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서로를 밀고 끌어준 극과 극의 두 감성

중앙선데이 2014.08.31 02:34 390호 27면 지면보기
스승 슈만(좌)과 제자 브람스. 서로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고 받았으나 둘의 음악세계는 양극단에 있었다.
오랜만에 B의 음악을 공부하자니 지난달에 공부했던 A의 음악이 계속 떠오른다. 그 정반대의 음악이…. 신기할 따름이다. 이를 테면 쇼팽과 리스트가 다른 것이나, 브루크너와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다른 것이야 놀랄 일이 아니잖나. 그들은 살아 생전에도 서로의 대척점이었고 지금까지도 각자의 추종자가 현격히 나뉠 정도로 다르고 또 다른 음악가들이니.

음악가만 아는 것들 ③ 슈만과 브람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건 참 재밌는 일이다. 뭐가 어떻게 다른지는 여기 A와 B가 악보에 쓴 지시어만 봐도 바로 알 수 있다.

먼저 지난달 내가 공부했던 A의 곡,

Äussert bewegt (빠른 움직임으로) - Sehr innig und nicht zu rasch (매우 내밀하게, 너무 서둘지는 않게) - Sehr aufgeregt (매우 흥분해서) - Sehr langsam (매우 느리게) - Sehr lebhaft (매우 생동감있게) - Sehr langsam (매우 느리게) - Sehr rasch (매우 서둘러서) - Schnell und spielend (빠르고 재미있게).

그리고 B의 비슷한 형식의 작품,

Un poco agitato (조금 흥분해서) - Allegretto non troppo (조금 빠르게 그러나 너무 심하지 않게) - Grazioso (우아하게) - Allegretto grazioso (조금 빠르고 우아하게) - Agitato ma non troppo presto (흥분해서, 하지만 너무 빠르지 않게) - Andante con moto (느리게 그러나 움직임이 있게) - Moderato semplice (중간 정도의 속도로 단순하게) - Grazioso ed un poco vivace (우아하고 조금 빠르게).

하노버의 요아힘거리 이정표. [사진 손열음]
감정의 양 극단을 오가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이는 A와, 이와는 정 반대로 행여나 모자랄까, 행여나 지나칠까 전전긍긍인 B. 상극처럼 보이는 이 두 사람은 살아 생전 서로를 가장 아꼈다. A가 “시대의 이상을 가져다 줄 운명의 젊은이”로 소개하며 B의 인생은 하루 아침에 바뀌었다. “당신의 그 찬사 덕에 상상할 수도 없이 늘어난 나에 대한 기대를 어떻게 충족시켜야 할지, 그 시작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A에게 직접 밝힌 소회에서처럼 B는 무명의 신인에서 일약 음악계의 총아로 급부상했다. A는 로베르트 슈만, B는 요하네스 브람스다. 각각의 곡은 첫번째가 ‘크라이슬레리아나’ 작품번호 16, 두번째 곡이 ‘8개의 작품’ 작품번호 76이다.

이 멘토와 멘티는 겉으로 보기엔 비슷한 점이 많다. 먼저 당시 유럽 음악계에서 의외로 드문 순수 독일 혈통이었다는 점. 멘델스존은 유대계, 쇼팽·리스트는 동구권 태생, 베를리오즈는 프랑스인이었으니 순수 아리안으로는 이 두 사람과 바그너가 선봉장이었던 셈이다.

자연스레 슈베르트의 뒤를 잇듯 많은 독일시 가곡을 남겼으며 둘 다 피아니스트 출신으로 여러 피아노 곡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절 최고 ‘대세’이던 신독일악파, 즉 리스트·바그너·베를리오즈 등이 음악의 드라마적 요소를 극대화시킨 외향적 음악을 지향했던 것에 반해 소규모의 내향적 음악을 고집했던 것 때문에 얼핏 둘의 음악이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악보에는 차마 숨기지 못한 본질적 성향은 그야말로 정반대에 가까운 것이다. 슈만의 음악이 훗날의 정신착란으로 발전될 정도의 고도의 환상성에 뿌리를 두었다면 브람스의 음악은 보다 순수한 이성이 원천이다. 가장 순도 높은 영감이나 감정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뽑아내던 슈만과 달리 브람스는 불현듯 떠오르는 영감이나 치미는 감정들의 나열을 지양했다. 몇 달 안에 수십개의 작품을 쏟아냈던 슈만과 비교하면 브람스의 작업은 답답할 정도로 치밀했다.

소규모의 실내악을 작곡한 경험을 차곡차곡 쌓은 후에야 박차를 가한 교향곡 1번의 작업은 20년만에 결실을 이뤘으니. 혹자들은 이 곡을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이라 했다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브람스가 이 곡에서 꿈꾼 것은 베토벤이 매 교향곡에서 추구했던 자아의 성취, 영웅적 승리보다는 예술의 신성, 정신의 고양에 더 가깝지 않은가. 개인의 사랑과 꿈, 시정을 노래한 자전적 에세이에 가까운 슈만의 음악세계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끝에서 끝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이런 슈만이야말로 오히려 더 꽉 막힌 사람이었던 것도 같다. 순수 음악이나 문학 작품만을 모티브로 차용한 슈만과는 달리 브람스는 헝가리 춤곡, 16개의 왈츠 작품번호 39, 자장가 등 민속음악과도 부합하고 대중적인 경음악과도 타협했다. 평생의 친구였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부인 아델레가 사인을 요청하자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첫 소절을 그려주며 ‘애석하게도, 브람스가 안썼음’ 이라고 적었을 정도였다 하니, ‘유머 있게(mit Humor)’ 를 강박적으로 강조하던 슈만과는 다른 형태의 융통성을 지녔던 건지도 모르겠다.

또한 한음 한음에 고유한 성격이 부여되어 들리는 절대음감이 없었던 탓에, 슈만은 그 무한대의 상상력을 가공할 만한 세밀한 화성 진행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반면 브람스는 완벽한 절대음감의 소유자였다고….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음악사에서 서로의 덕을 제일 많이 보고 있는 훈훈한 관계로,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서로의 일대기에서 서로를 지울 수 없을 샴쌍둥이 같은 이 둘의 인연은 참고로 이 곳 하노버에서 시작됐다. 1852년 하노버로 건너 온 요제프 요아힘은 이듬해 이곳으로 연주여행을 온 약관의 브람스를 만났고 슈만에게 건넬 추천사를 써주었다. 갑자기 엄청 중요한 곳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손열음 피아니스트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