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점 인터뷰] 영화 <명량> 연출 김한 민 감독

온라인 중앙일보 2014.09.06 00:05

이순신 장군의 초월적 생사관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싸움이 명량해전…통합과 화 합의 아이콘으로 부활하는 이순신의 모습 보고싶어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 해전, 죽음 대면한 장수의 운명 그리고 싶었다”



월간중앙 영화 <명량>이 개봉 12일 만에 1천만 관객 흥행을 돌파했다. 최단 기간 천만 관객을 동원을 한 명량, 그리고 그 명량 속의 이순신을 현실로 불러낸 김한민 감독을 찌는 듯한 무더위가 몰려오는 한 여름 오후, 삼청동의 어느 카페에서 만났다. 언론의 인터뷰 요청과 지인, 관객의 축하인사가 쇄도하고 있는 가운데에도 김 감독은 그저 작금의 상황이 담담하다고 털어놓는다. 유난히 커다란 눈을 가진, 그리고 무게중심이 잘 잡혀 보이는 사내. 김한민 감독을 만나 영화 <명량>과 이순신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천만 관객. 조금이라도 예상을 하셨나요?



“명량은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봤어요. 절대 실패할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있었죠. 좀 본능적인 것이었는데, 일단 전작 <활>에서 경험을 했고…. 내가 추구하는 장르적인 재미와 역사적인 의미가 같이 결합하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해상전이라는 재미와 스케일이 있고, 거기에 이순신이라는 실존인물이 가진 역사성, 이 두 가지가 잘만 결합하면 핵융합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23전 23승의 영웅, 이순신 장군. 혹시 <난중일기> 말고 참조한 텍스트가 있었나요? 예를 들면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읽으셨나요?



“예. 읽은 적은 있어요.”



참고가 좀 되었나요?



“반대 의미에서 참고가 됐습니다.(웃음) 전 <칼의 노래>가 굉장히 수사적인 문체를 가진 작품이라고 봤어요. 장군을 너무 고뇌하는 인물로 그렸고, 김훈이라는 인간이 느껴지는 이순신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담백한 분이셨죠. <난중일기>를 보면 강렬한 문체 속에서 이순신 장군이 가진 것들이 엿보이거든요. 무인 특유의 심플하면서 간결한 결정들이죠. 누구누구를 곤장을 쳐서 보냈다, 누구를 참했다 등등. 어떤 현상에 대해서 어떤 편견도 갖지 않는 분 같아요. 무인들의 특징이 그런 것이거든요.”



김 감독의 이순신은 <칼의 노래> 속 이순신, <불멸의 이순신>이나 김명민 배우가 분했던 이순신 등 그 모든 이순신과 어떻게 차별화되는 건가요?



“<난중일기>를 참조했다고는 하지만 김한민이라는 한 인간을 통해서 무언가 필터링된 건 사실일 테니까…. 아까 말했던 담백한 무인으로써의 지점이죠. 그리고 이순신이라는 인물은바른 안목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원칙과 신뢰를 지키는 사람. 바른 안목은 결국 그분의 생사관에서 나오는 게 컸던 것 같아요. ‘대의를 위해서 무인으로서 지켜야 할,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고 그러다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거다’라고 생각하니 담백한 거죠. 그것 말고는 더 이상 이야기할 것도 없죠.”



원칙과 신뢰 지킨 담백한 인간 선조는 뭐라고 할까 전쟁을 모르고, 현장을 모르고, 바다를 모르는 리더라고 할까. 이순신의 입장에서 선조는 리더의 리더일 텐데요. 이순신과 선조와의 관계는 어떻게 보셨나요?



“이순신 장군은 고달프고 아기 같은 왕을 만난 거죠. 조변석개하는 감정 상태와 그러면서 현장을 모르는….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 세계 전쟁사를 보면 그런 경우가 여럿 있어요. 가령 스탈린과 주코프라는 소련의 장군도 그랬고요. 무인과 정치의 수장과는 뭔가 역학관계가 있어요. 결국은 무인의 힘이 자신을 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항상 있죠. 그런 지점에서 이순신 장군은 변덕이 심하고 현장을 모르는 왕을 모셨지만, 그래도 자기가 모셔야 하는 하나의 주군, 임금으로서의 신하관은 뚜렷했던 것 같아요.”



