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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출신 테러리스트 3000명 … 뿌리는 청년 실업

중앙일보 2014.08.28 02:10 종합 10면 지면보기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를 참수한 IS 대원 압델-마제드 압델 바리. 영국의 부유한 집안 출신이다.
26일(현지시간) 미국 언론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반군 ‘이슬람국가(IS)’ 대원인 미국인의 죽음을 일제히 보도했다. 약 10년 전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캘리포니아 출신의 더글러스 매케인(33)이다. 시리아에서 자유시리아군(FSA)과의 교전 중 사망한 그에 대해 가족과 지인들은 “유머감각이 있고 가족을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가 극단주의에 경도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한 가족들은 충격에 빠졌다.



미국 기자 참수한 마제드, 부잣집 출신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를 참수한 IS 대원 압델-마제드 압델 바리(23)가 런던의 100만 파운드(약 17억8000만원)짜리 집에 거주하던 영국인인 것으로 확인된 이후 IS에서 활동 중인 서방 출신 젊은이들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대부분은 ‘대체 왜?’라는 의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주 미 국무부는 IS 대원을 포함해 이라크·시리아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 지하디스트가 약 50개국 출신 1만2000명이라고 발표했다. 유럽연합(EU) 정보당국은 이라크·시리아 등에서 활동하는 EU 국가 출신 지하디스트가 3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이 조국으로 돌아와 테러를 저지르는 것은 미국 등 서방이 가장 우려하는 바다.



“가난해서가 아니라 할 일이 없어서”



 과거엔 못 배우고 가난한 이들이 테러에 가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설이었다. 실제 과거 테러리스트들의 성장 환경은 극도로 열악한 경우가 많았다. 그들에게 테러 집단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탈출구였다. IS 대원이 된 서구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들이 탈출하려는 대상은 예전처럼 가난이나 무지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미국 노스이스턴대 정치학과 맥스 에이브러햄 교수는 “사람들을 테러 집단으로 이끄는 주요한 원인은 실업”이라고 말했다. “직업이 없어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정말 가난하다면 당장의 현실적 문제에 몰두하지 테러리스트가 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먹고살 만한 여유가 있으니 목적 없는 삶에 대해 고민하고, IS에서 대안을 발견해 가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터내셔널 비즈니스타임스는 “스스로 사회의 주변인이고 소외됐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일이 없어서 또는 심심해서 급진주의에 빠져든다”고 전했다.



 실제 IS의 외국인 대원 상당수는 청년 실업으로 몸살을 앓는 유럽 출신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최대 1만2000명으로 추정되는 IS엔 약 3000명의 외국인 대원이 있고, 그중 4분의 1은 영국 출신이다. 벨기에·프랑스 출신도 수백 명이고, 스웨덴인도 상당수인 것으로 추정된다. 좀처럼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럽의 청년실업률은 20%를 넘는다. 전체 실업률의 두 배다. 경기 침체의 고통은 소수자에게 더 가혹해 무슬림 청년의 실업률은 평균 청년실업률보다 두 배 이상 더 높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직업이 없는 무슬림 청년들은 유럽에서 극우 정당이 약진하면서 더욱 소외됐다. 극우파들이 높은 실업률의 원인을 외국 이민자들 탓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국제급진주의연구센터(ICSR)의 연구원 시라즈 마허는 “유럽 주류 사회에서 배척된 이들은 외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고 말했다. IS 외국인 대원을 다수 ‘배출’한 영국·프랑스·벨기에·스웨덴은 공통적으로 무슬림 인구 비율이 높은 국가다.



IS 대원 25% 영국·프랑스 등 외국인



유럽 출신 지하디스트가 늘어나자 “무슬림 이민자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등 반(反)이슬람주의가 점점 힘을 받고 있다. 이슬람에 대한 이런 맹목적 증오에 대해 중동 국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최근 쿠웨이트의 한 대학교수는 아랍타임스 기고문에서 무슬림 이민자에게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를 배신하는 것은 무슬림답지 않다”며 “ 이민자들은 살고 있는 나라에 충실하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사례는 현재 상황의 더 큰 책임이 종교 이데올로기보다 실업 문제에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이탈리아의 유력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최근 “이탈리아인 약 50명이 IS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정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18~25세인 이탈리아 출신 IS 대원의 80%는 이민 2세대가 아닌 이탈리아 가정 출신이다. 이들은 주로 ‘사상교육’을 전담하며 새로운 대원을 모집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탈리아의 청년실업률은 43%를 넘는다. 실업 문제가 야기한 절망과 이런 상황을 만든 사회에 대한 실망이 선진 유럽 사회를 지하디스트의 산실로 만들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주류 사회 향해 "무너뜨리겠다” 메시지



 1999년 미국 의회도서관 산하 연방조사기관이 펴낸 보고서 ‘테러리즘의 사회학과 심리학: 누가, 왜 테러리스트가 되나’는 “테러리스트가 된 이들은 직업이 없거나, 사회에서 도태되고 소외된 개인”이라고 답을 내렸다. 한 외국인 IS 대원이 SNS에 올린 영상에서 이런 분노가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여권을 찢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미국과 캐나다의 파워 엘리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당신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우리가 가고 있다.”



 26일 뉴스위크는 러시아 관영통신인 로시아 세고드냐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영국·프랑스·독일에서 3007명을 대상으로 IS에 대한 호감도를 물은 조사다. 이에 프랑스인의 16%가 IS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영국에서는 7%, 독일에선 3%대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젊은 층에서 호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뉴스위크는 “각국의 무슬림 인구 비율이 반영된 조사 결과”라고 풀이했다. IS가 절망한 유럽 청년들의 대안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결국 실업 문제의 해결이 곧 현 상황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경제 회복은 여전히 더디고, 유럽 국가들이 실업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 당분간 절망한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얘기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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