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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음 불가' 기자, 성악가에게 레슨 받아보니

중앙일보 2014.09.06 01:19 종합 15면 지면보기
“멀리 한 곳을 보고 소리를 보낸다고 상상해봐요.” 소프라노 김은경(오른쪽)씨가 기자에게 발성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발성을 속성으로 배울 수는 있지만 평생 해도 다 배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은데, 못 부를 텐데…’.

"90도로 숙여 불러봐요" … ♪찾을 날 와~았나아~♬ 고음이 절로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노래는 거의 끝나가고 있다. “♪ 오늘에야~ 찾을 날 와~았나아~♬.” 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하이라이트다. 이 부분만 잘 넘어가면 된다. 이후 “금강산은~ 부르은~다” 정도는 음이 내려가니 쉽게 부르고 끝낼 수 있다.



그런데 “왔나” 부분이 큰 문제다. 피아노 건반의 가운데 ‘도(C)’에서 한 옥타브 올라가고도 더 올라가 ‘솔(G)’이다. 기자는 여기까지 올라가 본 기억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입은 분명 벌리고 있는데 소리가 안 난다. 아니, 소리는 났다. 단소를 처음 불 때 나던 괴상한 음 같은 것. 레슨을 참관하던 이가 슬그머니 레슨실 문을 닫았다.



이제 노래는 끊어졌다. 어색한 침묵이다. 노래 선생님만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소프라노 김은경(47)씨. 서울대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이탈리아 유학 후 돌아와 ‘라트라비아타’ ‘토스카’ ‘라보엠’ 등 오페라의 여주인공으로 노래한 성악가.



그는 지난 3월부터 세종문화회관의 일반인 강좌인 ‘세종예술아카데미’에서 ‘히든보이스’ 강의를 했다. 15주 동안 30여 명에게 노래를 가르쳤다. 매주 화요일 점심시간에 열린 강좌였다. 그때 다양한 약점의 음치들을 치료했다. 정확하게 한 음씩 낮춰 부르는 음치, 음치는 아니지만 고음에서 입만 벙긋거리며 립싱크를 하는 이, 사람들 앞에 서면 발끝이나 천장만 보는 울렁증 환자들…. 이달 16일 개강하는 수업에 지난 학기 학생 중 60%가 재수강한다고 했다. 그러면 ‘노래를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으리라. 지난달 28일 세종예술아카데미에서 레슨을 청했다. 이번 추석엔 가족에게 ‘고음불가’ 탈출을 선언하리라.



◆상체 힘을 빼다=용한 노래 선생님이 입을 뗐다. “좋아요.” 옆의 사진기자가 키득거린다. 대체 어떤 부분이 좋았나. “할 수 있어요.” 선생님이 다가온다. 복식 호흡을 가르치려나. 그런데 목·배 대신 등에 손을 얹었다. “90도로 인사하듯 숙여봐요.” 허리를 구부리고 발을 봤다. 팔은 축 늘어뜨리라고 했다. 태엽 풀린 인형처럼 힘이 빠졌다. “이제 불러봐요.”



이 자세로 금강산을 찾을 수 있을까. “♪오늘에야~ 찾을 날 와~았나아~♬.” 그런데 이건 무슨 일인가. 소리가 올라간다. 그것도 잘. 힘도 안 줬는데 왜?



“성악 호흡의 기본은 힘을 하체에 주고 상체에선 힘을 빼는 거예요. 감이 잘 안 오면 90도로 구부려보세요.” 족집게 선생님이 계속 말한다. “아니면 승마 자세도 해봐요. 다리를 조금 구부리고 팔을 늘어뜨려요.” 힘은 허벅지에 주는데 노랫소리에 윤기가 생겼다.



물론 처음보다 좋아졌다는 뜻이다. 듣기에는 아직 괴롭다. 성악가는 2000석짜리 공연장을 쩌렁쩌렁 울리지 않던가. “배 어디에 힘을 줘야 하는지도 모르겠죠? 이쪽으로 와서 누워봐요.” 노래를 배우다 바닥에 누울 줄은 몰랐다. 윗몸일으키기까지 할 줄은 더 몰랐다. “더 올라와 봐요 더!” 땅과 등이 45도쯤 됐을 때 선생님이 외쳤다. “정지!” 이때 힘이 들어가고 아픈 아랫배, 여기가 바로 꾀꼬리 소리의 발원지다. 여기에 힘을 주고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 “♬누구의~ 주제 러언~가.” 소리에 힘이 생겼다. 음정도 더 정확히 맞는다. 복식 호흡이라 해서 배 아무 곳에나 힘을 줬던 것이 부끄럽다.



