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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쿠데타 발생 100일 맞는 태국…정치 혼란· 경기 침체 악순환

중앙일보 2014.08.28 17:33
탁신 집권→쿠데타→탁신 신당 집권→정당 해산→탁신 여동생 집권→쿠데타.



29일로 군부 쿠데타 발생 100일을 맞는 태국의 2000년대 정치 상황을 요약한 것이다. 동북 지역과 빈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탁신 지지세력(레드셔츠)과 군부와 관료, 기업가, 도시 중산층, 서남부 지역을 기반으로 한 반탁신 세력(옐로셔츠)의 끝없는 갈등의 결과다. 한국 외환위기의 도화선이 된 1997년 바트화 폭락사태 이후 태국의 1인당 국민소득(GNI)은 중국에 따라잡혔고, 경제적 불평등은 필리핀보다도 악화됐다. 정치적 혼란과 경기 침체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태국판 '잃어버린 16년'이다.



2000년대 들어 실시한 모든 선거에서 탁신파가 승리했다. 반탁신파는 그때마다 쿠데타와 대법원·헌법재판소의 정당 해산으로 대응했다. 2001년 타이락타이(TRT)당을 만들어 집권한 탁신은 2006년 9월 UN을 방문하는 사이 발생한 군부의 무혈 쿠데타로 권좌에서 쫓겨났다. 이듬해 탁신계 신당인 국민의힘(PPP)이 다시 승리했지만 헌법재판소가 부정선거를 이유로 정당해산 결정을 내렸다. 반탁신 세력이 선거 없이 7년만에 정권을 탈환한 것이다. 2011년 총선에서는 탁신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이 이끄는 프어타이당(PTP)이 승리했지만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쿠데타에 무너졌다.



이 과정에서 탁신 세력이 집권하면 옐로셔츠가, 정권을 잃으면 레드셔츠가 반정부시위에 나서는 일이 되풀이됐다. 시위는 갈수록 과격해져 2010년 친탁신 세력의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군인과 시위대 90여명이 숨지고 1700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지난해 11월부터는 반탁신 세력이 정부청사·공항 등을 점거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친탁신파와 반탁신파의 갈등은 경제적 불평등에서 기인한다. 탁신은 어떤 병이건 30바트(1000원)면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보험 도입, 쌀 수매가격 2배 인상 등을 추진했다. 동북부 농민과 도시 빈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선거마다 승리한 요인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2011년 총선에서 친탁신계가 다수표를 얻은 지역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38%에 불과하다. 반대로 반탁신 진영은 35% 득표에 그쳤지만 이들이 다수표를 얻은 방콕 등 지역의 GDP는 62%다. 반탁신 측은 “재원을 고려하지 않은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하지만 탁신 지지층은 “포퓰리즘이건 아니건 우리를 이만큼 생각해 준 정치인이 있었느냐”고 반박한다.



정치 불안은 곧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태국의 지난해 1인당 소득은 5370달러로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에 비해 80% 늘어나는데 그쳤다. 같은 기간 10배 가까이 늘어난 중국(6560달러)에 추월 당했다. 한국은 그 사이 2배 증가했다.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40 수준으로 이웃나라 말레이시아는 물론, 빈부차가 심하다고 알려진 필리핀보다도 열악하다.



97년과 98년 큰 폭의 역성장을 기록했던 태국의 국민총생산(GDP)은 2009년(-2.3%)에 이어 올 1분기(-1.9%)에도 뒷걸음질쳤다. 올해 성장률은 2%에 그칠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4월까지 태국을 찾은 관광객이 5% 정도 줄었고, 5월에는 감소폭이 10% 이상으로 커졌다"고 보도했다. 관광산업의 비중은 9% 정도다. 해외기업의 투자 감소와 그에 따른 수출 감소도 발목을 잡고 있다. 일본과 한국의 전자업체들은 태국을 벗어나 인근의 베트남과 미얀마 등에 새 공장을 세우고 있다.



입헌군주제 도입(1932년) 이후 19번째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쁘라윳 짠오차 육군참모총장은 25일 총리로 취임했다. 그는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새 헌법을 만들어 내년 10월쯤 총선을 통해 민정이양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태국의 영자지 더내이션에 따르면 새 헌법을 마련할 과도 의회 격인 국가입법회의(NLA) 의원을 모두 군부에서 지명했다. 지난 3년간 정당활동을 했던 사람은 국가입법회의 의원이 될 수 없다고 임시 헌법에 못박았다. 군부 조치가 갈등 상황을 타개하기 어려운 이유다. 김홍구(부산외국어대 태국어과) 교수는 “정당 정치가 취약해 군부 현실 정치를 좌우한다"며 "구심점 역할을 하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고령(87세)인 점도 상황을 어렵게 하는 변수"라고 말했다.



김창우 기자 kcwsss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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