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론] 수능 영어 절대평가의 효과와 한계

중앙일보 2014.09.04 01:15 종합 29면 지면보기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과
수능에서 영어가 어렵게 출제된 해에는 강남권 학생들이 대입에서 선전하는 경향이 있다. 가정의 소득 수준과 문화적 자본은 다른 과목보다 영어 점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층 간, 지역 간 영어 격차(English divide)는 수능 영어 절대평가제가 제안된 배경 중의 하나로, 교육부는 절대평가를 통해 사교육을 제어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사교육 총량 불변의 법칙에 따라 영어 사교육 경감 효과를 주지 못할 뿐 아니라 다른 과목 사교육을 폭증시킬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요즘 대학들의 최우선 관심사는 졸업생 취업이다. 그런데 취업시장에서는 전공을 불문하고 영어 자격 조건을 따지기 때문에 대학은 입학 단계부터 영어 우수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유리하다. 수능 절대평가로 지원자의 대략적인 영어 능력만 알 수 있을 때 대학은 어떤 선택을 할까? 영어 능력을 엄밀하게 변별하기 위해 영어 면접이나 논술과 같은 대체평가를 동원할 개연성이 높다. 여기서 대학별고사 사교육과 수능 사교육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수능은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출제되기 때문에 사교육 프로그램의 질이 투명하게 드러나 있고 교육비도 적정 수준인 편이다. 그렇지만 논술과 면접은 대학별로 다르고 특정 대학 내에서도 해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불안을 마케팅하는 얼치기 강사가 많다. 게다가 팀이 단기간 소규모로 꾸려지다 보니 교육비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도 한다. 즉 대학별고사 사교육 시장은 수능 사교육 시장에 비해 무질서하다.



 영어 이외 과목의 사교육을 유발하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수능에서 영어·수학·국어의 변별력이 각각 직육면체의 가로·세로·높이이고, 수능의 변별력은 그 직육면체의 부피라고 하자. 만약 절대평가를 통해 영어의 변별력이 낮아지면, 즉 가로가 줄어들면 세로나 높이가 늘어나서 부피가 일정해지도록 하는 자체복원력이 작동한다. 사실 수학 전문가의 입장에서도 수학 영향력이 높아지는 것은 달갑지 않다. 수학 교과의 중요도가 높아지면 역설적으로 수학교육은 황폐화되기 때문이다. 수학이 입시에서 중차대한 역할을 하면 할수록 활동과 탐구를 통해 수학적 원리와 법칙을 발견하는 학생들의 의미 있는 경험은 요원해진다.



 등급별 비율이 정해져 있는 상대평가에서 학생들은 옆의 친구와 경쟁해야 한다. 그에 반해 미리 설정된 목표의 달성 여부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는 절대평가에서 학생들은 교육목표와 경쟁하게 된다. 원론적인 입장에서 볼 때 절대평가가 교육의 본질을 살릴 수 있는 방식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현재의 수능은 학생들을 서열화시키는 악역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수능에 절대평가를 접목시키는 것은 심각한 미스매치가 아닐 수 없다. 대입 경쟁은 상존(常存)하기 때문에 절대평가를 실시한다고 해서, 혹은 문항이 쉬워진다고 해서 경쟁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정의로운 수능이라면 중요하고 심도 있는 내용에 대한 이해를 정직하게 물으면서 변별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쉬운 수능은 실수 안 하기의 소모적인 경쟁을 유발한다. 올해 영어 수능은 ‘물수능’이 예고된 바, 이미 6월 모의고사에서 한 문제만 틀려도 2등급으로 내려가는 대란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수능 영어 절대평가 도입과 쉬운 수능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는데, 이제 건설적으로 개선 방향을 모색해 보자. 대입 정책은 수능, 내신과 학교생활기록부, 대학별고사의 세 요소를 어떤 방식으로 조합할지에 대한 묘수풀이다. 현재와 같이 수능이 대입에서 핵심적인 필터 기능을 한다면 적정 수준의 난이도, 그리고 비교육적이기는 하지만 상대평가와 짝을 이루어야 한다. 대입에서 수능의 영향력을 낮춘다면 영어뿐 아니라 모든 과목을 패키지로 절대평가화해야 한다. 그러면서 대입 전형의 무게중심을 수능으로부터 내신과 학생부로 이동시켜야 한다.



 최근 들어 이를 위한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올해부터 고등학교에 성취평가제가 도입되면서 내신 부풀리기 현상이 어느 정도 제어되고 있다. 또한 학생부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면서 학생부를 전형자료로 이용하는 데 대한 대학의 저항이 줄어들고 있다. 수능이 학생의 능력에 대한 한순간의 스냅샷이라면, 내신과 학생부는 고등학교 3년의 교육 이력을 담은 동영상이다. 물론 그 동영상이 어느 학교에서 촬영되었는지 배경을 함께 고려할 필요는 있겠지만, 스냅샷보다 학생의 능력을 더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인 문화현상으로 고착화된 사교육, 이에 대해 수많은 대책이 나왔지만 사교육은 맞대응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팽창해 왔다. 말하자면 사교육은 ‘그림자 교육’이다. 사교육은 공교육과 대입이라는 실체에 종속해 존재하며 그 양태를 모방하기 때문이다. 실체가 있는 한 그림자는 없어지지 않는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교육 경감이 교육정책의 기대효과는 될 수 있지만 근원적인 목표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과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