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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그림자' 경호관

중앙일보 2014.09.06 01:39 종합 11면 지면보기



평균 무술 단수 5단 … 2대 8 가르마 신분 노출돼 이젠 안 해







‘임무를 위해 목숨을 바칠 용기가 있는 사람’.



 대한민국 7급 공무원 공개채용을 알리는 포스터에 첫 번째로 적힌 자격 요건이다. 두 번째 요건. ‘철저한 자기관리로 항상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둘을 연결하면 ‘항상 관리를 잘해 임무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다. 무시무시한 조건이다. 군인도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싸우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처럼 대놓고 ‘죽을 용기’를 요구하진 않는다.



 이 포스터는 대통령 경호실 경호관을 뽑는 포스터다.



 대통령 경호관은 경호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대통령 대신 죽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그런 죽을 각오가 돼 있는 정예요원을 청와대가 9월 1일부터 12일까지 모집한다. 모집요강은 대통령 경호실 홈페이지(www.pss.go.kr) 참조.



 대통령 경호관은 1988년부터 격년으로 공채를 시작해 2006년부터는 매년(2008년 미실시) 뽑고 있다. 경쟁률이 100 대 1 안팎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다. 2004년부터 여성에게도 문호를 개방해 4명의 첫 합격자를 배출했다. 이후 매년 1~2명의 여성 경호관이 탄생하고 있다.



  희생정신만으로 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대통령 경호관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일까.



 경호관 하면 으레 다부진 체격을 가진 체육학과 출신의 무술 유단자를 떠올린다. 실제 대통령 경호관의 무도 실력은 대단하다. 재직하고 있는 경호관 중에는 무려 무술 20단도 있다.



 2008년 10월 황영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300여 명의 경호처(현 경호실) 소속 경호관의 무술 단수를 모두 합치면 1503단이었다. 1인당 평균 5단이다.



 하지만 합격 전부터 모두 무도인으로 살아온 건 아니다. 경호관 중 상당수는 합격 후 무도인으로 만들어졌다. 경호관 공채 시험 과목에는 무술 과목이 없다. 다만 경호실 교육훈련 규정에 일정한 무도 실력을 갖추도록 규정해 의무적으로 무도를 연마해야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경호관의 훈련 모습을 보고 “도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니 무섭다. 꼭 저렇게까지 힘들게 해야 하느냐”고 말한 적도 있을 정도로 하드 트레이닝을 해야 한다.



 공채 시험에 중요한 건 오히려 영어 성적이다. 토익(700점)·텝스(625점)·토플(PBT 530점, CBT 197점, IBT 71점) 등 공인영어 성적이 없으면 지원조차 못한다. 영어 점수 문턱만 놓고 보면 행정고시로 불리는 5급 공채와 차이가 없다.



 경호실 관계자는 “과거에는 영어 시험을 봤는데 2010년 공인영어로 바뀐 뒤 지원자 중 허수가 상당히 줄었다”고 말했다. 단순히 지원자를 줄이자고 영어 점수를 요구하는 건 아니다. 실제 경호 작전에서 영어가 매우 중요해서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가면 현지 국가의 경호요원과 현장에서 협력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영어 실력이 필수다.



 합격자의 ‘스펙(취업에 필요한 경력·학점·어학 점수·자격증 등을 지칭)’은 다양하다. 경호학과 혹은 체육학과 출신은 오히려 합격자 중 비율이 낮다고 한다. 이른바 ‘스카이(SKY)’로 불리는 명문대 출신도 여럿 있고, 방송 리포터 출신의 여성이 합격한 사례도 있다.



 경호실 관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12월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에 방문했을 때 경호관의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은 장교가 지원해 합격한 사례도 있다”며 “일반 공무원이나 회사원으로 근무하다가 옮겨온 경우도 상당수”라고 전했다.



 그렇다고 공부만 잘해 합격하기는 매우 어렵다.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하더라도 2차 시험 때 윗몸일으키기(근지구력)·제자리멀리뛰기(순발력)·달리기(심폐지구력)·10m 왕복 달리기(민첩성)·등(背) 근력 등 5개 체력 검정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경호관의 ‘직업병’=대통령 경호관은 작전 중 한시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언제, 어디서 돌발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서다. 자연스레 직업병이 생기게 된다. 대표적인 게 상대방의 눈을 또렷이 보는 버릇이란다.



