경태 의원) “4대 11이 아니라 오히려 11대 4로 이겼어야 할 선거였다.”(정동영 상임고문) 그러자 곧바로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지도부가 사퇴했다. “이겨야 하는 선거에서 져서 죄송하다. 대표직을 사퇴하겠다.”(김한길 전 공동대표) “선거결과는 대표들 책임이다. 평당원으로 돌아가 최선을 다하겠다.”(안철수 전 공동대표)



그 다음은 예의 고구마 줄기처럼 자성론이 뒤따랐다. “정부·여당을 견제하고자 하는 국민의 뜻을 받아 안지 못해 죄송하다. 선거 결과를 밑거름삼아 정부·여당을 확실히 견제하고 국민 편에 서도록 심기일전하겠다.”(유기홍 수석대변인)



바람 잘 날 없는 무기력한 야당



세월호 특별법 문제로 유족들과 대화에 나선 박영선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 출발부터 힘겨운 난제를 만났다.


하지만 딱 그뿐이다. 선거 참패 직후 자청해서 “국민의 뜻을 깊이 새겨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세월호 특별법을 꼭 제정하겠다”고 했던 새정치연합이 지난 8월 11일 세월호 특별법 합의와 관련해 소집한 의원총회 때 참석한 의원은 전체 130명의 의원 가운데 70명에 불과했다. 도리어 제1야당의 무기력함에 실망해 단식하는 국민의 수만 늘려놓았다. “백의종군하겠다. 평당원으로 돌아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도 백의종군 소식은 없고 그저 두문불출이다.



지난 10년간 ‘정권 심판’이라는 낡은 구호만으로 선거를 치른 뒤 패배하고 나면 “뼈를 깎는 자성”이라는 ‘정치적 수사’를 남발해 당 지도부를 바꾸고 허둥지둥하다 국민의 외면을 자초하는 거대 야당의 모습이 지금까지 새정치연합이 국민에게 보여준 것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11년 동안 당 대표가 무려 28번이나 바뀌었다. 지도부를 흔들어 갈아치우는 행태는 100년 정당을 표방하고 창당했던 열린우리당 시절에 시작됐다.



열린우리당이 존재한 4년 동안 김원기→정동영→신기남→이부영→임채정→문희상→정세균→유재건→정동영→김근태→정세균 의장(대표) 등 지도부가 11번이나 바뀌었다. 새정치연합은 당 대표나 대선후보를 지낸 중진들은 죄다 상임고문 자리를 주는 바람에 현재 상임고문만 10명이 넘는다. 말이 상임고문이지 각 계파를 대표하는 수장들이라서 당 대표 입장에서는 하나같이 머리꼭대기에 있는 ‘시어머니’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를 바꾸고자 했던 이가 바로 김한길 전 공동대표였다. 그는 지난해 9월 1일 민주당 여의도 대산빌딩 10층에 마련한 민주당 중앙당사 입주식에서 “지난 10년 동안 당대표와 지도부가 무려 26번이나 바뀌었고, 당내 세력 간의 갈등과 분열과 통합이 거듭됐다. 그 와중에 아주 고약한 계파주의 정치가 고개들기도 했고 지지층의 외면을 스스로 자초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는 “최근 들어 당내 계파주의가 상당부분 벽을 허물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라며 계파 척결과 정당혁신의 기치를 자신 있게 내걸었다. 하지만 그는 임기를 못 마치고 중도사퇴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비주류 수장으로 당내 세력 부족을 절감한 그가 특유의 전략적 두뇌로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과 통합을 이뤄내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7·30 재보선 공천파동이 족쇄가 되어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박영선 원내대표가 김한길-안철수 지도부 사퇴 이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을 맡지 않기 위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틴 것도 현재의 새정치연합 권력구도로는 자신도 전임자의 길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결국은 “독배를 마시라니 마시고 죽겠다”라며 비대위원장(국민공감혁신위원장) 자리를 받아들였다. 왜 독배일까? 새정치연합에서 잔뼈가 굵은 당직자 K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박영선 위원장 자신이 계파들의 역학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비대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것을 더 잘 알고 있다. 원내대표로서 누구보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봤으니까. 한마디로 지금은 자신이 독배를 마시고 ‘죽을’ 차례라는 것을 알기에 당 대표 격인 비대위원장을 끝까지 맡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박영선 위원장은 내년 초로 예정된 전당대회 때까지만 당의 얼굴마담 역할을 맡은 시한부 위원장이다. 물론 그 전에 새정치연합이 ‘헛발질’을 해서 국민의 비난을 또 받게 되면 희생양이 되어 당의 간판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파리 목숨’이 되기 십상인 비대위원장 자리는 이미지정치가 중요한 시대에 차기 서울시장 후보를 내다보고 있는 박영선 원내대표 같은 중진 정치인이 감당해야 할 자리가 아닌 것이다.