이순신이라는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시는 게 느껴져요.



“좋아한다기보다 존경하는 거죠.”



이순신의 가장 유명한 해전은 한산도·명량·노량해전입니다. 한산은 순서상 앞서고, 노량해전 역시 이야기 거리가 많고 비장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량을 가장 먼저 영화화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있나요?



“이순신의 정신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게 명량이죠. 그래서 이순신 영화를 만들면 스타트는 명량으로 해야겠다,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혹자는 우스갯소리로 배를 좀 적게 만들 수 있어서 그랬느냐고 물었죠.(웃음) 너무나 통렬한 역전극이 있었고 너무 극적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명량을 할 수밖에 없죠.”



약간 운명적인 느낌마저 드네요.



“이순신을 조금이라도 보여주려면 명량을 하는 게 낫다고 본 거죠. 일단 핵심적인 요체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고…. 물론 한산도와 노량 해전의 특징도 아주 뚜렷하지만, 그래도 명량이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보여주는데 가장 좋다고 생각했어요.”



김 감독의 별명이 ‘본질’이라는 것을 최민식 씨 인터뷰를 통해서 알게 됐어요. 명량 연출하시면서 계속 ‘본질이 뭡니까’라고 물으셨다는 건데요. 영화 명량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제목 자체가 본질이죠. 명량이라는 지형과 거기서 싸운 해전 자체가 본질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순신이 고문을 당하는 것으로 첫 장면이 시작되죠. 선조, 조정대신들은 한 컷도 등장하지 않고 곧바로 시작하잖아요.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명량은 이야기를 시작할 때 삼도수군통제사의 파직보다 고문을 당하는 이순신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이순신의 백의종군을 설명하기에도 좋지요. 이순신이 피폐해져 있고 그런 상황에서 수군을 재건하고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전쟁을 수행한다…. 이런 것들을 관객에게 느낌 있게 보여줄 수 있는 장치가 고문당하는 이순신장군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리고 선조나 다른 대신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의도가 있었다기보다, 선조와 대신들이 나오면 이야기가 잡스러워질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죠. 그건 자막으로 짧게 설명을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을 어떠한 영화적 키워드로 그리고 싶으셨나요? 저는 잔 다르크처럼 초월성이 있는 영웅이라고 보는데요.



“초월이라…. 초연성하고도 맥락이 닿아 있네요. 이 영화의 화두가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것’이거든요. 그것이 명량이라는 해전의 핵심적인 요체라고 봤어요. 거기에 맞춰서 해전도 구상을 했던 것이고. 그렇다면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데 이순신은 절대적 역할을 해야 하고…. 그리고 이순신이 그 절대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이순신에게 무언가가 있어야 하고, 그 무엇인가는 이순신의 정신적 요체일 것입니다. 그 요체는 아까 말씀드렸던 이순신의 생사관이고요. 장수된 자가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거지 그 이상 뭐가 있겠느냐 하는 것…. 그 부분이 어떻게 보면 초월성이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맥락이 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순신의 초연함이 가장 극적으로 보이는 것이 명량이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왜냐하면 명량에서는 제가 봤을 땐 그냥 목숨을 던진 거예요. 죽자, 다만 장수된 자로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싸우다가 죽으면 되는 것 아니냐, 그런데 거기에 많은 사람이 순응하지 못했죠. 삼도수군통제사로서 갖는 군율과 권위를 가지고 그들을 끌고 나가긴 했지만, 결국 그렇게 끌고 나가니 나머지 사람은 저 뒤에 가 있고 혼자 대장선을 이끌고 고군분투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지요. 장군이 선봉에서 본인이 솔선수범해서 죽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른 장수들이 거기에 분명히 감화되는 지점이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까요. 그 대강의 골격만 있는 명량해전 기록에서 뭔가 엮어지는 비전을 봤어요. 어쩌면 이 영화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비전을 보았죠. 단순히 ‘비워져 있는 걸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운다’ 이런 게 아니라 이순신의 생사관을 통한 자기희생, 이런 정신의 요체를 쭉 훑어가다 보니 이 해전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딱 보이더라고요.”



