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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동 칼럼] 보물지도 같은 친구 ‘늘봄’

중앙선데이 2014.08.31 02:56 390호 30면 지면보기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를 보면 카페 아드리아노의 여주인 지나가 피아노 반주로 노래를 부르잖아요. 처음 듣는 순간 팍 꽂혔는데 그 곡이 뭔지…”

광화문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다 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앞에 앉아 있던 S가 말했다. “‘버찌가 익어갈 무렵’이라는 곡입니다. 샹송이죠. 저도 좋아합니다.” 빙그레 미소 짓는 그를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그는 음악 동호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버찌’ 이후로는 각별한 친구가 되었다. 같은 걸 좋아하면 남다른 유대감이 생기는 법이다. 그 날 이후 카페에 갈 때마다 첼로로 연주하는 ‘버찌’가 우리의 주제곡처럼 흘러나왔다. 만나면 늘 음악 이야기를 했다. 슈베르트 가곡의 낭만성에 대해 토론하고 오래 된 LP음반을 주고받고 가끔 연주회도 같이 갔다.

그는 나보다 네 살 연하에 동향 출신이다. 동생으로 대접해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이름에 ‘형’을 붙여 부르고 존대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 만난 사이기도 하거니와, 그는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친구는 성실한 기독교인이지만 나와 밥상을 마주할 때 기도를 하지 않는다. 수저를 들고 멈칫거리지 않아도 된다. 삼계탕에 딸려 나오는 인삼주 한 잔을 물리는 답답한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나와 지내는 동안 술이 많이 늘었다고 하하 웃는다. 그러나 취해서 예의를 잃거나 목소리가 높아지는 걸 본 적이 없다. 흥이 나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내 생일에는 이글스의 ‘데스페라도’를 멋지게 불러주었다.

나눔의 실천도 음악으로 한다. 친구는 5000여 장의 LP레코드를 오랜 세월 꾸준히 모으고 애지중지하며 들어왔다. 음악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흔히 고립적 성향을 보이는데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애쓴다. 자신의 레코드에서 주제별로 곡을 골라 CD에 녹음하고 소량을 복제한다. 그와 동호회를 같이 하거나 레코드 가게에서 만난 몇몇 사람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특별한 음반을 받아 들고 즐거워한다.

내가 받은 CD는 마흔 한 장이나 된다. 그 속에 800곡이 넘는 클래식, 재즈, 올드 팝, 가요 명곡들이 그득하다.

최근에 만든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는 기획력이 돋보인다. 스무 곡의 연가곡을 11명의 남녀 가수들이 번갈이 부르는데 각 가수들에게 그들이 가장 잘 부를 곡을 맡겼다. 복잡 미묘한 음악과 방대한 음반에 통달해야 가능한 작업이다. 양희은·최양숙·김민기가 이어 부르는 ‘김민기 작곡 노래집’을 들어보면 김민기가 이미지와 달리 얼마나 순수하고 동심 가득한 노래를 많이 지었는지 알 수 있다. 친구는 머지않아 “신보 나왔습니다”하며 또 한 장의 음반을 건넬 것이다.

그는 아내를 이기려 하지 않는다. 얼마 전 JTBC 드라마 ‘밀회’가 화제 속에 방영될 때 친구도 궁금해 했다. 클래식 음악이 큰 줄기를 이룬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구가 ‘원장수녀님’이라고 부르는 엄숙한 신앙인인 아내는 “그래 봐야 불륜이고 그런 걸 내 집에서 볼 이유가 없다”고 선언했다. 친구는 거실에서 ‘불건전 드라마’를 보는 만용을 결코 부리지 않았다. 단 한번, 수녀님이 일찍 잠드신 날, 볼륨을 한껏 낮추고 주인공 김희애와 유아인의 밀회를 숨죽여 지켜보았다고 한다. 이러니 부부 사이에 큰 소리 날 일이 없다. 그 댁 아들딸들을 본 적이 있는데 모두 얼굴이 맑았다.

그는 평화의 중재자다. 내가 누군가와 사이가 틀어지면 조용히 둘 사이를 오가며 결국 자연스럽게 마주 앉게 만든다. 이런 친구를 보며 보물지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노다지와 같은 평화를 누릴 것 같다.

친구는 서씨인데 ‘늘봄’이라고 스스로 호(號)를 지어 쓴다. 이 소박한 호는 본인의 이름을 ­- 한자의 뜻까지 일치하지는 않지만 ­- 순 우리말로 바꾼 것이다.


최정동 영상 에디터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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