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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강성현] 정관응(鄭觀應)과《성세위언盛世危言》열풍

중앙일보 2014.08.28 13:12
아편전쟁을 전후하여 매판(買辦)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많은 인물들이 명멸하였다. 그들은 ‘돈’에 운명을 걸었다. 돈과 관련하여 널리 퍼진 두 가지 중국 속담이 있다. “돈이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와 “돈은 만 가지 허물을 덮는다.”가 그것이다. 돈을 벌어 관직도 사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으므로, 모든 길은 돈으로 통한 것이다.



‘10대 간신’, ‘4대 미녀’ 등 별칭 붙이기를 즐기는 중국인들은 당정추(唐廷樞, 1832~1892), 서윤(徐潤, 1838~1911), 석정보(席正甫, 1838~1904), 정관응을 ‘만청(晩淸) 4대 매판’이라 불렀다. 이들 가운데 유독 정관응 만이 오래도록 주목을 받는 것은 왜일까?



정관응 정관응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몇 가지 관련 책자를 소개한다. 샤둥위안(夏東元) 편저,《정관응집集(상, 하)》, 상해인민출판사, 1988), 이휘리(易惠莉)가 쓴 <《정관응 평전》,1998, 남경대학 출판사 >등 다수가 있다. 국내 서적으로는 이화승의《상인 이야기》,《성세위언-난세를 향한 고언》(정관응 저, 이화승 역)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정관응 연구 전문가, 샤둥위안이 엮은《정관응집》은 정관응의 대다수 저작과 삶의 궤적을 상세하게 다뤘다.

은 매판으로 일하면서, 서구 자본주의와의 무역전쟁에서 속수무책으로 착취당하는 중국 경제의 뼈아픈 현실을 목도하였다. 외국 상인에 납치돼 노예로 팔려나가는 중국 노동자, 만연한 관료사회의 부패, 아편 중독에 걸린 무기력한 인민 등 참담한 중국의 실상이 그의 눈을 뜨게 한 것이다. 국가 중흥의 방략을 제시한 불후의 명작,《성세위언》은 그의 고뇌와 오랜 사색의 결정(結晶)이다. 그는 누구인가?



정관응의 부친, 정문서(鄭文瑞)는 과거에 실패한 지식인으로서 고향에 글방을 열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정관응은 ‘매판의 고향’, 광둥성 샹산현(香山縣, 오늘의 중산시中山市)에서 태어났다.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라 지탄 받았던 아편전쟁이 끝날 무렵이었다. 17세에 고향에서 열린 동자시(童子試)에서 고배를 마신 뒤 곧장 상인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책 읽기와 영어 공부는 평생토록 지속하였으며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18세에 상해로 건너가 보순 양행(??洋行), 태고 윤선공사(太古?船公司) 등 영국회사에서 약 23년 간 매판으로 일했다. 1880~1881년에 상해기기직포국(上海机器?布局), 상해 전보분국(上海?報分局) 총판을 겸직했다.



41세에 매판 생활을 청산하고 이홍장이 세운 해운회사인 윤선초상국(輪船招商局) 총판을 역임했다. 사익을 추구하는 매판 자본가에서 공기업의 수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취임 후, 대대적인 내부 개혁에 착수하여, 빈사상태에 놓인 이 회사를 본 궤도에 올려놓았다. 윤선초상국에서 대략 10여 년을 봉직했다.



그 밖에 개평(開平)탄광 마카오국 총판, 한양철창(漢陽鐵廠) 총판, 길림 광무(鑛務)공사 주(駐) 상하이 총리 등을 지냈다. 변법유신운동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만년에는 도가(道家)에 심취하였으며, 81세로 생을 마쳤다. 중불전쟁, 청일전쟁, 의화단 운동, 변법 유신운동, 8개국 베이징 점령, 군벌통치 등 시대의 아픔을 모두 겪은 격동의 세월이었다.



