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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만 쳐다보는 후진적 구조 … 힘 받는 분권형 개헌

온라인 중앙일보 2014.09.07 00:40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4년 정기국회 개회식이 열렸다. 하지만 여야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느라 의사 일정을 합의하지 못했다. 국회는 넉 달이 넘도록 법안을 한 건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대한민국 혁신의 조건] 수면 위로 떠오른 개헌론

#600억원. 지난 넉 달간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한 국회가 쓴 돈이다. 모두 국민이 낸 세금이다. 국회의원 300명의 보수와 보좌진 급여, 사무실 운영비 등을 합친 액수다. 가장 최근 법률안이 통과된 것은 지난 5월 2일(76건 처리). 이후 9월 6일까지 127일 동안 국회는 손을 놓았다. 10월부터 소득이 최저생계비보다 조금 많거나 부양 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아무 지원을 받지 못하던 빈곤층 40만 명에게 2300억원이 지원될 예정이었지만, 이를 규정한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일명 ‘송파 세 모녀법’)이 국회에 묶여 무산 위기다.



 그러는 동안 새정치민주연합은 “대통령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결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새누리당도 청와대만 쳐다보고 있다는 비판이 내부에서도 나온다. 국회가 법안 통과는 물론이고 갈등 해결과 의제 설정조차 못 하는 ‘정치 불능’ 상태에 빠진 셈이다. 그러면서도 의원들은 4일 1인당 387만원씩 총 11억여원의 추석 상여금을 받았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직은 8개월째 공석이다. 11월 부산으로의 본사 이전 등을 챙겨야 하는데 의사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각각 올 2, 3월부터 기관장 자리가 빈 강원랜드와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도 예산 집행이 늦어지고 있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예산 조기 집행을 천명한 정부 기조와 배치된다.



 현재 공공기관 304곳 중 기관장이 공석이거나 임기가 만료됐지만 후임을 못 정한 곳은 30여 곳. “청와대 눈치 보느라 임원추천위원회가 제 기능을 못한다”(H공공기관 노조위원장)는 분석이 정설이다. 대통령과 그 주변에 인사권이 집중되다 보니 의사결정에 과부하가 걸려 나타나는 폐해도 적지 않다. “대통령제가 과연 신속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인가”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의원 절반 가까이 개헌 모임서 활동

대한민국 정치는 ‘부도 상태’다. 이해 조정 기능이 실종됐다. 한국 정치 특유의 여야 간 강대강 대결로 날을 지새운다. 모두 대통령만 쳐다보니 국회에서의 정치 불능은 더 심화된다. 야당은 야당대로 여당과의 대치 정국에서 법안이나 예산을 볼모로 잡곤 한다. 정부가 국무회의를 거쳐 내놓은 정책도 국회에 가면 함흥차사가 되곤 한다.



 그뿐 아니다. 국회 법사위원장이 법률 자구에 손을 대면서 사실상 법안 통과를 가로막는가 하면, 국회선진화법으로 다수결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국회의장도 직권 상정을 못 하고 있으니 국회 안에는 조정 기능이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책임제의 장점으로 강조되던 효율성은 실종된 지 오래다.



 이를 타파하자며 개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19대 국회의원 300명 중 절반에 가까운 148명이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간사 이군현·우윤근 의원)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대통령=외치, 총리=내정’으로 구분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한다.



 올해 1월 구성된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위원장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도 6년 단임의 분권형 대통령제와 국회 양원제 도입을 위한 헌법 개정을 하자고 지난 5월에 제안했다. “국민이 직선하는 대통령이 통일·외교안보·국민통합을, 국회가 선출하는 국무총리가 그 외의 일반 행정을 담당하게 한다. 국회 역시 민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지역대표)이 상호 견제하도록 한다”는 게 요지다. 국회와 행정부가 상호 견제할 수 있도록 민의원은 재적 의원 과반수가 후임 국무총리를 선출하는 방법으로 현직 국무총리를 불신임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무총리를 불신임하면 내각이 총사퇴하며, 개별 국무위원도 불신임이 가능하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비판에 대한 대안으로 많이 거론된다. 정재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오늘날 국정 범위가 넓어지고 있고 외교·국방·통일만 해도 일이 많아져 행정을 국무총리에게 분산시키면 국정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양원제의 경우 일반인들의 인식은 낮지만 정치인과 법학자들 사이에선 도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의뢰로 2006년과 2010년 작성된 두 편의 헌법 개정안과 2009년 국회의장 헌법자문위원회가 작성한 헌법 개정안이 모두 지역대표형 상원제를 제시했다. 2010년 10월 한국헌법학회·한국공법학회·한국정치학회 회원과 헌법재판소 연구원 등 전문가 25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0.3%가 지역대표형 상원제 도입을 찬성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개헌 논의 끝내야”

올해 헌법개정자문위가 내놓은 양원제 안은 이렇다. “민의원은 200명 이상, 참의원은 100명 이하로 하며 민의원에는 국무총리 선출·불신임권을 주고 참의원엔 대법원장·대법관·헌법재판관 등 임명동의권을 준다. 민의원 중에는 비례대표를 50% 이상 포함하고, 참의원도 지역대표 기능으로 수를 제한해 국회 비대화를 방지한다.”



 김철수 교수는 “지금 국회가 법률 한 건 못 만들고 장외투쟁하는 데는 의회정치 경험이 없는 초선 의원이 50%에 달하고, 전횡을 막을 수단이 없는 것도 원인”이라며 “경험 있는 이들이 상원에서 견제하면 일하는 국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자체가 점차 입법권을 요구하는데 그런 점에서도 지방정부를 대표하는 상원이 바람직하다. 통일 후 북한 출신이 지자체를 대표하게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안성호(행정학) 대전대 교수도 “지역대표형 상원제는 권력 공유 민주제의 핵심 요소인 자치·비례성·소수거부권을 한꺼번에 충족시킬 수 있다”며 “양원제를 도입하면 입법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지만 정당들 간의 지나친 대립을 완화해 전체적으로 보면 효율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국회의회연맹(IPU)에 따르면 194개 국가 중 40%인 78곳이 양원제를 채택(2012년 기준)하고 있다.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선 19곳(56%)이 양원 국회를 운영한다. 인구 1200만 명 이상 13개 회원국 중 단원제 국가는 한국과 터키뿐이다.



 다양하고 분절된 민의를 제도권에서 충실히 대표하고 반영하려면 비례대표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이국영(정치학) 성균관대 교수는 “개헌에서 중요한 사안은 정당정치의 파행성, 즉 거대 양당의 적대정치를 종식시킬 수 있는 제도”라며 “합의제 민주주의의 제도적 기반은 순수한 비례대표제 선거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개헌은 쉽지 않다.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한 뒤, 국민투표에서 유권자 과반수 투표와 과반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중앙일보가 2012년 7월 19대 국회의원 233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02명이 ‘개헌에 찬성한다’고 답한 바 있다. 국회 개헌선(200명)을 웃도는 응답이었다. 그런데도 개헌은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집권층이 자신의 권력을 제한할 개헌을 좋아하지 않아서다. 대선 후보 시절 4년 중임제 개헌을 추진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논의를 미뤘다.



 그런 제약을 감안하면 개헌은 차기 국회의원·대통령이 정해지기 전에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결국 총선·대선이 있기 전인 내년 상반기까지는 논의를 끝내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누가 개헌에 동력을 불어넣어 밀고 나가느냐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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