“♬그~리이이운 만~이이천~봉.” 들을 땐 몰랐는데 대단히 어려운 부분이다. 높은 음(파)에서 바로 시작해야 하고, 계단식으로 내려오는 음표 때문에 힘이 탁 풀린다. 선생님이 다시 나섰다. “너무 아플 때 이 악물고 참으며 ‘으’ 하고 소리 낸 적 있죠? 그렇게 해봐요.” 대신 어깨에 힘 빼고 ‘윗몸일으키기 복부’에만 힘을 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부분도 아까보다 부드럽게 통과~.



◆숨을 채우다=“♩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역시 들을 땐 몰랐던 어려움이 있었다. 직접 불러보니 음정 도약이 크다. 낮은 음역에선 원래 목소리, 고음에서는 가성(假聲)으로 슬쩍 넘어가 보려 했다. “잠깐, 잠깐.”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가 멈췄다. “성악 발성은 고음·저음에서 변화가 없어야 돼요. 목으로 조절하는 게 아니라 호흡으로 음역을 바꾸는 거죠.” 물론 쉽지 않다. “대중 가요는 낮은 음에서 생소리로 자연스럽게 부르고, 고음에서 가성으로 돌려 부르는 거죠. 그런데 성악가는 변화 없이 한 발성으로 불러요.” 이 방법은 들은 그대로 옮겨본다. 복식 호흡으로 온몸에 숨을 채운다. 얼굴의 피부 바로 밑까지 숨을 한껏 채운 느낌이 들어야 한다. 이렇게 채운 숨을 고음과 저음에 맞춰 돌려가면서 부른다. 설명을 마친 선생님이 시범을 보일 때는 그럴듯했다. 꽉 찬 호흡이 밀려나오는 것이 보일 듯했다. 따라 해보려 했지만 영 다른 소리가 났다.



◆몸 구석구석을 쓰다=이제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하는데 등에 땀이 주르륵 흐른다. 덥기까지 하다. 노래인지 운동인지 모르겠다. “성악가는 몸이 악기잖아요. 노래는 자신의 몸을 알아가는 과정이에요.” 허벅지나 배의 근육만 느끼는 게 아니다. ‘흥’ 하고 코 풀 때처럼 불러야 하는 부분도 있다. 선생님이 콧잔등을 잡았다. “사람이 뭘 하든지 목표가 있어야죠. 코 풀 때처럼 부르되 어디를 향해서 푸는지 확실히 해야 돼요.” 지금 노래 부르는 곳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라 생각하고 3층 객석까지 소리를 보낸다 생각하란 뜻이다. 이처럼 레슨 중 갖가지 비유에는 오감이 동원됐다. “입도 느껴봐요. 버블티 빨대 말고 작은 요구르트 빨대로 빠는 느낌으로!” 밀도 있는 소리를 내라는 주문이다. 배에 힘을 주고 자신 있게 부르는 게 다가 아니다. 근육의 기어를 바꿔가면서 고음과 저음을 오가고, 몸 이곳저곳을 돌봐야 했다.



이처럼 노래는 몸을 탐험하는 일이었다. 내 몸에 오롯이 집중하는 순간, 소리는 노래가 됐다. “사회에서 우리는 언제나 겸손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노래할 때만큼은 나, 내 몸만 생각해도 돼요.” 노래하면서 나를 마음껏 자랑하라는 뜻이다. ‘히든보이스’ 강좌를 듣고 간 많은 사람이 자신감을 얻어갔다고 했다. 20대 외교부 직원부터 60대 기업체 회장까지 다양한 이들이었다. 수강생들은 본명 대신 ‘파바로티’ ‘칼라스’ ‘비올레타’ 같은 성악가·오페라 주인공 이름을 썼다. 평상시의 자신을 잊고 노래로 주인공이 된다는 뜻이다.



◆자습하다=한 시간여 동안 ‘그리운 금강산’을 배웠다. 집에 와 다시 불러보니 레슨 시간처럼 잘 되진 않았다.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당연히 혼자 연구하고 고민하면서 여러 번 불러봐야죠. 수십 년 발성을 연구한 테너 박인수 선생님은 요즘에도 ‘발성을 바꿔보니까 소리가 좀 나은 것 같아’라고 하세요. 저는 당연히 아직도 호흡을 배우는 거고요.” 믿었던 선생님도 아직 공부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노래에는 성역이 없어요. 잘하든 못하든 탐구하면서 하는 거예요.” 자신의 몸과 호흡을 통제하며 감정을 내보이는 훈련, 그게 노래다. 결국 ‘나도 노래를 잘할 수 있나’라는 질문엔 이런 답을 받았다. “자신을 잘 알고 있어야죠.”



글=김호정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호정 기자는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 음대를 졸업했고 피아노를 18년 공부했다. 2005년 중앙일보에 입사했을 때 “노래 잘하겠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하지만 타고난 저음과 힘겹게 싸우며 노래하는 스타일로 ‘음대생’에 대한 주변의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깨버렸다. 현재 문화부의 클래식 음악 담당기자다. 남의 노래 듣고 평가하길 즐기지만 웬만해서는 마이크를 잡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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