이순신에 가해졌던 내외의 압력 그려



제 개인적으로는 영화 전반부의 이순신은 약간 햄릿같이 보이는 부분이 있었어요. 영화에서 보면 꿈속에 나타난 유령들에게 ‘술도 한잔 안 받고 가냐’고 붙잡으면서 봉두난발 한 노인으로 나왔잖아요. 약간 지루하기도 하고. 그런데 후반부에서는, 그 유명한 장계인 상유십이척,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장계를 낸 이순신은 대단한 자신감과 자기 극복의 정신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영화에서 앞과 뒤의 이순신 장군이 조금 다른 사람처럼 느껴져요.



“시나리오 단계부터 이순신을 무인으로서의 전략과 지략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어요. 그런데 저는 왠지 그게 굉장한 패착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히려 조금 불친절한 느낌이 있을 수 있지만 먼저 이순신에게 가해졌던 외적, 내적 압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외적 압력이라고 한다면 엄청난 수의 왜구가 오고 있다는 것이고, 내적 압력은 수하 장수들이 분열하고 뭔가 전쟁 수행에 대해서 동조하지 않는 분위기죠. 심지어는 배반과 시해까지 하려는 지점까지 다다른 상황 속에서 이순신이 받는 압력만이라도 제대로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장군이 나중에 해전에서 보여주는 지점에서 무인으로서의 분연의, 불굴의 의지를 그냥 그때 가서 보여주자, 그것만 달성해도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나리오 단계에서 투자사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거예요. 해전은 해전일 뿐이고 드라마는 드라마라는 생각, 즉 전반부 60분의 드라마 속에서 뭔가 완성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해전에 나가야 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을 했죠.”



그러니까 해전을 끝까지 보면, 오히려 이순신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거라고 확신했군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의 정신적인 것을, 정신의 요체를 마지막 해전을 통해서 알 수 있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대목에서 제가 세련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해요. 인간적으로 고뇌하는 이순신과 무장으로서 당당한 이순신에 이질감이 있다고 한다면…. 그 연결 부분을 사실 못 찾았어요. 그러니까 너무 큰 고뇌와 부담감이 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순신이 버티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고 그리고 모든 것을 버틴 이순신이 출정을 한다, 그리고 지옥과 같은 해전에서 승리를 이뤄낸다는 이야기 구조…, 거기까지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였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개별적인 캐릭터가 너무 희생되고, 앞부분이 지루하고, 이런 평가 자체에 대해 죄송하게 되는 거죠.”



해전 장면은 61분이나 계속됩니다. 긴 시간을 할애하신 것이고, 해상 촬영도 도전적이었습니다. 해전에 관한 고증도 장난 아니고요. 해전이 세부적으로 어떻게 보여지기를 원했나요?



“마지막 장면에서 이름 없는 격군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나중에 우리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것을 알까?’, ‘모르면 호로자식들이지!’라고 대화하는 장면. 그게 이 영화를 만든 의미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 대사가 나왔을때, 관객들이 ‘아 그래, 우리 선조들이 정말 고생을 했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하고요. 그렇게 하려면 관객들이 ‘음력 1597년 9월 16일 저 해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야 한다’가 첫째가정이었어요. 그렇게 하려면 당시 해전의 리얼리티를 구축하기 위한 모든 것들, 민초의 모습, 장수, 장졸의 모습, 배, 그리고 당시 조류의 상황뿐 아니라 리얼리티를 채우기 위해서 마땅히 그럴 것 같은 개연성의 확보가 중요해 지는 것이죠. 그런데 다행히 울돌목은 417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울돌목이란 말이죠. 지형이 크게 변했을 것 같지는 않고. 조류도 크게 변했을 것 같지 않고. 다행히 우리는 그걸 확보할 수 있는거죠. 컴퓨터 그래픽의 소스로 제대로 활용하면 우리가 뭔가를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다행히 판옥선에 대한 기록, 일본 배에 대한 기록, 왜구의 주력 전함이었던 세키부네와 대장선 노릇을 했던 안택선 같은 기본적인 기록은 다 있단 말이죠. 그리고 왜군의 싸움 형태, 그 다음에 조선 수군의 싸움 형태와 패턴, 이런 것도 다 기록에 있어요. 대체로 조선 수군은 다른 배와 조금 거리를 두고 화포전을 벌이는 기본적인 싸움 패턴을 가졌고, 왜군은 조총을 가지고 배에 올라타서 육박전을 벌이는 싸움 패턴을 가졌고요. 그런 것을 최대한 현실감 있게 그리면서 이순신 장군의 정신적 요체를 녹여내면 어떨까…, 그렇게 했더니 엄청난 숙제와 데이터가 와요. 특수효과에 대한 압박도 많고요. 그러다보니 후반작업에 1년이라는 시간이 후딱 가버렸고요.”



