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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팝부터 원조 아이돌 음악까지…그때 그 가슴 떨리던 추억 속으로

중앙일보 2014.09.04 00:10 6면 지면보기
가을 밤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추억의 장소들이 있다. 7080세대의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공간이 늘면서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라고 여겼던 청춘들이 다시 이곳을 찾아 추억을 공유한다. ‘세시봉’과 함께 불었던 7080열풍은 한 드라마의 성공적인 방영으로 8090으로 넘어온다. 7080에서 8090까지 추억을 찾는 사람들과 추억을 파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향수 자극하는 가게들

김난희 객원기자 0116337637@naver.com



‘1992년도’ 손재용 대표가 칵테일 쇼를 하고 있다. [채원상 기자]


라틴음악·클래식 LP판 2만 장



“지지직~지지직~ LP판 특유의 음색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따뜻해져요.”



 ‘벨벳언더그라운드’의 이재인(51) 사장은 중학생 때부터 음반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1960년대 전축이 드문 시절에 음악을 좋아했던 이 사장의 아버지는 국내 가요는 물론 팝·클래식을 어린 아들에게 자주 들려줬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이 사장은 자연스레 LP와 인연을 맺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LP판을 수집한 이 사장은 국내에 몇 없는 희귀 앨범에서 소장 가치가 높은 LP까지 2만 장 이상 보유하고 있다. 클래식, 라틴음악, 영화음악, 60~70년대 올드팝송, 60년대 대중가요 같은 주로 잔잔한 음악이 주를 이룬다.



  계단을 따라 가게를 올라가다 보면 세계적 기타리스트인 지미 핸드릭스의 사진이 걸려 있다. 비교적 모던한 느낌의 가게에는 주로 40~50대 손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쪽 벽면에는 LP판이 가득하다.



  김재영(45·직장인)씨는 “퇴근 후 가볍게 맥주 한잔 하면서 추억을 즐기기에는 LP음악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여러 장르의 음악이 있지만 클래식 음악만큼은 아날로그 녹음 방식의 LP사운드로 듣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아날로그 녹음은 악기 하나하나에 마이크를 설치해 모든 음이 기록된다. 또한 LP는 소장 가치도 대중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실제 이곳엔 한 장에 1500만원이 넘는 앨범이 있다. 54년에 녹음된 요한나 마르치의 무반주 바이올린 앨범이다. 10여 년 전 구입한 가격이 1500만원이니 지금은 그 가치가 더 클 것이다.



무선호출기(일명 삐삐)·카세트 같은 1990년대 제품들 [채원상 기자]


클래식을 좋아하는 이 사장은 가을에 듣기 좋은 클래식 몇 곡을 추천했다.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 뉴에이지의 거장이라 불리는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솔로 ‘AUTUMN’ 5번 트랙이다. 60~70년대 대중가요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희귀 앨범도 있다.



  ‘한국 록의 대부’라 불리는 신중현의 첫 앨범이다. 많은 가수가 리메이크해 불렀던 ‘빗속의 여인’ ‘커피 한잔’을 비롯해 ‘소야 어서 가자’ 같은 곡을 가수 서정길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가치 있는 앨범이다. 70년대 고은의 시에 곡을 붙여 서울대 음대 출신 가수 최양숙이 부른 ‘세노야 세노야’와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기다리겠어요’는 가을을 대표하는 불후의 명곡이다. 당시 이 노래들은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국내에 발행된 앨범 수가 적어 희귀 앨범으로 분류되지만 이곳에 오면 들을 수 있다. “LP 레코드야말로 ‘힐링 뮤직’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음악과는 확연히 다른, 정이 있다고 할까? 나와 같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LP 앨범들은 이젠 친구이자 가족과 다름없다”고 이 사장은 말했다.



‘벨벳언더그라운드’ 이재인 대표가 음반을 고르고 있다. 그는 LP판을 2만 장 이상 모았다. [채원상 기자]


칵테일 쇼 보며 8090 음악 감상



80년대 출생, 90년대 학번을 일컫는 8090세대. 90년대는 과거지만 흘러간 과거는 아니다. 과거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현재라 할 수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인기로 90년대 문화코드가 주목받으면서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이 다시 한번 당시의 추억을 찾아 나선다. ‘1992년도’의 사장 손재용(34)씨 역시 그중 하나다. 가게 안에는 삐삐·다마고치와 벽돌만 한 무선전화기, 워크맨·CD플레이어·카세트 테이프 같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로 돌아간 느낌의 소품들이 즐비하다. 90년대 당시 유행했던 의류 브랜드인 ‘보이런던’ ‘스톰’ ‘미치코 런던’의 이름을 테이블마다 붙여 놓기도 했다. H.O.T.의 사진이 크게 내걸려 있는 가게 안에는 지금은 보기 드문 공중전화기를 비롯해 옛날 오락실에서나 봤음직한 스트리트파이터 오락기가 비치돼 있다.



  “제가 대학생 시절에 한참 웨스턴바가 유행했어요. 어찌 보면 웨스턴도 미국 서부의 한 문화잖아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90년대 테마와 칵테일 쇼를 접목했어요.”



  국가대표 바텐더인 손 사장은 자신의 특기를 살려 8090세대의 음악에 맞춰 칵테일 쇼를 선보인다. 고교 동창생끼리 함께 왔다는 이윤지(31·직장인)씨는 “저는 H.O.T. 팬이었고 옆 친구는 젝스키스 팬이었어요. 당시에는 서로 다른 가수를 지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앙숙이었는데 지금은 아기 엄마가 돼 다시 만났어요. 친구들과 함께 그때 음악도 듣고 추억의 물건들도 보니 고교 때 생각이 많이 나네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90년대 청춘들. 그때 그 시절을 몸소 경험했던 세대들은 이곳을 찾아 그때의 향수와 추억을 다시금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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