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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조광지처'는 남편을 빛내는 아내?

중앙일보 2014.09.02 00:32 경제 11면 지면보기
“조광지처 버리고 제대로 된 놈 못 봤다. 조광지처 버린 남자를 만나는 여자는 과연 어떤 여자일까? 조광지처 있는 남자 건드리지 마라.” “하하하. 님아. 조강지처예요. 조광지처가 아니에요. 임자 있는 놈 건드려 봐야 좋을 거 없다고? 선택은 본인 몫 아닌가??”



 아내를 버린 남자와 사귀는 여자를 타이르는 듯한 댓글에 개인적으로 선택할 문제라고 반박하는 댓글의 내용이다. 글 가운데는 ‘조광지처’라고 한 것을 ‘조강지처’로 바로잡아 주는 대목도 나온다. 재미가 있기도 하고 ‘조광지처’라 하는 것이 신기해 혹여나 이렇게 쓰는 사람이 많은지 인터넷을 조회해 보니 이 말이 적잖게 나온다.



 왜 ‘조광지처’라고 할까. 혹시 ‘광’자에서 남편을 빛(光)내는 아내라는 의미가 연상돼 그런 것일까. 하기야 아내의 도움을 잘 받아 얼굴에 빛이 나고 기가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 반면 사사건건 아내의 기세에 억눌려 영혼을 잃어버린 듯 무표정하게 지내는 이도 있다. 그러니 아내의 역할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하지만 댓글의 지적처럼 ‘조광지처’가 아니다. ‘조강지처’다. 조강지처(糟糠之妻)는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을 때의 아내라는 뜻이다. 몹시 가난하고 천할 때 고생을 함께 겪어 온 아내를 이른다. 『후한서』의 ‘송홍전(宋弘傳)’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後漢)의 광무제가 미망인이 된 누나에게 신하 중 누가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더니 송홍이라고 답했다. 광무제는 그를 불러 “흔히들 고귀해지면 친구를 바꾸고, 부유해지면 아내를 버린다고 하던데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니겠소?”라고 떠보았다. 그러자 송홍은 “가난하고 천할 때의 친구는 잊지 말아야 하며(貧賤之交 不可忘), 술지게미와 겨로 끼니를 이을 만큼 구차할 때 함께 고생하던 아내는 버리지 말아야 한다(糟糠之妻 不下堂)”고 말했다. 여기에서 ‘조강지처’가 유래했다고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함께 고생한 아내를 버리는 것은 늘 화두가 되는 문제이므로 이 단어가 쓰이는 일이 많다. ‘조광지처’가 아니라 ‘조강지처’다.



배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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