이 같은 당의 권력구조에 절망한 듯 재선의 C의원은 기자에게 “정치에 환멸을 느낀다. 다음 선거 때 불출마하겠다”고까지 말했다. 당 내부에서는 아예 당을 재창당하자는 충격적인 발언까지 터져나왔다. 3선의 중진인 K의원은 “국민이 보기에 지금의 새정치연합은 집안싸움으로밖에 안 비친다. 차라리 해체해서 재창당 수준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겉으로 말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K의원의 말에 수긍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전국적인 선거나 이념갈등을 유발하는 정치적 이슈가 있을때마다 반대파와 강경파들이 목소리를 키워 대치 정국을 조성하고 결국은 지도부가 교체되는 일이 수없이 반복되는 지금의 새정치연합은 태생적 한계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고질적인 계파 정치가 득세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영선 원내대표는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땅의 민주주의와 평화의 기초를 세운 행동하는 양심 김대중 정신, 진보적 가치의 실현과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바보 노무현 정신, 생명을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민주주의자의 삶을 살았던 김근태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은 안철수 현상으로 상징되는 새정치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저녁 있는 삶을 추구해온 손학규의 순리와 책임, 변화라는 정치철학을 어떻게 접목시켜 그 가치를 발전시켜나갈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세히 들어보면 박 위원장의 이 발언 자체가 계파정치를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새정치연합의 태생적 한계



현재 원내 130석의 새정치연합은 노무현계, DJ계, 김근태계, 노동단체, 시민단체, 안철수계 등 다수의 계파가 화학적 결합을 이루지 못한 채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어정쩡한 집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국이다. 이 중 가장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는 당내 다수파는 문재인 의원이 수장으로 있는 친노계다.



친노계 의원들 다수는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추모열기에 힘입어 지난 2008년 총선 때 대거 정치권에 유입됐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에 2012년 총선 때 친노계가 공천권을 행사한 비례대표 의원들, 그리고 이인영·우상호 의원 등 운동권출신 486의원들과 열린우리당 대표를 두 번이나 지낸 정세균계가 합류해 범친노계를 형성한다.



이에 대적하는 당내 비주류는 김한길-안철수 연합세력, 그리고 시민단체와 한국노총 등 노동계에서 당 대 당 통합 형태로 합류한 인사들이 주축이다. 박지원 의원을 주축으로 광주·전남 지역구 의원이 많은 호남파와 김근태 의원이 주도했던 민평련계는 상황에 따라 친노파나 비주류와 우호적 관계를 맺는 계파다. 이런 구도에서 소수파로 버티고 있었던 손학규계는 지난 7·30 재보선 정국에서 손 전 대표가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당내에서 존재감을 상실했다



선거참패 책임을 지고 사퇴한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 두 사람은 당내 세 불리기에 골몰한 나머지 7·30 재·보선에서 무리한 공천으로 제 발등을 찍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당내 강경파가 지도부를 계속 흔드는 등 당내 고질적인 계파갈등이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당을 망치고 선거를 망친 계파정치



이들 계파는 당 대표나 대선후보를 지낸 의원, 그리고 3선 이상의 중진급 의원이 수장을 맡아 대선과 총선, 전당대회 때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합종연횡하며 세를 불려왔다. 새정치연합은 이렇듯 복잡하게 계파들이 서로 얽혀있는 데다 이념갈등을 유발하는 정치적 이슈에 따라 다시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다.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그래서 기자들에게 “계파가 다른 의원들끼리는 밥 한 번 먹는 것도 어렵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교적 계파색이 엷어 비대위원장으로서 추대된 박영선 원내대표로서는 재임 기간 동안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한마디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신세다.



새정치연합 사정에 밝은 정치평론가 H씨는 각 계파들이 박영선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한 데 대해 “지금은 권력의 공백기다. 다수파인 친노계도, 비주류도 당권 맡기를 원하지 않는다. 친노계가 문재인 의원을 내세우면 당권을 쉽게 장악할 수 있지만 박근혜 정부가 2년차를 맞아 개혁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에 당권을 쥐고 있어봐야 별 실익이 없다. 대신 2014년 총선 공천권을 쥐게 될 내년 초 전당대회에 각 계파가 합종연횡하면서 사활을 건 대결을 벌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계파정치가 당을 망치고 선거를 망쳤다”는 말은 새정치연합 내에서는 ‘오래된 진실’에 속한다.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민주당 시절부터 20년 가까이 당직자로 일해온 A씨는 “친노파는 2007년 대선 때 자신들이 원하지 않았던 정동영 전 의장이 대선 후보가 되자 정 후보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아 정 후보의 대패를 방치했다. 친노계는 당권을 장악한 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의원을 내세워 후보자리를 꿰찼고 선거 전부터 개선장군처럼 전횡을 휘둘렀다. 이에 실망한 김한길 의원 등 비주류와 안철수계가 소극적으로 나서면서 대선에서 결국 패배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그 이후에 진행된 과정도 이 같은 흐름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2012년 대선에서 친노계가 패배하자 책임론이 일었고, 이에 따라 비주류 의원들의 수장격인 김한길 체제가 출범한다. 하지만 친노계 등 다수파가 김한길 체제를 끊임없이 흔들어대면서 김한길-안철수 지도부가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잇따라 패배해 주도권을 빼앗기게 됐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김한길-안철수 지도부의 7·30 재보선 공천파동도 사실 그 밑바탕은 치열한 계파정치의 산물이라는 분석이 있다.