정관응을 얘기할 때, 저술활동을 빼놓을 수 없다. 1873년, 매판 경험과 초기의 견해를 담은《구시게요(救時揭要)》를 출판하였다. 32세 때의 일이다. 여기에서는 인신 매매금지, 아편 금지, 빈민구제, 미신 타파 등을 주장하였다. 정관응은 자국인을 유괴하여 ‘노예무역’에 나선 외국 상인들의 만행을 지켜보았다. 팔려가는 마카오의 중국 근로자의 신세를 ‘돼지새끼(澳?猪仔)’에 비유하였으며, 이들의 구출을 위해 절치부심하였다.



“정관응은, 외국상인들이 중국인을 남미의 페루 등지에 노예로 팔아넘기는 실상을 고발해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노력했다(이화승,《상인 이야기》, 327쪽).”



《구시게요(救時揭要)》의 내용을 보완하여, 1880년에《역언易言》을 출간하였다. 자본주의 경제를 학습하여 민족 경제를 부흥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아울러, 서구의 의회제도 도입을 주장하였다.



《역언》을 더욱 깊이 있고 체계적으로 다듬어, 1894년에《성세위언 盛世危言》이 출판됐다. 국어사전은 ‘위언(危言)’을 ‘기품 있고 준엄한 말’로 풀이한다. ‘강해야 모욕당하지 않는다(圖强御侮)’, 곧 ‘부강구국(富强救國)’이《성세위언》의 골자다.《성세위언》은 출간되자마자 중국 대륙을 뒤흔들었다. 청일전쟁의 패배로 상실감이 극에 달한 지도층, 지식인이 이 책을 통해 희망의 불씨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성세위언》의 핵심 내용을 간추려보자.



? 국가의 근본은 민심을 얻는 것이다. 상, 하 양원을 세워 민심을 모아야 한다.

? 전기, 통신, 지리, 수학, 화학, 광물학, 의학 등 서양의 실용 학문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자.

? 공법(公法)을 제정하고 힘을 기르자.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공법은 ‘속 빈 강정’ 일뿐이다.

? 상전이 병전 보다 더욱 긴요하다(商?重于兵?). 상무부와 각 성에 상무국을 설립하여, 상 법을 정비하고 통상, 무역, 제조업을 발전시키자.



《성세위언》은 1895년과 1900년 두 차례에 걸쳐 수정 증보판이 나왔다.《성세위언 속편盛世危言??》,《성세위언 증정신편盛世危言增?新?》이 그것이다. 성세위언은 판본 만해도 20여 종이 넘는다. 정관응 연구의 권위자인 샤둥위안(夏東元)은《정관응집集》에서 몇 가지 대표적인 판본을 종합하여, 57개 분야로 정리, 기술하였다. 이화승의 번역본에는 도기(道器), 서학, 의원(議院), 공법, 선교, 교섭, 상전(商戰), 상무, 세칙, 자강론 등 16편이 수록돼 있다. 번역본에 수록된 항목 외에 일부를 추가하면 다음과 같다.



금연, 학교, 판노(販奴), 철로, 우정(郵政), 선정(船政), 국채, 방직, 방해(防海), 방변(防邊), 연병(練兵), 화기, 개광(開鑛), 여교(女敎) 등

광서 황제는《성세위언》을 읽고 2000부를 인쇄하여 고관 대신들에게 읽도록 하였다. 장지동(?之洞)도 국가의 적폐를 치유하는 양약이라며 극찬하였다. 일약《성세위언》열풍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로서의 지위를 누렸다. 캉여우웨이, 차이위안페이(蔡元培), 량치차오(梁啓超), 쑨원, 마오쩌둥에 이르기까지 국가 지도자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사마천은《사기》를 짓는데 혼을 쏟았고, 정관응은《성세위언》을 위해 신명을 바쳤다. 세인들은 그를 ‘상전(商戰) 사상’의 기초를 세운 인물로 기억한다.



전 웨이난(渭南)사범대학 교수 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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