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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언제까지 비워두라는 겁니까?

중앙일보 2014.09.04 01:12 종합 30면 지면보기
강갑생
JTBC 사회 1부장
평소 친분 있는 공기업 사장 A씨와 오랜 만에 통화를 했다. 안부에서 시작한 대화는 공기업 인사 문제로 이어졌다. 사실 그의 사장 임기는 이미 끝났다. 하지만 후임이 안 정해져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후임 인선의 첫 절차인 공고도 여태 안 났다. 정상적이었다면 임기가 끝나기 2~3개월 전에는 후임 공고가 났어야 했다. 이 때문에 A씨는 덤으로 사장을 더 하고 있다.



 “입장이 좀 난처할 것 같다.”(기자)



 “어디 우리뿐인가. 여기저기 그런 곳이 많다.”(A씨)



 “왜 후임을 안 뽑는지 설명 들었나.”(기자)



 “모른다. 어디서도 그런 설명을 안 해준다.”(A씨)



 “연임도 아니니 새로운 정책 결정이나 이런 건 못하겠다.”(기자)



 “일상 업무는 직원들이 잘 따라줘서 괜찮다. 하지만 중요한 정책을 내가 결정하긴 어렵다.”(A씨)



 “조직 분위기도 좋지 않을 것 같다.”(기자)



 “관피아 논란 이후 내부에선 혹시 정치권이나 엉뚱한 곳에서 사장이 오는 것 아니냔 걱정이 많다. 나도 답답하다.”(A씨)



 그런데 이런 형편인 공기업이 한두 곳이 아니다. 304개 공공기관 가운데 30개 가까이나 된다. 10개 중 한 개 꼴이다. 기관장이 아예 공석인 곳도 있고 후임이 없어 임기 끝난 기관장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다. 공석 기간도 계속 길어져 심지어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사장 자리가 8개월째 비어 있다. 이런 조직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덤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관장 또는 기관장 직무대행이 개혁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까. 아니면 혁신적인 인사를 낼 수 있을까. 일상적인 업무 외엔 그 어떤 것도 정하기 어렵다. 직원들로서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조직의 구심점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아무런 설명도 없다는 거다. 왜 사장 인사가 늦어지는지 도통 언급이 없다. 물론 기약도 없다. 대신 이런 저런 풍문만 떠돈다.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 이후 고위 공직자들의 산하기관장 진출이 어려워지자 정부 부처들이 인사에 손을 놓고 있다는 얘기다. 또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청와대가 공공기관장 인사를 다 막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공기업들에 개혁과 발전을 요구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정작 조직을 이끌어갈 사장도 제때 임명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여기에 대놓고 경고만 한다고 달라질 건 하나도 없다. 청와대와 정부는 이제라도 공공기관장 인사를 서둘러야 한다. 거친 바다를 헤쳐나가야 할 배를 선장도 없이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단, 인사의 원칙과 기준은 엄격하게 세워야 한다. 그래야 정말 엉뚱한 경력의 인사가 사장이 되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기관장이 5개월째 공석인 한 공기업 직원의 당부를 잘 새겼으면 한다. “내부에서 되든 외부에서 오든 빨리 와서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모든 직원의 바람입니다.”



강갑생 JTBC 사회 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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