친노파에 밀려 세력 부족을 실감해오던 김한길-안철수 지도부가 박광온·금태섭·권은희·기동민·최명길 후보 등을 전략공천해 급격하게 세를 불리려하자 당내 다수파인 친노계와 486 강경파들이 7·30 재보선을 망칠 수도 있는 ‘공천 파동’까지 불사하며 김한길-안철수 지도부를 흔들어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 지도부의 전체적인 7·30 재보선 ‘공천 그림’이 꼬이게 됐고, 여기에 권은희 후보 공천 파동까지 가세하면서 국민여론이 악화돼 결국 7·30 재보선의 참패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김한길-안철수 지도부가 당시 권 후보를 공천한 것은 국민여론은 무시한 채 선거승리에만 집착해서 고안해낸 성급하고 무리한 ‘정치공학’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도부의 주장대로 권은희 후보가 정치개혁과 인재발탁의 상징일 수 있지만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고발한 행위에 대한 순수성 논란과 ‘보상공천’ 시비를 불러올 것이 뻔한 권 후보를 공천해 결국 선거도 망쳤고, 김한길-안철수 지도부에도 자기 발등을 찍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물론 새정치연합이 그동안 고질병인 계파정치 문제에 눈만 감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4월 민주당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성찰>이라는 제목의 제18대 대선 평가보고서를 펴냈다. 민주당 18대 대선평가위원회(위원장 한상진)는 이 보고서에서 18대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중요원인으로 계파주의를 꼽았다.



대선평가위원회는 “계파주의는 공천이나 당직인사에서 계파 나눠먹기를 뜻하며 계파 이기주의와 계파 패권주의, 계파 배타주의는 당 운영의 모든 분야에서 독과점을 지탄하는 용어”라며 “18대 대선에서 국민의 요구는 정권교체였으나 특정 계파는 후보 고수와 당권 유지에 더 무게를 두었다는 비판이 많았다”고 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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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또 “민주당의 주요 인사들이 계파정치의 문제점을 일반 국민보다 더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 ‘친노, 비노, 주류, 비주류 등 편가르기를 계속하는 한 민주당의 미래는 암담하다’는 설문에는 무려 93.3%가 찬성하고 있다”라며 민주당의 계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는 국민여론을 전달하기도 했다.(<표1> 참조)



당시 보고서에서 한상진 대선평가위원장은 “계파정치 청산은 대선패배의 큰 원인으로서 이제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지만 민주당은 새정치연합으로 당명을 바꾼 뒤에도 그때의 반성으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정치권에서는 새정치연합의 계파정치가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정치권의 속설을 현실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런 점에서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보다 더 구태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새누리당은 친박계니 비박계니 서로 헐뜯고 싸우다가도 선거 때가 되면 공동의 목표달성을 위해 계파싸움을 중단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것이다. 18대 총선 공천 탈락으로 원조 친박계에서 이탈했던 당시 김무성 전 의원이 당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박근혜 대통령 탄생에 공을 세운 것이나 당권을 장악한 비주류의 수장인 김무성 대표가 최근 들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그 단적인 사례다.



진보를 자처하는 새정치연합이 기득권 보수세력이라는 새누리당보다 정치적으로는 더 구태라는 지적은 공천권을 둘러싼 대응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2004년에 공천개혁을 단행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새누리당의 한 인사에 따르면, 박근혜 당 대표가 취임하고 얼마 뒤 4선의 한 중진의원이 박 대표를 찾아간 적이 있다고 한다.



유능한 인재를 비례대표로 추천하겠다고 박 대표를 찾았던 모 중진의원은 예상치 못했던 다음과 같은 반응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비례대표 공천심사는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회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공천심사 위원장님을 만나서 상의를 하시지요.” 박근혜 대표가 자신도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보여준 것이다.



