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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돕는 '영안' 노화 막는 '흑광' 헬리코박터 없애는 '조생흑찰' … 밥이 보약이네

중앙일보 2014.09.06 01:16 종합 16면 지면보기
왼쪽부터 노화를 막는 ‘흑광’, 성인병 예방에 좋은 ‘큰눈’, 어린이 성장을 돕는 ‘하이아미’, 콜레스테롤을 줄여주는 ‘흥국쌀’, 헬리코박터를 없애는 ‘조생흑찰’.


“밥이 보약이다.” 한국인이라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익숙한 말이다. 어린 시절 밥상머리에서 밥알 숫자를 세며 깨작거리다 할머니께 들켜 지청구를 들어본 경험이 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물론 밥이 정말로 보약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자손들이 밥을 많이 먹고 무탈하게 무럭무럭 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비유적 표현일 뿐.

속속 개발되는 기능성 쌀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저 말을 단순한 비유로 치부하고 넘기기 어렵게 됐다. 말 그대로 보약 같은 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기능성 쌀’이다.



 기능성 쌀은 건강에 좋은 다양한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새 품종들을 말한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현재까지 개발된 기능성 쌀은 10여 종에 이른다. 이 쌀들은 다시 몇 가지 묶음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먼저 어린이 성장에 도움이 되는 쌀이다. ‘하이아미’와 ‘영안’이 이에 해당한다. ‘하이아미’는 밥맛이 좋고 아미노산이 풍부해 어린이 성장에 큰 도움을 준다. ‘영안’에는 8대 아미노산 중 하나로 성장을 돕고 소화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는 라이신이 다량 함유돼 있다.



 ‘삼광’과 ‘큰눈’은 발아현미용으로 활용할 수 있어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주는 품종들이다. ‘삼광’은 병해에 강해 친환경으로 재배할 수 있기 때문에 발아현미용으로 적합하다. ‘큰눈’은 배아(쌀눈)가 일반 쌀보다 3배 이상 커 발아현미로 가공하면 가바(GABA) 함량이 9배 정도 높아진다. 가바는 비만 억제와 혈압 저하 효과가 있고 두뇌 활동을 활발하게 해 집중력과 기억력도 높여 준다. 가바는 또 알코올 분해 효과가 탁월해 애주가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밀양 263호’ 역시 가바 함유량이 많은 쌀이다. ‘고아미 4호’는 식이섬유와 철분·아연 함량이 높아 다이어트용으로 권장되고 있다. 빈혈 예방에도 좋다.



가는 세월을 붙잡고 싶은 어르신들이 반가워할 만한 쌀도 있다. 검은색을 띠고 있는 ‘흑광’과 ‘흑진주’가 대표적이다. 이들 쌀에 함유된 검은 색소는 인체에 나쁜 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작용을 해 노화를 방지한다. 또 성인병을 예방하는 안토시아닌과 식이섬유도 많이 포함돼 있다.



1997년 탄생한 흑진주는 특히 국내 최초의 유색(有色) 쌀로 유명하다. 흑진주 개발 비화도 흥미롭다. 농촌진흥청 최임수 박사 등이 집필한 『벼의 진화:자연진화 1만년, 인공진화 50년』 자료에 따르면 흑진주의 조상은 중국의 흑자색 쌀인 ‘용금 1호’다. 90년 중국 지린(吉林)성 농업과학원에 출장을 갔던 한 연구원이 용금 1호를 보고 이 쌀을 볶은 가공현미를 국내로 들여왔다. 연구원은 이 가공현미에서 씨눈을 추출한 뒤 배양시켜 식물체로 키워냈는데 그중 색깔이 양호한 우량 개체들을 선발해 만든 것이 바로 흑진주다. ‘현대판 문익점’인 셈이다. 이 밖에 ‘건강홍미’도 항산화 성분인 페루릭산·아피게닌·텍시폴린 등 폴리페놀 성분의 함량이 높다.



 식의약 소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능성이 강화된 쌀들도 있다. ‘조생흑찰’은 위염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없애는 데 효과적이다. ‘홍국쌀’은 상주찰벼에 붉은 누룩곰팡이인 홍국균을 접종해 발효한 쌀이다. 주요 기능 성분인 ‘모나콜린K’는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을 증가시키고 해로운 콜레스테롤을 줄여 준다. ‘눈큰흑찰’은 지용성 활성성분인 감마오리자놀과 토코페롤을 함유해 대사증후군 예방에 도움이 된다.



새로운 쌀을 개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 농진청에 따르면 새 품종 개발에만 7~12년이 걸리고 품종 출원 및 등록, 종자 생산 확대 등을 통해 농가에 보급하는 데 4~7년이 추가로 소요된다. 총 15년 안팎의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농진청은 2017년까지 10개 품종을 추가로 개발한다는 계획하에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들 쌀은 대부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이점식 농진청 연구관은 “눈큰흑찰의 경우 2012년에 개발돼 아직 상품화가 안 됐지만 다른 쌀들은 인터넷쇼핑몰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며 “구하기 어려운 품종이 있으면 기능성 쌀의 40% 이상을 경작하고 있는 경남 고성군 농촌기술센터(055-670-4111)에 문의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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