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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 칼럼] 정상이 되어버린 비정상

중앙일보 2014.09.03 01:25 종합 31면 지면보기
노재현
중앙북스 대표
말꼬리 잡기나 한낱 언어유희로 비칠 수는 있겠다. 요즘 들어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이 자꾸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 말은 지난해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자주 언급했고, 급기야 올해 대통령 신년사에서는 경제 살리기, 국가안보와 더불어 국정 목표의 하나로 격상되었다. 말 그대로 사회 각 분야의 정상이 아닌 것들을 정상으로 돌려놓자는, 바꾸어보자는 뜻이다. 영어단어를 쓰자면 애브노멀(abnormal)을 노멀(normal)화(化)하자는 것일 게다.



 짓궂은 말 비틀기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대통령이 원래 언급한 의미가 아니라, ‘비정상 상태가 심해지거나 오래 지속돼 그 자체가 정상인 양 여겨지는’ 상황으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비정상의 고착화·일상화이자 정상과 비정상의 자리바꿈 현상이다. 실제로 요즘 같이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난 적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서울 송파구만 그런 줄 알았더니 전국 곳곳에서 싱크홀(sinkhole) 때문에 난리다. 구타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윤 일병이 당한 치 떨리는 과정은 징병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마저 일게 한다. 경찰이 블랙박스 영상 일부를 공개한, 창원시 시내버스가 승객들을 태운 채 수몰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몸서리치지 않을 사람이 있겠나. 수많은 전봇대들이 감전사고의 위험을 안은 채 방치되고 있다는 소식도 있었다. 마음의 병을 앓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50대 검사장의 행적이 담긴 폐쇄회로TV(CCTV) 영상도 정상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해남 논밭을 며칠간 휩쓴 수억 마리 풀무치 떼에서 이집트를 덮친 구약성경 속 메뚜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일들이 빛의 속도로 전해지고 확산돼 우리 사회에서는 마치 비정상 상태가 정상인 양 여겨지게끔 만들었다.



 경제학자들은 이미 예전의 정상이 더 이상 정상이 아니라는 점을 간파했나보다. 뉴노멀(new normal), 즉 ‘새로운 정상’이란 신조어가 돌아다닌 지 벌써 몇 해 됐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저성장·저소득·저수익률 같은 현상이 일상화돼 새로운 정상 내지 표준으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뉴노멀에 더해 ‘뉴애브노멀(new abnormal)’이란 조어까지 등장한 것을 보면 확실히 지금이 난세이긴 한가보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지금이 비정상이 정상 대접을 받는 시대라면 과연 과거는 정상이었다는 말인가. 옛날에는 정상적으로 돌아가던 것이 요즘 와서 갑자기 뒤집어지고 헝클어져 착종(錯綜) 상태로 변했다고 보아야 할까. 태양 아래 새로운 게 없다는데, 어제가 있어 오늘이 있는 법인데 그럴 리는 없다고 믿는다.



 군대만 해도 그렇다. 예전 군대보다 요즘 군대 생활이 상대적으로 나아진 건 확실하다. 수십 년 전부터 고참들이 후임병에게 재듯이 말하던 “요즘 군대 좋아졌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다. ‘내 자식’이 ‘단 한 번’ 가는 군대이기에 과거 사병들과 비교하는 게 무의미하기 때문일 뿐이다. 1979년 8월 경기도 양평의 군부대에서 폭염 속에 구보 훈련을 받던 병사 중 13명이 열사병으로 숨졌다. 누가 봐도 무리한 훈련이고 억울한 죽음이었지만 유신정권 치하의 언론에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요즘 같으면 엄청난 사회적 파문을 불렀을 것이다.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친구들과 군 복무 시절을 되돌려 보면 이런 사건들이 수두룩하다. 내가 있던 부대에서도 2명이 사망했다. 옛날이라고 성도착증 환자가 없었을 리 없다. 오랜 세월 땅속을 헤집어놓고 대충 덮어버린 업보가 싱크홀 소동으로 표면화됐다는 해석도 타당해 보인다. 그래도 어쨌든 우리는 비정상에서 꾸준히 정상을 향해 헤쳐왔다.



 물론 정치권은 빼고 그렇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면서, 이참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겠다면서 여전히 세월호 이전 방식으로 아귀다툼을 하는 정계만큼은 비정상이 정상 자리를 빼앗은 지 오래인 듯하다. 여당의 불통 이미지, 야당의 80년대식 장외 체질에 넌덜머리를 내지 않을 수 없다. “민생 법안을 챙기자”는 소리에 “민생 법안은 거의 없다”고 반박하는 모양들을 보면 애들 싸움도 아니고 너무 유치하지 않은가. 대화는 실종되고 혼자만의 독백과 자기 편 관객만을 향한 방백(傍白)이 일상화된 정치판은 ‘애브노멀의 노멀화(化)’로 불려도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세월호 정국을 풀어줄 곳은 정치뿐인데, 비정상이 너무 오래간다. 대한민국호마저 복원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이대로 가라앉게 내버려 둘 작정인가. 가뜩이나 38년 만의 이른 추석으로 벌써 연휴가 코앞인데 말이다.



노재현 중앙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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