제목 자체가 명량이잖아요. 굉장히 중요한 상징인데요. 왜 하필 지명을 영화 제목으로 잡았고,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재현하는 데 그 지형은 어떻게 구체화되기를 원했나요?



“명량은 그 지명 자체가 굉장히 절묘해요. 우는 바다잖아요. 울 명(鳴)자를 썼으니까. 그렇다면 우는 것은 무엇이냐. 직감적으로 칠천량에서 죽은 사람들의 원한소리, 곡소리 이런 것과 딱 매치가 되더라고요. 그 소리가 끊임없이 이순신을 괴롭히기도 하고, 나중에는 영감을 주기도 하고요. 그리고 마지막에 충파(배로 배를 파괴하는 것) 때는 우는 소리가 절정에 이르면서 그 바뀐 물살을 이용해서 적선을 때려 박는, 누가 죽을지 모르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거죠. 어떻게 보면 첫 번째 위기탈출을 통해서, 화포를 격군실 좌현 쪽으로 집중시켜서 탈출하는 것은 이순신의 자기희생의 모습이 강했다면 마지막에는 어느덧 이순신의 정신에 감화된 장수와 병사가 같이 한 번 희생해보자라는 정신으로 간다는…. 그 사이사이를 우는바다 소리가 계속해서 이순신을 자극하고 관객을 알게 모르게 자극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굉장히 밀도감이 있게, 결말부까지 어떤 정서를 채워가면서 상승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운드도 굉장히 중요했죠. 질감적인 사운드가 중요했고, 또 은유적인 사운드도 중요했고요.”



“인도영화 <신상>이 어린 시절 보았던 첫 영화”



예를 들면요?



“장군이 한 병사의 목을 베고 피섬으로 가서 회오리를 보며 듣는 소리, 묘한 남자들의 울음소리 같은, 곡소리 같은 느낌의 소리, 그리고 구선(거북선)이 불타버리고 절망 속에서 홀로 절벽에 올라갔을 때 거기서 바라보는 회오리바다의 소리…. 그리고 마지막 충파전에 극에 달하는 바다 소리, 마치 그 곡소리에 반응하는 듯하고 그 원한을 갚아주는 듯한 충파의 돌격…. 이런 소리는 사운드 좋은 극장에서 들어야 제대로 음미할 수가 있는데, 울릉도 가서 배가 삐그덕, 찌그덕 거리는 소리를 따왔거든요.”



자 이제 김 감독 개인의 이야기를 해보죠. 1969년에 순천에서 태어났고, 연세대 상경대 졸업 후 영화 배급사에 2년 있다가 동국대 영화과 대학원에 들어갔죠. 대학 땐 영화 동아리 회장직도 했을만큼 영화를 좋아하셨다고요? 김 감독님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였나요?



“인생의, 삶의, 성장의, 어떤 업이라고 할까요? 다른 걸 선택할 여지가 없었던 것 같아요. 지방 소도시 출신의 학생이 서울에 올라와서 특별하게 예체능 교육도 받지 않고, 영화를 해보지 않은 젊은 친구가 영화를 접했을 때 갖는 감흥이란…. 내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도 하고. 이것을 통해서 내 정신세계나 인생에 있어서 성장의 축이 될 수 있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을 했죠. 딱히 할 것도 없었고….”(웃음)



부모님은 어떤 분이었나요?



