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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명꼴 '사람 찾기 명수' … 13년간 4200명 가족 품으로

중앙일보 2014.09.06 01:45 종합 10면 지면보기
그에게선 눈물의 냄새가 났다.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눈물이다. 헤어진 가족의 아픔에 눈가를 훔쳤고, 만남의 환희에 손수건을 적셨다. 이번 한가위 명절도 예외가 아니다. 강화도 시인 함민복의 ‘눈물은 짜다’를 실감했다.


[박정호의 사람 풍경] 경찰청 장기실종자추적팀장 이건수 경위

 그는 경찰청 장기실종자추적팀장 이건수(46) 경위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5일,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소식조차 몰랐던 이산가족들의 벅찬 상봉을 도왔다. 일곱 살 코흘리개 무렵 가족과 생이별한 재미동포 진영숙(58)씨의 ‘뿌리’를 찾아줬다.



어린애나 치매노인 실종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건수 경위는 지문·얼굴 사전등록제를 이용하는 게 좋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어떤 사연인가요.



 “51년 전 진씨의 아버지가 어린 딸을 남의 집 식모살이로 맡겼나봐요. 어느 날 잠깐 집 밖에 나갔다가 길을 잃었대요. 고아원에서 자랐고, 다 커서 미국 남성과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갔어요. 자식들 잘 키우고 나서 한국에 있는 가족을 백방으로 찾았는데, 포기 직전에 진씨의 큰딸이 제게 e메일을 보내왔어요. 지난 4월 말이었죠. 4개월 수소문 끝에 한국의 가족과 연락이 닿게 됐어요.”



 - 찾는 데 시간이 꽤 많이 걸렸네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사는 진영숙(58·오른쪽)씨가 5일 경기도 구리시에서 언니 영자(60)씨와 남동생 길호(56)씨를 51년 만에 만나고 있다.
 “자기 성을 김씨로 알고 있었어요. 실종 당시의 인상, 기억나는 이름, 가족관계 등을 종합해 추적하는데 김영숙은 너무 흔한 이름이잖아요. 김씨로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국내에서 가장 많은 성씨(姓氏) 40개를 대입해 다시 찾았어요. 총 2700가정을 훑었습니다. 그러다 진씨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 영숙씨 첫 반응이 어떻던가요.



 “미국에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했죠. 아버지께선 돌아가셨지만 남동생과 언니를 찾았다고요. 첫마디가 ‘오 마이 갓(Oh My God)’이었습니다. 20분 동안 눈물만 흘렸어요. 이번 추석에 미국 음식을 준비해 가족과 함께 지내겠다고 했죠.”



 이 경위는 사람 찾기의 명수다. 2002년 경기도 남양주경찰서 종합민원실에서 우연히 맡은 일이 천직이 됐다. 올해로 13년째 고아·미아·입양자·실종자 4200여 명의 만남을 주선해왔다. 거의 하루에 한 명꼴이다. 모범공무원상·청룡봉사상 등을 수상했고, 지난해에는 미국 월드레코드 아카데미로부터 이산가족 상봉 세계 최고기록을 인정받기도 했다.



 - 열정과 지구력이 대단합니다.



 “여기까지 오게 될지 생각도 못 했어요. 누가 강요한 일도 아니죠. 한 명 두 명 남의 아픔과 함께하다 보니 사명이 된 것 같습니다. 지금은 기쁘게 생각합니다. 사명은 목숨보다 귀하다는 것도 알게 됐죠.”



 -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1997년 경찰시험을 보고 남양주파출소에 처음 배치됐어요. 경찰서 유치장에서 일할 때 검찰로 넘어가는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했더니 2002년 2월 민원실로 스카우트됐습니다. 성심을 다한 만큼 소문이 났어요. ‘우리 아들·딸 좀 찾아달라’며 전국에서 찾아왔습니다. 해외에서도 문의가 밀려들었고요.”



지난해 미국 월드레코드 아카데미가 이건수 경위에게 수여한 실종가족 찾아주기 세계 최고기록 인증서.
 - 지금은 경찰청에서 일하는데요.



 “지난해 2월에 왔습니다. 실종자 업무를 체계 있게 하자는 뜻에서입니다. 장기실종자추적팀은 올 7월에 생겼고요. 그간 닦아온 전문성을 인정받아 팀장을 맡게 됐죠. 2007년부터 KBS ‘그 사람이 보고 싶다’ ‘실종 어린이를 찾습니다’ 등에 고정출연하며 가족 찾기를 널리 알렸고요.”



 - 말이 4200명이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낮에는 상담하고, 밤에는 현장을 다니고 밤낮없이 뛴 것 같습니다. 정해진 업무 시간이 따로 없었죠. 월급을 더 많이 받은 것도 아니고요. 이웃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거든요. ‘혹시 유명해지려고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었을 때가 가장 마음이 아팠어요.”



 - 무슨 힘으로 버틸 수 있었을까요.



 “상고(부산상고·현 개성고) 출신입니다. 은행에 취직했어야 하는데, 남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 경남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경찰이 됐습니다. 어려서 가정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고향이 전남 강진군 마량면인데, 힘든 살림에도 어머님께서 중학교 때부터 부산에 유학을 보내주셨어요. 대학 졸업 때까지 연탄 한 번 때 본 적이 없을 만큼 가난했지만 저보다 못한 이에게 보탬이 되고 싶었습니다.”



