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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날개 다는 재건축 vs 날개 꺾인 리모델링

중앙일보 2014.09.04 00:50 경제 2면 지면보기
서울 강남의 아파트 리모델링 조합장인 A씨는 3일까지 사흘째 주민들에게 시달리고 있다. 리모델링 대신 재건축을 추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내용의 전화를 20여 통 받았고, 10여 명은 조합 사무실을 찾아왔다. A씨는 “재건축 연한 단축으로 몇 년만 있으면 되는데 기다렸다 재건축해야 한다는 주장들”이라며 “좀 더 두고 보자며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그는 “재건축이든 리모델링이든 주민 뜻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재건축을 원하는 주민이 많으면 사업 궤도 수정을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9·1 재건축 규제 완화 후폭풍
녹지공간·일조권 확보 상품성
재건축이 리모델링보다 앞서
용적률 200% 기준 사업성 달라
재건축으로 선회 부담 만만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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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초반 지어진 이 아파트는 일찌감치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해 2000년대 후반 조합을 만들었다. 당시 재건축 연한이 40년이어서 2030년이 넘어야 재건축을 꿈꿀 수 있었다. 올해 3개 층을 높일 수 있는 수직증축이 허용되면서 사업은 속도를 냈다. 그러다 9·1 부동산 대책의 재건축 연한 단축으로 이 단지는 앞으로 6년 정도 지나면 재건축을 시작할 수 있다.



 수직증축 허용으로 떠오르던 아파트 리모델링 시장이 9·1 재건축 규제완화의 역풍을 맞고 있다. 재건축 연한 단축과 안전진단 완화로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상당수 단지에 재건축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현재 지은 지 15년 이상이면 건물 뼈대만 남겨놓고 새로 짓는 리모델링을 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서울 75만 가구, 수도권 125만 가구 등 전국적으로 440여만 가구의 아파트가 대상이다. 정부는 지난 4월 리모델링 업계의 오랜 숙원이던 수직증축을 허용했다. 건립 가구 중 15%를 일반에 팔아 사업비에 보태게 했다.



 사업성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되면서 강남권과 목동, 분당 등 1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1990년 전후에 완공된 단지들에 리모델링 붐이 일었다. 재건축을 하려면 길게는 15년 이상 기다려야 하지만 리모델링은 바로 착수할 수 있어서다.



 그런데 이번 9·1대책은 낡은 집을 새 집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으로, 리모델링 외에 재건축이라는 길을 열어줬다. 재건축 연한이 줄어든다고 리모델링 추진 단지가 바로 재건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몇 년 정도는 주민들이 기다릴 수 있다. 예를 들어 1991년에 지어진 아파트의 경우 리모델링과 재건축 사이의 사업 시기 차이가 17년에서 7년으로 줄어든다. 리모델링은 지금 가능한 데 비해 재건축 가능 시기는 이번 규제완화로 2031년에서 2021년으로 앞당겨진다.



 재건축 연한 단축 혜택을 보면서 리모델링과 재건축의 사업 시차가 8년 이내인 아파트가 서울·수도권에서 60여만 가구에 달한다.



 정부의 안전진단 기준 조정은 재건축 안전진단을 통과할 가능성이 낮아 리모델링을 할 수밖에 없는 단지들에 재건축 문턱을 낮췄다. 앞으로 구조 안전에 큰 문제가 없어도 생활의 불편이 크면 재건축할 수 있다. 지금까지 구조안전이 취약하면 리모델링하지 못하고 재건축해야 한다. 안전에 문제가 없으면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 앞으로는 튼튼해도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고를 수 있다.



 최근 분위기는 재건축으로 기우는 주민들이 늘고 있는 쪽이다. 분당 매화마을 1단지 원용준 리모델링 조합장은 “재건축 연한 때문에 아예 생각지도 않았던 재건축에 대해 주민들의 관심이 살아나고 있다”고 전했다. 전학수 범수도권리모델링연합회 회장은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열심히 준비하던 단지들이 혼란에 빠졌다”고 말했다.



