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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지만 까칠한 삶, 골똘히 들여다 보다

중앙일보 2014.08.28 20:00
소설가 황정은은 주로 사회적 약자의 생존 현실, 그들이 겪는 말 못할 삶의 고뇌 등을 그린다. 황씨는 “사회의식이 있어서라기보다 주변 사람들이 겪은 이야기를 소설로 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세상을 반영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당·황순원문학상 본심 후보작, 소설 - 황정은 '누가'

후보작 소개의 마지막 순서지만 꼴찌는 아니다. 오히려 무대 마지막을 빛내는 ‘대형가수’에 가깝다. 그만큼 소설가 황정은(38)의 요즘 기세는 맹렬하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굵직한 문학상을 거푸 세 개나 받았다. 현대문학상(월간 ‘현대문학’의 편집 방향에 대한 항의 표시로 자진반납)·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이효석문학상 등이다. 어쩌다 그의 소설을 접하곤 충성도 높은 독자로 투항한 경우도 꽤 있는 것 같다. ‘황정은 팬’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후보작 ‘누가’는 바로 이효석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황순원 후보작으로 선정된 후인 이달 중순 당선됐다. 도대체 왜 황정은일까.



대개 황정은의 소설은 사건이 희미한 대신 인물의 미묘한 내면 묘사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학동네상을 받은 단편 ‘상류엔 맹금류’(계간 ‘자음과모음’ 지난해 가을호)가 그런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빛나는 이유가 그것 만은 아닌 것 같다. 한두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인생의 애매한 장면들을 요령 있게 펼쳐 보여 우리 내부의 괜한 고집이나 만용, 돌이켜보면 얼굴 붉히게 되는 저 마다의 기억 속으로 순간이동시킨다.



‘누가’는 좀 다르다. 요약하면 주택가 층간 소음 얘기다. 새로울 게 없는 소재지만 황정은이 쓰니 좀 다르다. 층간 소음이, 평소 품위와 상식 따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고 그야말로 벌거벗은 민낯의 이웃끼리 만나 죽기살기식 싸움을 벌이는 기괴한 현실의 원인제공자라는 점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은행빚 독촉 전화를 거는 상담원 일을 하는 ‘그녀’는 층간 소음을 횡설수설 문제 삼는 정체 불명의 여인의 방문 이후 실제로 지독한 소음을 내는 위층 사람들과 맞닥뜨린다. 점점 못 견디게 돼 그녀 스스로 엄청난 소음을 내며 가재도구를 박살내다 결국 아래층으로부터 분노에 찬 쌍욕을 듣는다. ‘아래층이야 ⅩⅩⅩ아.’



황씨는 가난해서 좋은 집으로 이사 갈 수 없고, 그래서 각종 소음을 감내해야 하는 ‘없는 계층’의 박탈감을 슬그머니 소설 속에 끼워 넣는다. ‘그녀’는 못 살지만 순진한 인물은 아니다. 모순을 직시하고, 전망 없음에 좌절하며, 억울한 일을 당하면 속으로 욕해줄 만큼 적당히 때가 탔다. 맹랑한 인물 설정이 오히려 실감을 자아낸다. 황정은식 차별화 포인트들이다.



-사회 부조리에 관심 있는 것 같다.

“인간 삶의 조건에 관심 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 사람들을 골똘히 들여다본다. 딱히 사회 문제를 쓰고 싶은 건 아니다. 소설로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지 않는다. 내가 겪었거나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쓴 거다.”



-반응이 뜨거운데.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잘 봐주면 고맙죠.”



-얘기를 독특하게 풀어나간다.

“조심스러운 얘기일수록 전달 방식을 철저히 고민하는 편이다. 주로 에둘러 쓴다.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며 핵심에 접근한다.”



-집필 스타일은.

“마감 때는 하루 10시간쯤 책상 앞에 앉지만 실제로 쓰는 시간은 4시간 정도다. 대개 뭔가를 읽는다. 어떤 문장이든 조근조근 낮은 목소리로 읽다 보면 리듬을 타게 된다고 할까, 쓸 수 있게 된다.”



-소설은 왜 쓰나.

“쓰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하고 싶은 일이다. 그만큼 재미 있다.”

황정은이 아니니 결론이 직설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이든 좋아하는 사람에겐 못 당한다고 했다. 황정은이 그렇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황정은=1976년 서울 출생. 2005년 등단.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장편 『야만적인 앨리스씨』. 한국일보문학상·신동엽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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