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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고통을 즐기는 까닭

중앙선데이 2014.08.31 02:55 390호 30면 지면보기
어느 날 딸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소원이 뭐예요?”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첫째는 원고에서 해방되는 것, 그리고 둘째는 일생에 길이 남을 멋진 글을 쓰는 것.”

글쓰기를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이율배반적인 대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냐 만은 글 쓰는 것만큼 스트레스 받는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직업적으로 늘 하는 일이니 이력이 날 법도 한데, 어찌 된 일인지 이 일은 아무리 해도 숙달이 안 된다. 글을 쓸 때마다 너무나 막막해서 “이 짓 안 하고 살 수 없나?”하는 한탄이 절로 나오곤 한다.

어린 시절 내 꿈은 피아니스트나 외교관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대충 화려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예상치도 못하게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열병처럼 찾아왔다. 사고력이나 표현력에 있어서 또래 친구들의 수준을 훨씬 능가하는 한 친구의 글을 읽고 충격을 받은 후였다. 갑자기 나도 그 친구처럼 폼 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기니 편지니 수필이니 소설이니 되지도 않는 글을 마구 써대기 시작했다. 나는 내 글이 정말로 잘 쓴 글인지, 내가 글쓰기에 소질이 있는지 조차도 몰랐다. 그런데도 그냥 글 쓰는 것이 좋았다.

대학 졸업 후, 한때 다른 직업을 기웃거렸다. 글쓰기는 취미로 해야지 직업으로 할 만한 것은 못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다른 길로 가려고 해도 결국에는 꼭 글 쓰는 일로 돌아오곤 했다.

글은 처음 시작하기가 힘들다. 일단 써야 할 원고가 있으면 며칠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 원고 써야 하는데…”라고 하면서도 글은 쓰지도 않고, 공연히 TV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서 시간을 죽인다. 그렇게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마감이 닥쳐서야 마지못해 책상 앞에 앉는다.

만약 원고 쓰는데 5시간이 걸린다면 딱 마감 5시간 전에 글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고도 처음에는 한 동안 끙끙거린다. 이 시간이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물 끓이기에 비유하자면 온도가 100도까지 올라 물이 끓기 시작할 때까지가 힘든 것이다.

하지만 일단 물이 끓기 시작하면 즉, 뇌가 워밍업을 마치고 본격적인 글쓰기 모드로 돌입하면, 신기하게 글이 술술 잘 풀린다. 내가 아닌 내 속의 어떤 존재가 대신 글을 써주는 듯하다. 이때부터는 마음이 편안해진다. 끙끙거리며 머리를 쥐어짜지 않아도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무척 힘든 일이지만 이 일처럼 충만한 만족감을 가져다 주는 일도 없는 것 같다.

일전에 이 세상의 직업 중에서 작가들의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글쓰기는 창조적인 작업이다. 창조적인 작업은 사람에게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 아마 이 매력 때문에 지금도 수많은 작가들이 지옥처럼 힘든 글쓰기를 감내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본래 소설가나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애당초 이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음악에 관한 글을 쓰는 것으로 글쟁이에 대한 열망을 대신하고 있다. 사람들은 내가 음악을 전공하고,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나를 음악인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나의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글쟁이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글쟁이로 봐주길 원한다.

글을 향해 짝사랑을 시작한 지 어언 40여년, 힘들 때도 많지만 행복한 순간도 많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비로소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곤 한다. 오로지 글쓰기를 통해서만 진정한 자유와 즐거움을 맛볼 수 있으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곧 글쓰기이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내 정신이 허락하는 한 죽는 날까지 글을 쓸 것이다. 그렇게 이 땅의 영원한 글쟁이로 남고 싶다.



진회숙 서울시향 월간지 SPO의 편집장을 지냈다.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공부하기 등에서 클래식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클래식 오딧세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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