손학규 전 대표가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당내 손학규 계파는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새누리당보다 더 구태” 지적도



이와 대비되는 것이 새정치연합 김한길-안철수 전 대표의 지난 7·30 재보선 공천파동이다. 서울 동작을에 공천신청한 금태섭 전 대변인을 수원으로로 이동시키고, 광주 광산을에 공천신청한 기동민 전 서울시 정부부시장을 연고도 없는 서울 동작을로 끌어올리는 대신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광산을에 전략공천한 변화무쌍한 ‘정치공학’은 결국 민주주의의 요체인 지역구민의 의사를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새정치연합이 참패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새정치연합이 박근혜 대통령이 당 대표로 있던 시기(2004~2006)에 계파정치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박 대표는 시스템으로 당을 운영했고, 당직은 탕평인사를 단행했다. 절차나 과정을 중시해서 충분히 토의하되 결정된 사안은 뒤집지 않았다. 당헌·당규 준수를 엄격하게 했고,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측근도 가차없이 내쫓았다.



비주류의 수장에게 위원장을 맡겨 공정한 경선룰과 혁신안을 만들고, 자신이 비주류로 있을 때도 그 혁신안을 충실히 지켰다. 이 같은 사례는 최근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합의한 세월호특별법 협상을 파기하고 재협상을 요구해 국회 파행을 빚은 박영선 새정치연합 지도부와 비교된다는 지적이다. 야권 내 정치 고단수인 박지원 새정치연합 의원조차 “여야 원내대표가 나름대로 노력해 합의한 것을 (강경파의 요구에 밀려) 뒤집는 것은 잘못됐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다.



박지원 의원은 “야당은 야당다워야 하고, 할 말은 해야 한다. 하지만 야당이니까 (무조건) 이기는 것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민에게) 감동을 주면서 ‘지는 것’이 오히려 국민의 지지를 얻는 길일 수 있다”라며 합의안의 파기로 초래된 정국경색을 아쉬워했다.



“대안은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당내 친노계의 수장인 문재인 의원, 내년 초로 예정된 전당대회에 당 대표로 나오거나 대리인을 내보낼 가능성이 있다.
지나친 이념적 경직성과 강경파의 선명성 기치가 새정치연합이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 18대 대선평가위원회를 이끈 한상진 교수는 “민주당계열의 역사에서 발견하는 가장 뼈아픈 교훈은 오만과 방심이다. 당지도부는 2002년 노무현 정부를 출범시켰고 2004년 17대 총선의 승리를 가져온 ‘세대혁명’의 해석에 고무되어 향후 정권 계승의 탄탄대로가 마련됐다고 과신한 게 파멸의 원인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싼 극렬한 여야 정치갈등은 국민 대중의 삶과 무관한 소모적 이념공방을 가져왔다. 사립학교법 개정도 열린우리당이 다수 의석을 가지고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지 못해 결과적으로 정치대립의 진영논리를 심화시켰다. 주류언론과의 갈등 역시 피폐해가는 국민의 삶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정치적 의제였다”며 “이렇게 민생문제로부터 멀어지면서 민주당 계열 정당은 2007년 이래의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 패배했다”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강창일 새정치연합 의원은 한 언론매체와 인터뷰에서 “야당이 가치와 비전을 보여줘야 하는데 새정치연합은 반사이익만 취하려고 한다”며 “새정치민주연합 사람들의 생각 속엔 의원 자리를 권력으로 알고 행사하려고 하고 있다. 야당을 책임지고 있다는 머슴정신을 가지고 국민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정치 불신이라는 국민 감정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고 통탄해 했다.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는 새정치연합에 희망이 있을까? 박영선 비대위원장은 외부인사들로 비대위를 구성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인선안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내년 초 있을 전당대회 때 당권 잡는 것이 중요한 각 계파 수장 입장에서는 외부 인사가 비대위원으로 오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당 안팎에서는 공천권 문제 해결책으로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이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오픈프라이머리는 완전국민경선제로 불리는 개방식 예비선거다. 예비선거에 당원이 아닌 사람도 참가할 수 있는, 국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상향식 공천이다. 이 방식을 도입하면 의원들이 더 이상 공천권을 얻기 위해 특정계파 수장에게 줄 댈 일이 없게 된다. 이미 민주당이 2002년 국민참여경선이라는 형식으로 대선후보 선출 때 도입한 경험도 있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후보를 만들어냈던 그 방식이다. 문제는 제도를 도입하려고 해도 당을 장악하고 있는 각 계파의 수장이 제도도입에 합의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전략공천을 배제하고 선진국의 오픈프라이머리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선거제도개혁이 불가피하다”며 제도 도입에 의지를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진보를 자처하면서도 보수라고 비판하는 새누리당보다 수구가 되어버린 새정치연합. 과연 이 거대야당은 국민들의 지지를 회복해 3년 뒤 ‘어게인 2002’를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



나권일 기자 naf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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