“어머니는 가정주부였고,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하다 퇴임하셨죠. 지금도 어머니는 항상 그래요 ‘나는 너를 보면 놀랍다’고. 형은 법대 출신에 변호사하고 있고요. 6남매 중 막내예요. 형하고 나이 차이가 네 살 차이가 나는데, 형까지 서울로 다 가버리고…. 정말 외롭더라고요. 그런 시골에서 그렇게 자랐죠.”



대학 때까지는 영화를 많이 보진 않았다고요?



“그냥 <주말의 명화>나 <명화극장> 있잖아요. 그거 보면 놀라운 영화들도 몇 개 보이고요, 그런 영화에 대한 인상적인 기억을 갖고 있어요. 혼자 극장 가서 꽤 놀라운 작품을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제임스 카메론의 <에일리언2>라든지, <인디아나 존스> 같은 경우에는 초등학교 때 봤고 <신상>이 가장 처음 본 영화였죠.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 한 일곱살쯤에 봤던 거 같아요. 너무 놀라웠죠. 그때는 영화 제목도 몰랐어요. 어쨌든 인도 영화였고, 코끼리 영화였다는 거, 그 울부짖음과 코끼리 떼…. 영화관에 들어갔다가 바로 튀어나왔죠. 막내 누나랑 같이 봤는데, 누나가 내 손을 잡더니 울고있는 나를 조금 진정시키고 다시 극장에 들어가서 봤죠. 굉장히 슬픈 영화더라고요. 놀라운 기억이었죠.”



‘내 인생의 영화’는 무엇인가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를 정말 좋아했어요. 처음 <신상>을 봤을 때만큼 놀랐던 영화가 <천공의 성 라퓨타>였어요. 남산 근처 어디선가 봤는데,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중에 찾아보니까 내가 중학교 때 정말 좋아했던 <미래소년 코난>을 감독했던 양반이더라고요. 그리고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요짐보>나 <7인의 사무라이> 같은 영화도 좋아했어요.”



“최민식에게 운명적으로 이순신을 느꼈죠”



모두 자국의 색깔이 있는 일본영화, 그렇지만 서구적 화법을 구사하는 영화들이네요.



“그리고 에너지가 세죠. 고베 영화제에서 <활>을 보고 몇몇 사람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 냄새가 강하게 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누가 또 <명량> 보고 그런 말을 하더군요.”



자 다시 <명량>으로 돌아가서요, 해상 촬영은 어떻게 한 건가요?



“세 가지 방법으로 해전을 촬영했어요. 먼저 A타입 촬영. 짐벌 위에 배의 상갑판만 세우고…. 컨테이너로 구성된 그린 매트를 뒤에 치고 육지에서 촬영을 했고, B타입은 실제 배를 만들어 옆의 바지선에서 해상을 직접 촬영했고, 세 번째 C타입은 울돌목에서 소스를 따온 촬영이에요. 더미(dummy) 배라고 일반 기관 달린 배들이 왔다갔다하면서 물거품을 만들고 나중에 그 더미 배를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해 판옥선이나 일본배로 바꿔주는 거죠. 물에 사람이 떨어지거나, 지면과 바다면의 촬영이 연결될 땐 B타입을 사용했습니다. 바다 면은 보이지 않고 배경만 보이는 장면은 A타입으로 찍었죠. 드라마가 위주가 되는 장면들은 다 A타입 촬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육지에서 찍는 게 앵글도 잘 나오고, 배우나 스태프가 훨씬 집중하기도 쉬워요. 바다가 끼면 여러 가지가 복잡하고 번거로워지죠. 그래서 세 가지 타입으로 분류해서 작업을 했죠.”



영화에서 류승룡 씨가 분한 구루지마 미치후사는 임진왜란 때는 육군으로, 정유재란 때는 수군으로 온 사람이잖아요? 형 구루지마 미치유키도 이순신에게 죽임을 당했고요. 어찌 보면 형의 복수같은 심리적인 요소가 있는 캐릭터인데 너무 이순신만 반복적으로 외쳐요. 복장은 딱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 같고요. 다른 배우들의 분량이 작아진 것은 편집 때 덜어낸 건가요, 아니면 처음부터 역할 자체가 작았던 건가요?



