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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민과 국회 멀어지게 하는 방탄국회

중앙일보 2014.08.28 01:11 종합 29면 지면보기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민주정치의 중심은 의회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는 의회의 구성과 활동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오늘날에도 의회는 대통령이 없는 영국·일본 등과 같은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도 민주정치의 중심으로 기능하고 있다. 정당국가화, 행정국가화 경향에 따라 의회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약화된 측면도 있지만, 의회는 여전히 민주정치의 전당인 것이다.



 의회의 민주적 기능에 대한 기대에 비해 의회의 현실적 활동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선진국에서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최근 우리 국회가 보여주는 실망스러운 모습들은 그 정도를 넘어선 것으로 느껴진다. 과거에 비해 국회의원들의 자질이 향상되었고, 정당 공천을 비롯한 선거제도 및 정치자금 관련 법제가 개선되었고, 국회 활동 또한 활발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느끼는 국회의 현실은 여전히 후진적인 수준이다.



 국민들의 눈높이가 너무 높은 탓이라고 말하지는 말자.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압축적 성장과 발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 발전만이 거북 걸음이라면 그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 및 방탄국회 논란에서 보듯이 국민의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구태를 답습하는 태도는 그동안의 정치 발전조차 사상누각(沙上樓閣)이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영국에서 의회제도가 발전하던 당시 국왕과의 대립 속에서 의회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탄생되었던 것이 의원들의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이다. 특히 불체포특권은 국왕이 각종 범죄혐의를 이용해 의원들을 체포함으로써 의회의 의사정족수 내지 의결정족수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즉 불체포특권은 의원들에 대한 면죄부가 아니라 의회의 정상적 활동을 위해 인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의회가 활동하는 회기 중에만 인정될 뿐만 아니라 증거가 명백한 현행범의 경우에는 불체포특권의 예외가 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의원들의 불체포특권을 주장하기 위한 의도로 임시국회를 소집하는 사례들을 만들면서 ‘방탄국회’라는 말까지 생겼다. 대통령의 실정(失政)을 총리가 대신 책임지고 물러나는 경우를 지칭하는 ‘방탄총리’라는 말과 더불어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된 것이다. 한때 방탄국회는 서슬 퍼런 독재정권 시절에 야당 의원들을 보호하는 최후 수단처럼 이야기된 적도 있다. 하지만 과연 지금 그런 논리로 방탄국회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미 제15대 국회와 제16대 국회에서 44개월 연속으로 국회가 소집되어 방탄국회 문제에 대한 비판이 매우 날카로웠던 적이 있었다. 일을 열심히 하기 위한 국회가 아니라, 불체포특권을 위해 명목상으로만 국회를 열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국회의원들의 특권 내려놓기 운동이 벌어지는 등 개선의 모양새를 보였던 것도 잠시에 그쳤다. 지금은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특권과 특혜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헌법상 보장되는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무시하거나 아예 폐지하자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독재화할 경우에 대비해 국회의 기능 확보를 위한 비상수단은 필요하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의원들의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은 세계 각국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를 특정 의원의 보호를 위해 오·남용하게 된다면 불체포특권 자체의 존립 기초가 약화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국회의 위상과 역할에도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모든 권력과 권위의 근원은 주권자인 국민이다. 그렇기 때문에 힘 있는 권력기관들도 국민의 이름을 앞세우기를 즐겨 한다. 그러나 정작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운다면 결코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 여야의 갈등과 대립을 지켜보면서 다수의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양비론에 빠져들게 된다. 여야가 국민의 의사를 최대한 수렴하고 반영하기 위해 스스로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이려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의식하면서 상대방보다는 문제가 적다는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치적 부동층이 어느 때보다도 많아진 지금은 우리 정치의 최대 위기일 수 있다. 한국형 정치적 무관심이 확산되고, 투표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질 경우에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기회일 수도 있다. 여당이나 야당이 진정한 자기혁신을 통해 국민들의 마음속에 뿌리내리는 민주정당이 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제3의 정당이 등장해 새로운 정치적 비전을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우리 국민은 진정한 의미의 새 정치에 목말라 있다. 현재 벌어지는 방탄국회는 국민과 국회의 거리를 보여주는, 그 해결의 시급함과 중대함을 일깨워주는 하나의 계기라 할 수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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