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소문 포럼] 병영 10년대계

중앙일보 2014.08.28 01:16 종합 28면 지면보기
오영환
논설위원
병영 쇄신책이 백가쟁명이다. 국민 개병제에서 일가견이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민·군이 더불어 크고 작은 방안을 쏟아내고 있다. 가혹행위의 사각을 줄이고 일벌백계하는 군의 조치는 병영 폭력이나 일탈 행위를 줄일 것이다. 총기난사나 집단구타 사망 사건을 보면 쇼크 요법은 불가피하다. 군에서 시범 케이스란 말의 서슬은 시퍼렇다. 사회에서 음주운전 단속의 그물망을 치고 적발 시 엄벌하는 것과 한가지다. 구타 신고 포상제, 생활관 수용인원 최소화도 효과가 적잖을 것이다. 대리운전 같은 파생 제도는 음주운전 근절의 공신이다. 그러나 기계적 대응이나 제도만으로 병영이 바로 설 것인지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도 짚어봐야 하지 않나 싶다. 바로 군의 전반적 문화다. 음주운전 근절과 교통 문화의 선진화가 별개인 것과 같다.



 하나는 우리 군의 아이덴티티다. 군은 왜 젊은이들이 복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병역 의무의 강제성으로 유지되는 군대는 모래알 조직과 같다. 그 답에 수긍해야 사명감이 생기고 동기가 부여된다. 존재 이유를 모르면 죽은 조직이다. 혼이 없는 계급사회일 뿐이다. 계급의 물리적 결합은 파열음을 내기 마련이다. 장교도 국가 간성 의식이 엷어지고 직업 군인화하고 있다. 오랜 평화의 독(毒)일지도 모른다. 젊은이가 왜 입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화적 해석과 답은 병영 쇄신의 필수 조건이다. 대북 대비태세를 넘어 평화통일과 갈등의 동북아 회랑, 역사의 교훈을 담을 필요가 있다.



 군이 지켜야 할 우리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이다. 북한을 상대로 한 우리 군의 최대 무기는 자유민주주의의 저력일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병영 내 반인륜적 행태는 이적 행위와 다름없다. 병영에 올바른 이념과 신념을 불어넣어야 한다. 하드웨어만 고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군만의 책임은 아니다. 군 복무를 신성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시민정신이 엷다. 로마군은 누구나 군 복무를 자랑스러운 권리로 여겼던 초창기 시민군이었을 때 가장 강했다. 우리는 출산도 하기 전에 군 입대를 걱정하는 시대가 됐다. 군사기술 혁명·사이버전·드론전을 비롯한 전장의 대변환기에 병영의 안전이 최대 관심사가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다른 하나는 민·군 관계다. 군은 민간과 다르고, 달라야 한다. 병영은 하계 학생 캠프가 아니다. 그러나 병영은 우리 사회의 주류적 흐름과 동떨어져선 안 된다. 국민의 군대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높아진 인권 의식에 걸맞은 사법 체계는 급선무다.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군내 정의는 단결의 모태다. 양극화 사회의 그늘에서 성장한 세대들에 대한 배려의 정신도 빼놓을 수 없다. 장교의 유연한 리더십과 희생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그렇다고 사회 영합주의는 안 된다. 기강이 살아 있고 훈련으로 단련된 유기체여야 국가의 보루가 될 수 있다. 병영 혁신은 시대적 요청이지만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조직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 본령이다.



 병역 제도와 병력 규모에 대한 섣부른 논의는 경계 대상이다. 미국에 이라크전은 21세기와 20세기가 만난 전쟁이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아프가니스탄전도 마찬가지였다. 안정화 작전에 필요한 지상군의 역할을 과소평가했다. 지금은 세계적 병력 적자(赤字)의 시기다. 로버트 게이츠 전 미 국방장관은 "지상군을 아시아나 중동으로 보내야 한다고 하는 국방장관의 두뇌는 검증받아야 한다”고 했다. 재임 마지막 연설에서다. 자주 국방, 통일 시대를 염두에 두지 않는 논의는 비현실적이다.



 지금 병영 혁신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리셋 버튼을 눌러야 할 곳이 한둘이 아니다. 폭력 근절책을 비롯해 동력을 받은 분야는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간단하고 명쾌하고 빠른 해법은 없다. 교육·훈련, 간부 리더십, 인재 양성과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네트워크전 이론의 주창자인 시브로스키(미국 해군 제독)는 “군에 신사고를 주입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구사고를 빼내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도 별반 차이가 없지 싶다. 10년 앞을 내다보는 밀알의 정신도 절실한 시점이다.



오영환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