“미묘하게 합쳐져 있어요. 편집이 많이 되진 않았어요. 시나리오 자체가 갖는 이순신에 대한 집중력은 분명히 있었고요.이 영화는 편집상의 운율이 있거든요. 해전뿐만 아니라 앞부분 드라마도 교차편집이 많았습니다. 어떤 운율을 타고 그 운율이 주변 인물의 드라마와 부딪힐 때, 주변 인물이 거세되거나 없어진 거죠. 영화를 편집할수록 이순신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명량과 연관된 여러 평을 보면서 관객은 다른인물도 보고 싶어하는 욕구가 상당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최민식은 “이순신 역할만큼은 개운치 않다. 나는 이순신 흉내만냈다”고 자평하고, 감독은 운명적으로 최민식 씨만 생각했다고 말했어요. 어떤 쪽이 맞는 건가요?



“그게 절대 물과 기름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최민식 씨가 빛나는 아우라가 있는 배우이기 때문에 이순신으로 결정했고, 이순신 역할에 운명적이라고 봤던 거예요. 최민식이란 배우는 지금까지 굉장히 뒤틀려 있는 정서를 갖고 있거나 주변부의 악당 캐릭터를 많이 연기해왔어요. 저는 오히려 최민식 씨가 정극에 맞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엄청난 에너지가 있는 배우니까요. 반면 배우는 배우가 갖는 연기적 갈증이 있는 것 같아요. 이 대단한 인물을 표현하는 데에 본인이 갖는 겸손함과 그 인물을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서 표현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죠. 그런 멋진 배우이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운명적으로 이순신을 느낀 것 같아요.”



작년에 영화 <변호인>과 노무현 신드롬이 있었잖아요? 이제는 <명량>의 흥행으로 이순신 신드롬이 불고 있는 것 같아요. 대중은 무엇을 원했고, 작금의 이순신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라고 생각하세요?



“광화문에 이순신 동상이 있잖아요. 딱 화석화된 이순신이지요. 하지만 광화문 한복판에 이순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들 마음의 중심에 이순신이 있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그게 어떤 의미냐 하면, 지금 시대가 굉장히 힘들고 분열되고 갈등이 심한 사회잖아요. 이런 사회에서 우리에게 어떤 구심점을 주고 통합과 화합의 아이콘으로서 장군님이 있다는 거죠. 장군님은 416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지금 다시 부활해야할 타이밍인 것 같아요. 통합과 화합의 아이콘으로서 장군님이 활동을 해주셔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요.”



“화석화된 이순신을 광장으로 불러내고 싶었다”



전라좌수영이 있는 순천에서 태어나 작금에 이순신 장군님을 불러냈는데, 이순신의 거울에 비춰 본 김한민이란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순신의 정신에 뭔가 반향을 일으킨 이순신 후손 중의 일부?(웃음) 장군이 위대한 업적을 남겼고 숭고한 정신을 갖고있던 분인데 그런 정신에 조금 반응하는 후손의 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면 좋겠네요.”



김한민 감독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삼청동 카페에서 광화문 네거리까지 천천히 걸었다. 광화문 한복판에는 앉아 있는 세종대왕과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나란히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주변으로 구호를 외치고 시위를 벌이기도 하는 대한민국의 백성들과 그들이 탄 차가 쉴 새 없이 오갔다. 마음이 아팠다. 사실 이순신은 술을 잘 마셨다. 첩도 있었다. 그러나 <난중일기> 속 시를 짓는 이순신, 노래를 듣는 이순신, 기생과 노는 이순신 대신 고뇌하는 이순신만이 가득한 이 땅. 울돌목의 곡소리가 1천만 관객을 불러들인 지금. 모든 것이 배수의 진을 치고, 몰려오는 외부의 세력과 일전을 불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명량의 바다가 다시 광화문광장에 넘실거렸다. 침몰하는 진도 울돌목의 배속엔 세월호도 있는 것일까. 아, 이순신. 백성들의 이순신, 아니 이순신의 백성들이 명량을 본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눈에도 부디 보이기를….





글=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심리학과 교수·영화 평론가

사진=지미연 월간중앙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