 중개업소들엔 리모델링 투자 문의가 확 줄었다. 분당 믿음공인 김숙영 사장은 “리모델링 사업을 문의하고 해당 단지를 묻는 전화는 끊기고 대신 재건축이 언제 가능하겠느냐는 문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리모델링보다 사업이 늦는데도 재건축에 관심을 갖는 것은 신축 효과 때문이다. 리모델링은 골조를 보존하면서 새로 짓는 데 비해 재건축은 집을 모두 철거하고 다시 짓는다. 리모델링은 기존 건물 구조의 제약 때문에 내부평면·조경 등을 자유롭게 설계하지 못한다.



 리모델링은 앞뒤나 옆으로 건물을 늘리다 보니 대개 햇볕이 들어오는 공간이 새로 짓는 가로형 평면보다 좁고 녹지공간이 줄어든다. GS건설 신호준 주택정비팀 부장은 “완전히 새로 짓는 재건축과 기존 주택을 업데이트하는 리모델링은 상품성이 달라 리모델링 주택의 시장가치가 재건축보다 10~20% 떨어진다”고 말했다.



 수직증축 허용 뒤 리모델링에 공을 들여온 주택건설업체들도 당혹스러워한다. 삼성물산과 쌍용건설은 리모델링 관련 TF팀이나 부서를 운영하고 있고, 포스코건설·금호건설 등은 올 들어 리모델링사업 부서를 따로 만들었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리모델링사업을 적극 검토하고 있었는데 축소하고 재건축사업 부서를 강화해야 할지 모르겠다. 재건축으로 선회하는 단지가 잇따를 것으로 보여 이번 대책이 리모델링엔 찬물을 끼얹은 셈”이라고 말했다.



 리모델링 수순을 밟고 있는 단지가 모두 재건축으로 돌아서지는 않을 것 같다. 단지에 따라서는 재건축 비용 부담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이든 재건축이든 건축 규모를 결정하는 용적률(사업부지 대비 지상건축연면적 비율)이 사업성을 좌우하게 된다. 현재 아파트가 지어진 기존 용적률과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의 용적률 차이가 관건이다. 차이가 클수록 일반에 팔 수 있는 일반분양분이 늘어 분양 수입이 증가한다. 일반분양 수입금이 많으면 주민들의 사업비 부담이 그만큼 줄어든다.



 업계는 일률적으로 정하긴 어렵지만 대개 용적률 200%를 기준으로 사업성이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200%가 넘으면 리모델링이 유리하고, 그 밑이면 재건축이 낫다. 200%가 넘는 단지는 리모델링의 용적률 등 건축기준 완화 덕에 법적 상한선인 300% 넘게 리모델링할 수 있지만 재건축은 법적 한도까지만 가능하다. 기존 용적률이 258%인 서울 청담동 옛 두산은 370%의 용적률로 리모델링했고, 대치동 옛 우성2차를 리모델링한 래미안하이스턴의 용적률은 237%에서 347%로 높아졌다.



 용적률이 200% 미만이면 리모델링으론 250%까지 정도만 높일 수 있는 반면, 재건축은 300%까지 가능하다.



 현재 용적률은 서울 목동 120~130% 선이고, 노원구 상계·중계동과 분당 등은 180~200%다. 강남권 단지들엔 200% 넘는 단지가 적지 않다.



 그 때문에 용적률 규제에 묶여 재건축할 수 없는 단지는 재건축 연한 단축에 상관 없이 계속 리모델링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개포동 대청아파트 박철진 리모델링 조합장은 “재건축이 솔깃해도 기존 용적률이 높으면 사업성이 도저히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윤영선 연구위원은 “용적률·단지 구조·주변 시세 등을 기준으로 단지별로 리모델링과 재건축의 사업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장원·황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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