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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탐사] 정치가 퇴폐하면 청년이 결딴난다

중앙선데이 2014.08.31 03:03 390호 31면 지면보기
지난주 중앙일보에 실린 2건의 국제 기사에 주목한다. 하나는 28일자 ‘이슬람 전사가 된 서구 젊은이들’ 얘기고, 다른 하나는 다음날 실린 ‘태국의 잃어버린 17년’ 얘기다.

첫 번째 기사에 따르면 이라크·시리아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 지하디스트가 1만2000명 정도인데 그 중 유럽 출신이 3000명에 이른단다. 이들이 돌아와 조국을 상대로 테러를 저지르는 게 요즘 유럽 공안당국의 악몽이라는 거다.

놀랍지만 여기까지는 그다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정말 놀라운 건 이 유럽 출신 전사들의 상당수가 풍족한 중산층 자제들이라는 사실이다. 납치한 미국인 기자를 참수하는 동영상으로 세계를 경악시켰던 압델(23)도 런던 고급주택가의 100만파운드(약 18억원)짜리 집에 살았었고, 래퍼로 활동하며 BBC방송에도 소개될 정도였다. 열악한 성장 환경에서 자란 이민 2세들이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탈출구로서 테러조직을 선택한다는 과거의 정설을 뒤집는 사례였다.

교육도 많이 받고 물질적 결핍 없이 자란 젊은이들이 무엇 때문에 자기를 키워준 서구를 상대로 AK소총을 겨누는 걸까. 압델한테는 탄자니아·케냐 미 대사관 폭탄 테러에 연루된 혐의로 2012년 체포돼 미국으로 송환된 아버지의 복수라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모든 서구 청년 지하디스트들이 그와 같은 이유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예컨대 압델이 속한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는 50여명의 이탈리아 국적 전사들이 있다. 그 중 40명은 이민 2세대가 아닌 이탈리아 가정 출신이다.

기사에서 미국 노스이스턴 대학의 맥스 에이브러햄 교수는 가장 큰 이유를 ‘청년 실업’이라고 단언한다. “정말 가난해서 굶고 있다면 당장의 현실 문제에 몰두하지 테러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다”는 거다. 그보다 먹고 살만한 여유는 있는데 직업이 없다 보니 목적 없는 삶을 고민하고 성취 동기를 찾아 테러집단에 가담하게 된다는 말이다. 참고로 이탈리아의 청년 실업률은 43%가 넘는다.

두 번째 기사는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19번이나 군부 쿠데타를 겪은 태국의 비극을 들려준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서민층의 지지를 받는 포퓰리스트 정권과 이에 대항하는 군부와 특권계급 사이의 갈등에 태국이 골병 들어가고 있다는 거다.

지난해 태국의 1인당 국민소득(GNI)는 5370달러였다. 우리에게까지 폭탄을 돌렸던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에 비해 80%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10배 가까이 증가한 중국(6560달러)에 추월 당했다. 정정 불안은 태국 전체 산업에서 9%를 차지하고 있는 관광산업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올 4월까지 태국을 찾은 관광객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5% 줄었고 5월에는 감소폭이 10%로 커졌다고 한다. 해외기업의 투자와 이에 따른 수출도 따라 줄었다. 국민들의 삶이 고단해졌음은 물론이다.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가 40 수준으로 이웃 나라들에 비해 훨씬 열악해졌다.

이들 두 기사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치가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삶에 얼마나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지 실증하는 사례다. 정치 리더십이 무능하면 소모적 정쟁을 부르고 이 같은 정치 혼란은 필연적으로 경제적 혼란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경기 후퇴의 가장 크고 직접적인 피해자는 우리가 경험했듯,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이다. 그들이 사회에서 자신의 미래를 발견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사회, 그 국가의 미래가 있겠나 말이다.

단언컨대, 우리는 물론 어떤 사회나 국가도 이 사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렇다. 명재상 관중이 이미 기원전에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넉넉해야 영욕을 안다”고 말한 게 다른 의미가 아니다. 다산 정약용도 개혁적 정치철학을 집대성한 『원목(原牧)』에서 이렇게 요약한다. “임금의 정치가 퇴폐(쇠퇴해 결딴남)하면 백성이 곤궁하게 되고, 백성이 곤궁하면 나라가 가난하게 되며, 나라가 가난해지면 부세의 징수가 가혹해지고, 세금 징수가 혼란하면 인심이 떠나게 되며, 인심이 떠나면 천명이 가버리게 되니, 그런 까닭에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것이 바로 정치다.”

갈등의 소지가 있을 것도 없는 세월호 정국조차 풀지 못하는 정치권에서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정치인들 하나하나가 스스로 돌아보기만 하면 된다. 나 자신을 위해서 정치를 하는지, 아니면 정치를 위해서 나를 버릴 수 있는지 말이다. 만약 전자라면 국가와 사회를 위해 정치판을 떠나는 게 좋겠다.


이훈범 중앙일보 국제부장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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