 - 보직을 바꾸고 싶지 않았나요.



 “아니요. 제 사명인데요. 우리나라에는 열 집에 한 집꼴로 잃어버린 가족이 있습니다. 땅덩어리는 좁은데 이산가족이 그 어느 나라보다 많은 편이죠. 그만큼 모두가 힘겹게 살아왔다는 뜻도 됩니다. 예를 들면 50대에는 전쟁 고아, 남북 이산가족이 쏟아졌고, 60~70년대에는 입을 덜려고 남의 집에 자식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죠. 부끄럽지만 해외 입양 건수도 가장 많은 나라잖아요.”



 - 요즘은 어떤가요. 상황이 나아졌나요.



 “지난 3년 평균 매해 4만 명의 실종자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미아(迷兒) 등 실종자 95% 정도는 바로 집을 찾게 됩니다. 가정·개인 문제에 따른 가출이나 자녀 유기(遺棄), 정신장애자·치매노인의 실종을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요.”



 - 사람 찾는 법도 많이 발전했겠죠.



 “처음에는 주먹구구식이었어요. 성과 이름, 주소가 단서였습니다. 비슷한 이름을 찾아 일단 편지를 띄우죠. 지금까지 편지만 8만 통 가까이 썼습니다. 흔한 이름일 경우 한 사람을 찾으려고 1000통 정도 쓰는 건 예사입니다. 요즘에는 유전자 대조, 지문 검색, CCTV 활용 등 과학 수사가 활발합니다.”



 - 에피소드도 많았겠습니다.



 “아무리 과학 수사라고 해도 가장 중요한 건 현장 방문입니다. 책상에 앉아 해결할 수 없는 게 많아요. 전국을 안 다닌 곳이 없어요. 일과를 마친 밤 시간을 주로 이용합니다. 이름을 확인하려 남의 집 우편물을 뒤지다가 도둑으로 오해받거나, 구정물을 뒤집어쓴 적이 있었죠. 그래도 삶의 끈을 잃어버린 이웃에게 작은 희망을 줄 수 있는 지푸라기라도 찾으려는 심정에서 중간에 포기할 수 없었어요.”



 - 집안에 혹시 실종자가 있었나요.



 “아니요. 자식들을 잘되라고 모든 걸 희생해온 고향 어머님을 생각하면 없던 힘도 났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못 찾은 경우도 적지 않아요. 그분들 앞에선 늘 죄인 같은 심정이죠. 주변에선 ‘대단한 일을 한다’며 격려해주지만 정성이 부족한 건 아닌지 항상 죄송할 마음일 뿐입니다.”



 - 종교적 비장함마저 느껴집니다.



 “대학 2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아내도 현재 목사 안수를 앞두고 있고요. 경찰관으로서의 사명도 있었지만 신앙심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매일 같이 늦게 들어오는 ‘0점 남편’ ‘0점 아빠’를 이해해준 가족들에게 미안한 건 어쩔 수 없지만요.”



 - 남은 바람이 있다면요.



 “좀 더 전문성을 쌓고 그간의 노하우를 주변과 나누려고 합니다. 동국대 범죄심리학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에 다니고 있거든요. 딱 하나 더 꼽는다면 남북한에 흩어진 이산가족을 보다 많이 연결해주고 싶어요. 그러려면 통일이 빨리 와야 하겠죠. 너무 꿈이 큰가요.”



박정호 문화·스포츠·섹션 에디터





[S BOX] 추적팀 여경 5인조의 힘 … 두 달 만에 600명 찾아



실종자추적팀 멤버들. 왼쪽부터 정유정 경위, 이건수 팀장, 홍보영·왕기원·이미순 경위, 이주영 경사.


지난 7월 활동을 시작한 장기실종자추적팀(이하 추적팀)의 발걸음이 가볍다. 출범 두 달여 만에 600여 명의 실종자를 찾아냈다. 발족 당시 소재를 알 수 없었던 장기실종자는 모두 2382명으로 집계됐다. 앞으로 1800명 가까운 이들을 가족에게 돌려보내야 할 숙제가 남았지만 일단 출발은 순조로운 편이다.



 장기실종자는 실종된 지 48시간이 지난 이들을 가리킨다. 실제로는 대부분 1년 이상 귀가하지 못한 이들이다.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진전된 과학수사 덕분이다. 추적팀은 실종자 가족 면담부터 현장 재조사, 전국 경찰서와의 공조 등을 지휘한다. 실종자 찾기 컨트롤타워인 셈이다.



 서울 용산구 갈현동에 사무실이 있는 추적팀은 일종의 ‘꽃밭’이다. 이건수 팀장을 제외한 나머지 팀원 다섯 모두 여경이다. 청소년 아동 업무 현장에서 평균 20년 넘게 뛰어온 베테랑으로 구성됐다. 이곳에 오기 직전에 정유정(50) 경위는 서울 중량경찰서에서, 왕기원(47) 경위는 경기경찰청 112 지령실에서, 이미순(45) 경위는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홍보영(44) 경위는 경찰청 과학수사반에서, 이주영(38) 경사는 서울 강남경찰서 사이버수사팀에서 일했다.



 정유정 경위는 “각자 쌓아 온 기량을 이번 추적팀에서 서로 공유하며 업무 효율을 높이고 있다”며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실종자 상담 전문전화 182를 찾아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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