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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토크] ‘명량’ 김한민 감독의 디렉터스 컷

온라인 중앙일보 2014.09.06 00:08














여성중앙영화 한 편이 대한민국을 들끓게 한 속도는 놀라웠다. 개봉 보름 만에 1200만 명이 이 작품을 관람하더니 개봉 18일 만에 역대 흥행 1위를 기록. 급기야 한국 영화 시장에서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1,500만 관객 동원에 도전하고 있다.



영화 ‘명량’의 흥행 열풍이 뜨겁다. 충무공 이순신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히는 명량해전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으로 개봉 후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 68만 명, 주말 최다 관객 동원 125만 명, 평일 최다 관객 동원 98만 명을 비롯해 백만 단위 관객을 돌파할 때마다 역대 최단 기간 기록을 세우며 신기록 제조기로 자리매김했다.



1000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문화 현상을 동반한다. 영화가 재미있고 없고의 논란을 넘어 작품의 질과 흥행에 대한 평가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분석되기 마련이다. ‘명량’ 그리고 이순신 열풍의 밑바탕엔 현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불신 그리고 완벽한 리더에 대한 대중의 갈망이 투영된 것이란 평론가들의 견해가 쏟아져 나왔다.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정치적으로 이순신 리더십이 다시금 조명받고 있고, 관련 문화재와 서적에 대한 인기도 뜨겁다.



이 같은 이순신 열풍의 중심엔 김한민 감독이 있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 동상으로 서 있던 인물을 스크린으로 불러냈으며, 불가능할 것 같았던 61분간의 해전 장면을 스펙터클과 감동까지 곁들여 완성했다. 그는 왜, 그리고 어떻게 이순신 장군을 오늘날 살아 있는 영웅으로 만들어냈을까. 김한민 감독을 만나 ‘명량’ 그 1년간의 치열한 제작 기록을 들어봤다.



기획·투자·촬영… 전쟁 같은 나날들



김한민 감독에게 던진 첫 질문은 “왜 지금 이 시대에 다시금 이순신이냐”였다. 그 물음표가 해소되어야 이야기가 진행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입에서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과 ‘통합의 아이콘’이란 표현이 나왔다.



“두 번째 영화 ‘핸드폰’ 이후 우리 역사의 수난사와 그 과정에서 발현된 선조들의 빛나는 정신을 좀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시대를 초월하는 정신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역사 3부작이라는 큰 틀 아래 병자호란,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를 생각했고, 가장 먼저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는데 잘 안 됐어요. 한마디로 투자가 이뤄지질 않았죠. 그러고 나서 ‘최종병기 활’을 먼저 만들었어요. 그 영화를 준비하면서 만약 흥행이 잘된다면 이순신 장군을 다룬 작품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했고요.”



그의 바람대로 ‘최종병기 활’이 흥행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최악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지략과 정신력으로 승부한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대첩은 명량해전이라고 판단했다. 명량해전을 다루기로 결정한 그는 수능 공부하듯 우리 역사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역사로 남아 있는 모든 기록을 습득했고, 야사에 설화까지 파헤쳤다. 인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데 있어서는『난중일기』를 교과서로 삼았다. 이순신 장군이 전쟁터에서도 거르지 않고 써내려간 일기에는 충신의 고뇌와 수장의 책임감, 아들로서의 죄스러움 등의 감정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이순신을 다룬 영화는 과거에도 많이 있었다. 현시대의 관객에게 어필하기 위해선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그는 드라마의 핵심을 해전으로 정했다. 볼거리만을 위한 해전이 아니라 인물의 정신이 잘 녹아들어 그 자체로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이루는 영화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혹자들은 그런 그에게 어떤 새로운 것을 보여줄 것이냐, 새로운 리더십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그 밖에도 기획·투자 단계에서 끊임없이 위험 요소들이 지적됐다. 영화 상영 시간 절반이 전투 신이라는 것, 코믹 요소가 전혀 없다는 것, 주인공의 러브스토리가 없다는 것, 고리타분하고 지나치게 교훈적이라는 것, 그리고 최민식이 이순신을 연기한다는 것까지….



이러한 과정에서 명량해전을 재현해내기 위해 필요한 150억원이라는 제작비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영화의 전반을 전투 신으로 채우는 것은 그야말로 전에 없던 시도였고,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전작 ‘최종병기 활’의 700만 흥행이 그의 상업적 능력을 입증할 만한 척도가 됐고, 덕분에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가 그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영화가 완성되는 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이어졌다. 촬영에만 8개월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고 후반 작업을 마치기까지는 1년이 더 걸렸다. 61분간의 해전을 만드는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먼저 전남 광양에 해전 세트와 육지에서 배를 장착하고 촬영할 수 있는 짐벌(Gimbal)을 활용한 대형 세트를 만들었다. 더욱 생생한 해전을 위해 실제 바다에서 운행이 가능한 배 네 척도 제조했다. 또 다채로운 무기 체계를 갖추고 있던 조선의 전투를 표현하기 위해 모든 무기는 고증을 거쳐 만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 중 하나는 회오리가 몰아치는 바다의 질감을 살려내는 것이었다.



