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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슈바이처 같은 의사가 되려면

중앙일보 2014.09.06 00:26 종합 26면 지면보기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저녁 모임에서 한 선배가 말했습니다. “목표와 꿈은 다른 거라고 생각해.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만약 네가 의대에 진학하려고 한다면 그건 너의 목표이지, 너의 꿈은 아니다.” 그러자 아이가 물었답니다. “목표와 꿈이 어떻게 달라?” 선배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가령 네가 ‘나는 의사가 될 거야’라고 한다면 그건 너의 목표라고 봐. 대신 ‘나는 슈바이처 같은 의사가 될 거야’라고 말한다면 그건 너의 꿈이라고 봐.”



 흥미롭더군요. 목표와 꿈, 둘의 차이는 과연 뭘까요. 사람들은 다들 ‘목표’를 좇습니다. 특목고를 좇고, 일류대학의 인기학과를 좇고, 높은 연봉의 근사한 직장을 좇습니다. 그걸 위해 앞만 보고 달립니다. 부모도 그걸 원하고, 선생님도 그걸 원하고, 자신도 그걸 원합니다. 목표만 달성하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저절로 풀릴 것만 같습니다.



 막상 그걸 성취한 사람들은 달리 말합니다. “허전하다”고 말합니다. 대기업의 CEO가 된 사람들도 그렇게 말하더군요. 삶이 허전하다고, 이유를 모르겠다고. 대체 왜 그럴까요. 무엇이 빠졌기에 그런 걸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왜?”라고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 때도,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자신을 향해 “왜 나는 공부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음을 던지지 않으면 꿈이 싹트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물음이 바로 ‘꿈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왜?”라고 묻지 않는 사람에게는 ‘목표’만 있을 뿐입니다. 목표를 달성한 뒤에는 허전함만 밀려옵니다. 그래서 또 다른 목표를 만들고, 또 만듭니다.



 그럼 슈바이처는 어땠을까요. 그는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도, “슈바이처 같은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대신 무엇을 했을까요. 먼저 자신을 향해 물음을 던졌을 겁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왜 의사가 되고 싶은가?” “의사가 된다면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 “왜 그런 의사가 되고 싶은가?” “그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걸 진지하게 묻고, 묻고, 또 물었을 겁니다. 그렇게 씨앗을 심으니 싹이 트는 겁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에게 저는 계속 묻습니다. “너는 왜 공부를 해?” 아이는 처음에 답을 못했습니다. 좀 더 지나자 나름의 답을 합니다. “모르겠어. 나는 커서 뭘 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어.” 저는 또 묻습니다. “그래? 그래도 괜찮아. 그건 나중에 싹이 틀 수도 있고, 바뀔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 너는 왜 공부를 해? 공부가 왜 네게 필요하지? 네가 왜 학교에 가고, 왜 학원에 가는 거지? 힘들고 피곤할 텐데.” 저는 그저 물음만 던집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생각에 잠깁니다. 골똘하게 이유를 찾습니다. 자기 안으로 내려가 묻습니다. “정말, 나는 왜 공부를 하지?” 저는 그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길어 올리는 과정. 거기서 생각의 근육이 생기니까요. 답은 하루 이틀 사이에 툭 튀어나오진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대답합니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저는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그건 아이가 직접 찾은 ‘내가 공부하는 이유’였습니다. 그날부터 아이가 조금씩 달라지더군요. 혼자서 계획을 세우고 자기가 알아서 책상에 앉습니다. 저게 남들이 말하는 자기 주도 학습인가 싶더군요.



 “왜?”라는 물음은 자기 마음에 심는 씨앗입니다. 그 씨앗에서 싹이 틉니다. 그 싹이 자라서 꿈이 됩니다. 그래서 꿈에는 뿌리가 있습니다. 목표에는 뿌리가 없습니다. 목표 달성 후에 허전함이 밀려오는 까닭입니다. 그러니 “왜?”라고 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주도 학습도, 자기 주도적 삶도 가능하니까요.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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