 눈빛이 이상하면 거동이 수상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남성 경호관은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자꾸 파악하는 버릇이 있다”며 “소개팅을 나가면 눈을 뚫어져라 보니까 상대방이 부담스러워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한 여성 경호관은 소개팅을 마친 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먼저 뛰어가 엘리베이터 문을 잡고 상대방 남성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경호 습관이 몸에 밴 까닭이다.



 대통령 경호관은 단정한 용모가 기본이다. 대통령 행사의 격 때문이다. 과거에는 선배 경호관이 후배들에게 “팬티까지 다려 입으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그만큼 ‘각 잡힌’ 복장이 중시된다. 경호관은 청와대 외부 행사에 나가면 정장 차림을 한다. 정장은 요즘 패셔니스타 기준으로 보면 다소 크게 보일 정도로 넉넉하다.



 이유가 있다. 몸에 딱 달라붙으면 권총과 무전기 등 각종 장비를 상의 안에 착용하기에 불편하기 때문이다.



 경호관의 대표 헤어스타일로 통하는 ‘2 대 8 가르마’는 이제 옛날 얘기다. 신세대 경호관 중 그런 머리 모양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다만 간부급 경호관은 여전히 2 대 8 가르마를 한다. 경호 작전 때는 전통 헤어스타일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 대통령 바로 곁에 있는 근접경호가 아니라 행사장 곳곳에 잠복해 있을 때는 ‘2 대 8 가르마’가 오히려 ‘내가 경호관이다’라는 표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남성 경호관은 “머리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남성 경호관의 공통점은 이마를 다 드러낸다는 것”이라며 “심한 파마는 아니어도 파마를 하는 남성 경호관도 있다”고 말했다. 여성 경호관은 적당한 선에서 여느 여성처럼 화장을 하고 머리 염색도 한다. 너무 튀지만 않으면 된다. 한 여성 경호관은 “경호관이라는 이미지에서 너무 벗어나는 건 이상해서 색조 화장을 너무 진하게 하는 건 피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시구를 하는 중에 심판 복장을 한 경호관이 근접경호를 하는 모습. [중앙포토]
 ◆적에겐 철통, 사랑엔 뻥 뚫려=얼마 전 방영된 SBS 드라마 ‘쓰리 데이즈’에선 대통령 경호관이 임무를 위해 사랑까지 포기하는 인물로 묘사됐다. 경호관을 동경하는 사람이라 해도 사랑까지 포기해야 한다면 너무 냉혹하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드라마와 꼭 같지는 않다.



 지난 7월 청와대에선 여성 경호관과 의전비서관실 행정관이 결혼에 골인했다. 둘 다 박근혜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역할이었다. 젊은 남녀가 자주 얼굴을 보다 보니 정이 들었다. 지난해 2월 취임 이후 첫 청와대 직원 커플이 탄생하자 박 대통령은 화환을 보내 축하했다. 어떤 청와대 비서관은 “대통령을 지키랬더니 자기들끼리 눈이 맞으면 어떡하느냐”고 농담을 했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임무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이런 일. 아주 희귀한 일은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이던 1999년 당시 대통령의 수행비서 역할을 하던 여성과 남성 경호관이 결혼을 했다. 당시로선 드문 일이어서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까지 있었다. 하지만 해당 경호관은 “얼굴이 알려지면 경호 작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경호팀장을 맡았다가 청와대로 들어왔던 한명선 전 청와대 비상계획관은 두 딸이 경찰이었다.



 큰딸은 대테러특공대원으로 경찰에 들어와 최초의 여성 ‘스나이퍼’로 경호실에 파견됐다. 영부인 경호를 하다가 대통령 경호관과 결혼했다. 역시 경찰특공대원이었던 작은딸은 경호실에 파견돼 근무 중이던 경찰특공대 소속 경찰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대통령 경호임무가 ‘오작교’ 노릇을 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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