“다행히 당시 전장이었던 울돌목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어서 수없이 답사를 했죠. CG(컴퓨터 그래픽)라는 게 최대한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이 관건인데, 그게 다짜고짜 이뤄지는 마법이 아니거든요. 소스가 있고 그 위에 기술을 입히고, 거기다 배우의 연기를 더했을 때 완벽해지죠. 한 컷, 한 컷을 위해 그 과정을 얼마나 여러 번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처음부터 60분여의 전투 신을 계획한 건 아니었다고 했다.



“길어도 40~50분 내외가 될 것으로 예상했어요. 그런데 최종 편집 결과 61분이 나왔어요. 제가 생각하는 캐릭터를 녹여내는 데 그만큼의 분량이 필요했던 거죠. 주변에서는 해전 장면이 왜 그렇게 길어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하기도 하더라고요. 해전을 단순히 싸움으로만 생각하고, 그 안에 캐릭터가 담겨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의 의도는 해전 장면을 통해 한 인물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이었죠.”



명작과 졸작이라는 극단의 평가



‘천만 영화’엔 피해 갈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바로 ‘독과점 논란’이다. ‘명량’은 개봉 첫 주말 전국 극장의 40%에 육박하는 1500여 개의 스크린을 차지했다. 여지없이 독과점 논란이 제기됐지만, 이례적으로 논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객석 점유율이 예매율을 훨씬 웃돈 덕분인데, 보통 객석 점유율은 영화에 대한 관객 선호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독과점 논란을 잠재우고 나니 그다음엔 졸작 논란이 일었다. 영화가 기록적인 흥행을 이어가자 작품성을 두고 이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트위터에서는 문화 평론가 진중권과 영화 평론가 허지웅이 설전을 벌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논란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전쟁 장면에 집중하면서 드라마를 잃었다는 것과 이순신을 부각하면서 류승룡, 조진웅, 김명곤 등 많은 캐릭터가 희생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김한민 감독의 생각은 이랬다.



“기본적으로 ‘명량’은 이순신(최민식 분)과 구루지마(류승룡 분)의 투톱 영화가 아닙니다. 그랬다가는 자칫 도식적인 상업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이에 대해서는 구루지마 역의 류승룡씨도 동의했습니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공감한다면 뒤이어 등장할 해전 장면도 공감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반 60분간은 이순신의 고뇌에 집중한 것이고요.”



또한 왜군 캐릭터의 비중을 줄이고 백성의 힘을 보이지 않는 힘으강조한 것도 그의 이유 있는 선택이었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진구가 연기한 임준영과 이정현이 분한 정씨 부인이었다.



“대장선 바깥 인물들, 즉 백성의 대표 격인 임준영과 정씨 부인의 헌신은 빡빡한 해전에 기름칠을 해줄 수 있는 요소예요. 더불어 백성들의 구체적인 노력을 그리고 싶었죠. 바다에 함께 나가 싸우지는 못하지만 몸과 마음을 다해 응원하는 모습을 보일 때 관객에게 또 다른 감동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김한민 감독은 우리나라 역사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신이 세운 영화사 빅스톤픽처스의 상징도 광개토대왕릉비다.



“우리나라 역사는 단순한 역사가 아니잖아요. 홍익인간의 신념 아래 탄생한 고조선부터 고려, 조선 그리고 현대에 이르는 유구한 역사 동안 인간의 완성을 지향하는 남다른 정신을 발현했고 이어왔죠. 그 정신의 핵심 중 하나가 이순신 장군의 사생관(死生觀)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이순신을 다룬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을 천운이라고 말했다. 특히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의 무수한 탐구는 본인의 내적 수양과 성숙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빨려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요. 그러면서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정신을 계속해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하게 됐죠.”



병자호란을 다룬 ‘최종병기 활’과 임진왜란을 그린 ‘명량’은 우리 역사를 소재로 완성해나갈 그의 영화 인생에 중요한 지표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의 여정은 앞으로도 이 길을 따라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한민, 대기업 사원에서 ‘천만 감독’ 되기까지



김한민 감독은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온 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10대 시절부터 영화에 관심은 있었지만, 문화적 환경이 여의치 않아 풍족히 경험하진 못했다. 대학 진학 후 영화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김한민 감독은 “대학교 1학년 때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 이를테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천공의 성 라퓨타’ 등에 빠졌었다. 이후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졸업 후에는 삼성영상사업단에 입사했다. 대리급으로 일하다 퇴사한 2007년에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을 통해 충무로에 데뷔했다. 이 작품으로 청룡영화상 신인 감독상을 받으며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히트작은 2011년 만든 ‘최종병기 활’로 전국 700만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 성적을 거뒀다.



‘명량’은 그가 차린 영화사 빅스톤픽처스의 창립작이다. 이 영화 한 편으로 최소 100억원대의 돈방석에 앉게 됐다. 김한민 감독은 애초 계획한 대로 이순신 3부작을 완성할 계획이다. ‘명량’에 이은 차기작은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을 다룬 ‘한산 : 용의 출현’이 될 거라고 하는데, ‘명량’으로 사극 전쟁물의 신기원을 연 그가 스케일과 깊이, 감동을 보강한 또 한 편의 근사한 역사물을 만들어내길 기대해본다.





기획=조영재 기자, 취재=김지혜(프리랜서), 사진=퍼스트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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