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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금융위기는 다시 온다

중앙일보 2014.09.06 00:28 종합 27면 지면보기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도둑처럼 찾아오는 것이 금융위기다. 방심한 사이에 용케도 허술한 틈을 찾아 들어온다. 금융위기를 겪어보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인간의 타고난 능력, 망각이 있기에 위기가 준 고통의 경험은 잊혀지고 조금씩 방비를 내리게 된다. 그래서 금융위기는 되풀이되는 것이다. 하버드대의 라인하트와 로고프 교수의 공저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 2010』는 지난 8세기 동안 66개국의 금융위기를 연구한 결과를 담고 있다. 결론은 정책당국자들이 매번 이번엔 다르다고 했지만 금융위기는 또 터졌다는 것이다.



 1997년 외환금융위기의 주범은 기업대출이었다. 은행과 제2금융권에 당시 우리 국민총소득의 약 3분의 1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기업의 부채를 정리해주고 위기가 극복되었다. 5대 시중은행이 모두 거덜나 이들의 이름은 오늘날 금융가에서 사라졌다. 30대 재벌 중 16개 재벌이 도산해 다른 재벌 혹은 외국기업에 인수되었다. 기업들에 대한 부채탕감과 금융기관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은 결과적으로 이들을 인수한 재벌들과 외국인투자자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간 셈이다. 위기 후 기업과 금융기관의 재무건전성은 크게 개선됐으나 오늘날 한국 주요 대기업과 금융지주회사 주식 지분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 주주 손에 넘어가 있다.



 97년 위기 이후 기업투자는 크게 줄고, 은행의 대출구조도 변했다. 기업들은 위기를 통해 빚이 무섭다는 것을 절감했고, 투자위험에 대해 보다 현실적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많이 빌려 자산과 덩치를 키우면 대마불사로 오히려 도산 위험을 줄일 수 있었다. 정부가 관치금융을 통해 금리를 내리고, 특별융자를 줘 기업의 재무적 어려움을 구제해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연한 도덕적 해이는 자본시장이 개방, 자유화되고 글로벌 규준이 도입되면서 맥을 추기 어렵게 됐다. 부채비율이 높아지면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차입금리가 높아지며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져 결국 도산의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것을 기업들은 이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낮은 부채비율을 유지하자니 더 이상 전과 같이 방만한 투자를 해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외환위기가 극복되고 기업대출이 줄자 은행들은 가계대출을 대폭 늘리게 되었다. 이것이 위기 이후 기업투자는 줄고, 금융구조조정이 대충 마무리된 2002년부터 집값이 급등하게 된 주 요인이었다.



 최경환 경제팀은 LTV, DTI 규제를 완화하고 금리까지 낮추면서 부동산시장을 활성화하고 자산효과에 의한 소비진작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활성화 대책에 정치와 언론, 재계, 금융계는 모두 환영 일색이다. 대부분의 재벌들은 건설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또한 한국의 크고 작은 건설업체들은 지방, 중앙 정치인들의 주요 후원자이며 언론의 주요 광고수입원이다. 주택대출이 많은 은행은 집값이 계속 올라줘야 하고, 150조원에 달하는 채권을 보유한 증권사들은 금리인하로 자본이익을 원하고 있다. 총선을 일 년 반 앞둔 지금 여당과 재계, 언론, 금융계의 이해가 합치하는 부분이 부동산경기 부양이며 금리인하다.



 그러나 부동산경기 중심 경제활성화 대책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기반을 더욱 취약하게 하고 필요한 구조조정을 지체시킨다. 과거 성장과 개발이 빠르게 일어나고, 도시로 인구가 대거 모여들 때 형성된 건설부문의 시공능력은 인프라 건설과 주택수요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서 과잉상태가 되어 있다. 80년대까지 토건국가를 지속하다 90년대 부동산발 금융위기를 맞고 고꾸라진 일본 경제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고통스럽지만 지금 조정이 필요하다.



 우리보다 발전 경험이 앞선 선진국들에서는 과거 많은 위기의 경험을 통해 오늘날의 금융제도를 정착시켜왔다. 금융감독기관과 중앙은행 장(長)의 임기를 보장하고 이들의 정치적 독립성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또한 관료의 신분을 보장해 이들이 단기적 정치적 이해와 여론의 압박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 국가 사회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제도화해 뒷받침하고 있다. 이렇게 해도 위기란 도둑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금융위기가 터지면 그 비용은 결국 납세자들이 지게 된다. 위기로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서민층과 청년들이다. 그리고 정치와 언론은 그때 가면 다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찾아 매도하게 될 것이다. 국가경제, 금융부문의 건전성을 지켜야 할 최후의 경비병은 금융감독기관과 중앙은행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가계저축률이 세계 최저수준인 3%대로 내려와 있는데 정부는 다시 빚을 권하고 있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끝내고 금리인상을 시작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감독기관과 중앙은행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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