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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루거우차오(盧溝橋)의 추석달

중앙일보 2014.09.04 09:43
추석날 밤에 가족과 함께 보는 보름달은 매우 크다. 전문가들은 추석이 되면 여름보다 기온이 떨어져 공기 중의 수증기가 줄어들어 시야가 좋아지고, 달의 떠오른 위치가 여름보다 조금 높아 우리가 보기 좋은 눈높이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금년의 진짜 보름달은 추석날인 9월8일 밤이 아니고 하루 후인 9월9일 밤의 보름달이라고 한다.



추석의 보름달하면 생각나는 것이 베이징 인근의 루거우차오에 떠오른 보름달이다. 베이징의 대사관에 처음 부임했을 때 알게 된 중국인 친구는 베이징 근무 중에 시간 나는 대로 “연경팔경(燕京八景)”은 꼭 둘러보라고 권하였다.



풍류를 좋아하는 청(淸)의 건륭제(乾隆帝)는 연경팔경을 직접 다녀보고 친필 비석을 세워 두었는데 루거우차오에는 “루거우효월(盧溝曉月)”의 친필이 남아 있다고 하였다. 그 후 2차례의 베이징 근무 시 루거우차오는 가끔 찾았으나 추석 날 밤에 가본 적이 없어 연경팔경의 으뜸이라는 루거우차오의 추석 보름달은 아직 보지 못했다.



루거우차오는 1192년 금대(金代) 만들어진 석조 다리로 다리 난간의 돌사자상이 유명하다. 돌사자의 얼굴 표정이 각각이고 그 숫자를 세다 보면 놓치기 일쑤라 중국의 속담에도 셀 수없는 것을 두고 “루거우차오의 돌사자”라고 할 정도라고 한다. 루거우차오를 다녀 간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그의 여행기(동방견문록)에 찬사를 남겨 서양에서는 "마르코 폴로 브리지"로 불리고 있다.



루거우차오는 1937년 7월7일 중국 침략의 야욕을 가진 일본군이 이곳에서 발포하여 중일(中日)전쟁을 일으킨 “루거우차오 사건” 발생지로 중국으로서는 치욕의 역사현장이다. 이를 잊지 않기 위해 근처에 건설된 “중국인민 항일기념관”은 “이사육인(以史育人)” 즉 “역사를 가르쳐 사람을 만든다”라는 정신이 깃든 항일역사 교육관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라야마(村山富市) 일본수상이 1995년 5월 이곳을 방문하여 크게 느낀 바가 있어 그 해 8월15일 일본의 침략전쟁을 사죄하는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 후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수상 등 중국을 방문하는 일본 수상의 필수 방문코스가 되기도 하였다.



지난 7월7일에는 루거우차오 사건 77주년을 맞아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이곳을 방문 일본의 역사왜곡을 비판하였고 올해 처음으로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항일전쟁 승리기념일”인 9월3일에는 시 주석을 포함한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참석 헌화하였다.



중국의 남쪽에서 수도 베이징으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하는 루거우차오는 본래 루거우허(盧溝河)에 걸린 다리라는 의미이다. 지금은 루거우허가 융딩허(永定河)로 바뀌었다. 여름철 강의 범람으로 강의 흐름이 계속 바뀌어 사람들은 한 때 우딩허(無定河)로 불렀다가 더 이상 범람을 원하지 않는 마음으로 융딩허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54년 강 상류에 거대한 인공 호수인 관팅수이쿠(官廳水庫)가 완성되어 수량 조절이 되면서 명실 공히 융딩허가 되었다.



근처의 완평성(宛平城)은 명(明)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가 이자성(李自成)의 반란군을 막고자 수축한 전략적인 수도방위 성채(城砦)인데 실제 이자성은 이 길을 택하지 않고 거용관(居庸關)을 통해 베이징을 점령하였다. 문자 그대로 필부(庸)가 있기만(居)해도 지킬 수 있다는 천하의 난소(關)도 이자성 군대 앞에서는 무력하였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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