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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보다 여관이 더 좋다" 파란 눈의「구두쇠 관광객」|「외국유랑자들의 집」…대원·대지여관

중앙일보 1981.05.23 00:00 종합 11면 지면보기
서울세종문화회관 뒷골목길. 허름한 한옥으로 된 대지여관(주인 이상욱·46·서울 내수동187)·대원여관(주인 박천일·40·서울 당주동26)등 2개 여관은 동네 사람들이「외국거지들의 집」이라 부르는 외국인 전용 실비숙박업소.

영문자로 조그맣게 간판을 결들인 낡은 한식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가로 1.5m 세로1m의 세계지도와 서울관광지도가 벽에 걸려있고, 구석구석에는 낮선 외국인들이 아무렇게나 끼리끼리 앉아있다. 이들은 모험을 찾아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지구유랑자들이거나 일본 등지에 살면서 여권경신을 위해 잠깐 서울에 들른 일시 방문객들.

좁은 방에 7, 8명이 합숙|밥짓고 빨래하며 "돈 절약"|달걀하나 살 때도 깎아달라 생떼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자이레 등 20여개국 국민들인 이들은 시골 머슴방을 연상케 할 정도로 너저분한 l.5∼3평 짜리 방에 2∼3명씩 합숙, 이불을 뭉개면서 잠자거나 마당에 나와 이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낯을 익히며 다음 여행을 위해 각국의 여행정보를 교환한다.

대지여관에는 21일 하오12개의 방 가운데 7개에 남자 8명, 여자 2명이, 대원여관에는 18개 방 가운데 8개에 남자10명, 여자2명 등 모두 22명이 투숙, 서울의 인종전시장이 되고 있다. 대지여관의 경우 매년 1천 여명의 외국인이 거쳐가는 정도로 성업 중이다.

대지여관에 묵고있는 캐나다인「스탠」씨(29)는 지난10년 동안 40여개국을 여행한 국제방랑아. 여행장비라고는 작은 손가방 한 개와 입고있는 엷은 와이셔츠, 청바지 한 벌, 신고있는 슬리퍼 한 짝이 전부.

이들 중에는 세계여행보험금을 타 세계순방 길에 오른 부부여행자도 있고 가정파탄으로 훌쩍 고국을 떠나온 변호사·의사 등 나이든 외국인들도 섞여있다.

이들이 이곳 두 여관을 찾는 이유는 숙박비가 다른 호텔보다 10분의1 값으로 싸고(2인1실 1인당 하루 2천5백원, 3인1실 2천원)시내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잘 알려져 있어 찾기가 쉽기 때문. 또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모여 상호정보교환이 쉽다는 이점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지·대원여관은 일본 동경의 요시따 하우스, 경도와 쿵보 하우스 등 세계각지에 2∼3개씩 있는 같은 형태의 숙박업소들과 함께 이들 여행자들에게는 연줄 연줄로 이름이 전파돼 국제적으로 꽤나 유명한 곳이다.

이들의 한국체류기간은 보름 1주일(여권경신차 입국자)에서 2개월(여행자). 비교적 장기 체류자들인 여행자들은 다음 여행국행 비행기표를 마련하기 위해 시내 사설외국어학원에서 영어강사 등으로 돈벌러 다니기에 바쁘고 나머지는 국내 여러 곳을 두루 여행을 다닌다.

이들의 공통점은「외국인 거지」라고 불릴 만큼 철저한 절약생활. 이들은 무엇이든지「가장 값싼 것」을 찾는다는 것이 여관주인들과 이웃 가게주인들의 평이다.

서울시내에서 택시 한번 타는 법 없고 식사도 자취생활. 부근 식품점에서 감자나 야채를 3백원 어치 사서 여관에서 빌려주는 프라이팬에 튀겨, 간단히 요리, 싸게 식사를 해결한다.

대지여관 앞 식품점 내수농협직매장 주인 박시양씨(38)는 이들이 물건하나 고르는데 30분, 계란 1개를 사면서도 표면에 약간의 흠집이 있으면 깎아달라고 떼를 쓰는 통에 애를 먹는다며 이들의 절약생활에 혀를 내둘렀다.

대원여관 주인 박씨는 이들이 이처럼 어렵게 여행하는 가난한 사람들인데도 한달 3∼4차례씩 여관분위기를 해치는 한국인들이 있다고 개탄했다. 외국인이라면 무조건 돈이 많은 줄로 알고 사귀려드는 여대생들. 이태원동·명동일대 싸구려 술집에서 만난 뒤 국제결혼을 노린 양공주, 호스티스들, 영어회화를 배운다는 구실로 밤늦게 여관방을 찾아오는 여고생들 때문에 외국인들 보기에 창피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진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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