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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이라크 갈등과 세월호 갈등

중앙선데이 2014.09.06 00:06 391호 31면 지면보기
“이라크는 역사의 희생양이다.”

최근 만난 할릴 알모사위 주한 이라크 대사는 내전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이라크의 처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라크 정부는 현재 수니파 반군인 ‘이슬람국가(IS)’와 내전을 벌이고 있다. 내전의 발단은 이렇다. 미국이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해 수니파인 독재자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을 축출한 후 이라크에서는 시아파가 득세했다. 표면적으로는 연립정부가 출범했지만 정권을 놓친 수니파의 불만은 쌓여갔다. 곳곳에 상대 종파를 겨냥한 테러가 발생했다. 최근 3선을 노렸던 시아파인 누리 알말리키 전 총리가 물러난 이유도 차별정책으로 인한 종파 갈등과 그 부작용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틈새를 수니파인 IS가 비집고 들어갔다. IS가 이라크 영토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독립국가 수립을 선언한 데는 이런 뿌리 깊은 종파 갈등이 있다.

이라크의 비극은 1차 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스만제국이 붕괴된 후 영국은 1921년 이라크 왕국을 세워 신탁통치했다. 이라크 내 시아·수니파, 쿠르드족 지역을 모두 한 국가로 묶었다. 이라크에서의 석유 이권을 장악하기 위한 무리수였다. 32년 국제연맹에 가입한 이라크는 영국의 신탁통치에서 벗어나 독립했지만 상당기간 그 영향력 하에 있었다. 알모사위 대사의 ‘역사의 희생양’ 발언 역시 이런 역사적 배경과 궤를 함께 한다. 그는 서방을 직접 비난하진 않았지만 후세인 몰락 이후 이라크를 재편하는 과정에서도 그 같은 자국 이익 우선 전략이 개입됐다고 에둘렀다.

현재 이라크의 모토는 새로운 국가 건설이다. 하지만 첨예한 갈등은 독재자를 내쫓은 후에도 새 국가건설 대신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라크는 이에 대한 대가를 독톡히 치르고 있는 중이다.

세월호 참사를 놓고 우리 사회가 넉 달 이상 몸살을 앓고 있다. 국가 시스템 개조라는 절호의 기회는 정파 간 다툼으로 퇴색된 듯하다. 정쟁으로 변질된 세월호 특별법 문제에 눈살을 찌푸리는 민심도 확산되고 있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내부 갈등의 골이 마치 이라크의 종파 대립을 연상시킨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우리 상황은 무력 충돌만 없을 뿐이지 마치 이라크의 종파 대립을 연상시킬 만큼 첨예하지 않나. 갈등이 커지면, 그에 따라 지불해야 할 대가도 커지는 법이다.

새 국가건설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던 이라크가 내분과 혼란에 빠진 것은 심각한 갈등과 대립 탓이다. 우리 사회도 세월호 참사 후 참담했던 분위기가 국가 혁신의 동력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갈등이 치유되지 않으면 그 대가는 오롯이 우리의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깊어지는 갈등을 우리는 외국인들에게 어떻게 설명하겠나. 이라크처럼 ‘역사의 희생양’이라는 말이 변명으로 통할 수 있겠는가.


최익재 국제부문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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