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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퍼디 퀴즈왕 이긴 '왓슨' 생각의 기술까지 배웠다

중앙일보 2014.09.02 01:58 종합 16면 지면보기
왓슨(Watson)은 IBM의 수퍼컴퓨터다.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분석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갖췄다.


[궁금한 화요일] 뉴욕서 만난 IBM 수퍼컴퓨터
빅데이터와 뛰어난 처리속도 결합
사람 돕는 수준서 탐구 수준 발전
인간이 38년 걸릴 논문 7만개 분석
암 유발 단백질 6개 힌트 찾아내

 2011년 2월 인간과의 지능 대결에서 승리했다. 무대는 유명 퀴즈쇼인 ‘제퍼디(Jeopardy)’. 대답을 제시하면 질문을 알아맞히는 이 게임에서 왓슨은 역대 최강자의 인간 챔피언들을 압도했다.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속도와 정확성에서 인간을 능가했다. 사람들은 왓슨의 미래를 궁금해했다. 그로부터 3년. 왓슨이 진화했다. 속도와 성능은 24배 빨라졌고, 크기는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인터넷만 있으면 클라우드로 왓슨에 접근할 수 있다. 외관만 변화한 것이 아니다. 왓슨이 생명공학·의료·법률·금융 등 현실세계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난 3년간 왓슨은 미국 텍사스대 MD 앤더슨 암센터 등에서 현실화 가능성을 실험해 왔다.



 지난달 28일 뉴욕 맨해튼 아트디자인박물관. IBM이 왓슨의 새로운 활용사례들을 공개했다. 행사장은 학계·재계 관계자와 취재진으로 붐볐다. 박물관 9층 가운데 시연장이 마련됐다. 한눈에 들어오는 초대형 컴퓨터는 없었다. 생명공학·제약·지놈연구·법률·금융 등의 코너마다 컴퓨터 모니터 2개가 배치돼 있을 뿐이었다. 왓슨은 클라우드로 연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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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슨을 제약 분야에 활용하는 시연 코너에 가 봤다. IBM 관계자가 키보드와 마우스를 간단히 조작하자 특정 질병과 치료약, 그 약이 주된 목표로 삼는 유전자, 그 유전자와 영향을 주고받는 다른 유전자 간 연결이 그래픽으로 순식간에 모니터에 나타났다. 왓슨이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연구 논문과 자료들을 읽고 소화해 연관성을 찾아낸 것이다. IBM 관계자는 “이런 분석 결과가 새로운 치료법 개발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실은 빅데이터의 시대다. 세상엔 정보가 넘쳐난다. 30초당 한 개꼴, 연간 100만 개 이상의 과학연구 논문이 쏟아진다. 연구자들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분량이다. 왓슨은 순식간에 그 정보를 흡수하고 분석해 알려지지 않은 패턴과 관련성을 찾고 대답을 제시한다. 존 고든 IBM 부사장은 “왓슨이 나와 있는 답을 찾는 것을 도와주던 시기에서 아직 답을 알지 못하는 질문을 탐구하는 시기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IBM 측은 연구자들의 새로운 발견을 돕고 연구기간을 대폭 단축하는 데 왓슨이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례가 있다. 텍사스에 있는 베일러의과대학은 왓슨을 활용해 항암 유전자 P53에 대한 논문 7만 개를 분석했다. P53에 돌연변이가 생겨 제 기능을 못 하면 사람들은 암에 걸린다. 항암 전쟁에서 핵심 연구 대상이다. 베일러의대팀은 왓슨의 도움으로 P53에 영향을 미치는 단백질 6개를 찾아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속도다. 통상 과학자들이 몇 년 걸릴 일을 한 달 만에 해냈다. 베일러의대 올리비에 리히타게 교수는 “내가 하루에 5편의 논문을 읽는다 해도 P53에 관한 논문 7만 개를 읽는 데는 거의 38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제약회사 존슨앤드존슨은 새로운 치료법 개발과 부작용 연구에 왓슨을 활용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 부작용이 생기고, 어떤 약품과 상호작용을 하는지는 신약 연구의 핵심 대상이다. 이 같은 연구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설을 세우기까지 세 사람이 달려들어도 통상 10개월이 걸린다. 왓슨은 즉각적인 분석이 가능하다는 것이 IBM의 설명이다. 문제는 왓슨이 의학용어를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존슨앤드존슨의 솔레다드 세페다 박사는 “효능 연구의 70%가 자료를 찾고 필요한 정보를 추출하는 데 쓰인다”며 “왓슨이 의학용어를 이해해 자료들을 분석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왓슨을 가르치고, 왓슨은 과학자들에게 획기적 연구 단초를 제공한다. 말하자면 과학자들과 왓슨의 상호작용(interactive)이자 공동작업(collaboration)이다.



 또 다른 제약회사인 사노피도 왓슨과 함께 일하고 있다. 특정 질환을 겨냥해 만들어진 약이 다른 질환에도 효험이 있는지에 대한 연구에 왓슨을 투입했다. 이를테면 두통약 아스피린이 심장병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 같은 사례를 찾아내겠다는 것이다. 뉴욕 지놈센터도 암 정복을 위한 유전자 치료법 개발에 왓슨을 도입했다.



 왓슨의 활용범위는 과학 분야에 국한돼 있지 않다. 법률 분야도 그중 하나다. 회사의 법률 담당자와 변호사들은 수많은 판례와 계약서를 읽고 분석해야 한다. IBM은 “왓슨이 법률 자문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연 코너에서 왓슨에 특정 기업의 인수합병(M&A) 금지조항을 묻는 질문을 입력하자 바로 답이 튀어나왔다. 기업을 분석하고 재테크 방법을 찾는 등 금융 분야에서도 왓슨이 폭넓게 쓰일 수 있다.



 범죄수사 역시 왓슨이 빠르게 보급될 분야로 꼽힌다. 왓슨은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팩트들이 어떻게 범죄와 연결돼 있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치 영국의 인기 탐정드라마 주인공 셜록 홈스가 놀라운 추리력으로 런던 뒷골목의 살인사건과 세계적 테러조직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식이다. 애리조나주 투산시의 로베르토 빌라세뇨르 경찰국장은 “사건마다 수천, 수만 개의 정보가 있는데 사람들이 그 연관성을 찾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왓슨이 단서를 찾는 시간을 줄여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장에선 ‘셰프 왓슨’이 큰 환영을 받았다. 왓슨을 음식 요리 분야에 적용한 것이다. 왓슨이 제시한 식재료와 조리법으로 만든 다양한 음식이 제공됐다. ‘블루 캐리비언 허리케인’이란 칵테일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코코넛크림과 바나나즙, 파인애플주스, 라임주스, 럼주를 섞은 칵테일은 맛있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1초에 책 100만 권 읽는 왓슨



2011년 ‘제퍼디’에 나왔을 때만 해도 냉장고 10대만 한 크기였으나 지금은 대형 피자 상자 4개 크기로 줄어들었다. 1초에 80조 번에 이르는 연산 능력을 갖췄고 1초에 책 100만 권 분량의 빅데이터를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다. IBM은 관련 시장 규모가 2017년에는 연간 8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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