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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131위 경기고, 서울대 진학은 2위인 까닭

중앙일보 2014.09.04 02:19 종합 15면 지면보기
경기고는 2014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서울대 합격자를 21명 배출했다. 전체 일반고 1위인 공주 한일고(23명)와 불과 2명 차이로 2위였다. 그러나 비평준화 지역 학교인 한일고는 신입생 선발권을 갖고 있지만 평준화 학교인 경기고는 추첨을 통해 신입생을 뽑는다. 학생들의 학업성적은 한일고가 경기고보다 월등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한일고의 국어·수학·영어 표준점수 평균 합계는 380.4점으로 일반고 1위였다. 반면 경기고는 325.8점으로 131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고가 높은 입시실적을 낸 비결은 무엇일까.


[꿈꾸는 목요일] '수시의 시대' 달라진 대입 공식
늘어난 수시모집 대학별 전형 달라
특기·면접 등 맞춤 전략 중요해져
'스펙' 잘 키워줘야 입시성적도 ↑

 ‘수능점수=진학성적’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 달라진 입시 흐름 속에 수능점수는 낮아도 높은 입시실적을 보이는 일반고들이 주목받고 있다. 수능 외 다양한 전형요소를 평가하는 수시모집에 적응해 학생별 맞춤교육으로 학력에 비해 높은 진학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중앙일보와 하늘교육은 전국 1612개 일반고의 2014학년도 국어·수학·영어 수능점수와 서울대 진학실적을 분석했다. 수능점수와 진학실적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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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점수 대비 가장 높은 진학실적을 낸 학교는 경기고였다. 비슷한 점수대(324.9~326.4점)에 놓인 10개 학교의 평균(3명)보다 7배 많은 21명의 서울대 합격자를 냈다. 경기고처럼 서울대 합격자 상위 10위 안에 든 학교 중 5곳은 수능 순위가 100위권 밖이었다. 수능점수만 보면 서울고(224위)·상문고(284위)·서초고(271) 등은 320점에도 못 미치는 200위권 밖의 학교들이다. 그러나 이들 학교의 서울대 진학 실적은 서울고·상문고(12명) 6위, 서초고(11명) 10위로 뛰어나다. 웬만한 지방 고교보다 수능점수가 낮은 한영고(309.1점·375위)도 서울대 합격자를 10명이나 배출했다.



 반면 경북의 A고는 수능점수 순위로는 9위(354.8점)지만 서울대 합격자는 단 한 명뿐(359위)이었다. 수능점수 6위인 경남지역 명문 B고도 합격자(5명) 순위는 50위권을 넘었다. 충북의 C고 역시 수능점수(12위)와 합격자 순위(2명·199위)의 괴리가 컸다.



 이런 차이는 개별 학교가 수시전형의 맥을 잘 짚었는지, 변화하는 입시에 발 빠르게 적응했는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됐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수능점수 0.1점 차이로 줄 세워 대학에 보내던 시대는 지났다”며 “개인별 맞춤지도, 다양한 특기적성 활동 등 학교가 얼마나 노력했느냐에 따라 진학실적이 엇갈린다”고 말했다. 학교별 면접·논술·자기소개서 작성 지도는 물론 교내에 다양한 동아리·체험학습·각종 대회를 통해 학생들의 재능을 키워주는 학교가 좋은 입시성적을 낸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3월 서초고는 이대영 교장이 취임하며 입시 정책을 바꿨다. 야간 자율학습, EBS 교재 공부 등 수능 위주 입시 전략을 수시모집 위주로 전환했다. 학생 개개인의 맞춤형 진로진학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대학 입학사정관, 다른 학교 진로교사 등을 불러 학생들이 상담받고 교사들도 관련 노하우를 배우도록 했다. 자기소개서 쓰는 법, 논술·면접 대비법까지 꼼꼼히 컨설팅하고 졸업생들의 자기소개서, 합격수기를 책으로 엮어 학생들이 참고하도록 했다. 이 교장은 “학생 개인의 학업 능력도 중요하지만 학교가 길 안내를 잘하는 게 우선”이라 고 말했다.



 한영고는 매년 에듀 엑스포 를 연다. 1년 동안 동아리·체험활동 등을 전시하는 자리다. 교사가 만든 진로교육 책자부터 학생들의 탐구논문까지 다양한 전시품이 등장한다. 매주 수요일 ‘또래 세미나’ 시간엔 한 학생이 특정 주제에 대해 발표하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다른 학생들이 모여 토의한다. 교육학과에 진학하려는 학생이 교육 연극을 하거나, 수학과 지망생이 실뜨기와 함수의 공통점을 통해 수학적 원리를 탐구한다. 유제숙 진학지도부장은 “모든 활동은 학생부에 꼼꼼히 기록돼 자기소개서에 쓸 소재가 많아진다”며 “수능 점수 몇 점 올리는 것보다 탐구력 향상과 같은 뛰어난 교육적 성과를 얻게 된다”고 말했다.



 상문고는 토요일에도 30여 명의 교사가 학교에 나온다. 실험 위주의 과학 아카데미, 직접 연구 주제를 선정해 논문을 쓰는 인문 아카데미 등 토요 방과후 활동을 지도하기 위해서다. 이자흠 교장은 “서울대는 모집인원의 80%를 수시로 뽑기 때문에 수능이 전부가 아니다”며 “학생들이 교내에서 다양한 스펙을 쌓을 수 있도록 학교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지난 학기부터 ‘학생 과학 탐구논문 대회’를 시작했다. 4명 이하로 팀을 이룬 학생들이 자유롭게 탐구 주제를 정한 후 실험을 거쳐 학기말에 논문을 제출한다. 30여 팀이 출전해 ‘미생물군의 비율 변화에 따른 환경 변화’ 등 다양한 주제가 쏟아졌다.



윤석만·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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