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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최경환, 국회의 이주영이 돼라

중앙일보 2014.08.28 01:03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재
논설위원
이주영은 4월 16일 그날, 진도 팽목항에 눌러앉았다. 꼬박 넉 달. 그는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라면을 끓여 먹으며 매일 진도체육관을 찾아 유족들의 얘기를 들었다. 수염도 깎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팽목항 지킴이’란 별명도 얻었다. 뒤늦게 그런다고 유족의 얼어붙은 마음이 풀리겠느냐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듣지 않았다. 그는 그게 “자신의 일이며,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해양수산부 장관이 열일 제쳐 놓고 세월호에만 매달리는 바람에 나랏일이 얼마나 차질을 빚는지 아느냐는 비난에도 귀를 막았다. 그 결과 그가 얻은 것은 ‘진정성’이었다. 진정성은 뚝심과 실천으로만 얻을 수 있다. 나는 그가 합목적적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기질로 나눌 때 흔히 합리성과 합목적성을 따진다. 합리성은 논리와 규율 쪽이다. 관료·교수에게 맞는다. 합목적성은 수단·방법 불문, 목표만 달성하면 된다. 정치인 쪽이다. 이주영은 정치인 출신 장관이기에 팽목항에서 그렇게 버텼을 것이다. 그가 합리성을 따졌다면 “들이는 품에 비해 성과가 너무 적다”며 해수부의 다른 일들에 시간을 썼을 것이다. “세월호 해결 없이는 국정도, 해수부도 없다”는 합목적성이 먼저였기에 그는 유족의 분노를 달래는 일에 집중했을 것이다.



 이주영을 새삼 떠올린 건 최경환 경제부총리 때문이다. 나는 그가 국회의 이주영이 됐으면 좋겠다. 민생·경제 법안을 통과 시켜 줄 때까지 국회 본회의장 앞마당에 몇 날 몇 달이든 천막을 치고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라면을 끓여 먹으며 매일 의원들을 붙잡고 호소해줬으면 좋겠다. 이주영처럼 수염을 깎지 않으면 더 좋을 것이다.



 하필 왜 최경환이냐면 대답은 이렇다. 그는 누구보다 민생·경제 법안의 중요성을 안다. 그는 26일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이달 중 국회가 9개 민생·경제 법안만이라도 우선 통과시켜 달라”고 읍소했다. 담화문 발표도 이례적인데 관련 장관 6명을 대동해 같이 읊조리게 했다. 그리곤 “경제 맥박이 약해지고 있다”고 정치권을 압박했다. 그는 이달 초에도 예정에 없던 경제장관회의를 소집해 “민생 법안 통과 없이 경제활성화는 불가능하다”며 “(열일 제쳐놓고 국회의원 설득하는 데) 장관들이 직접 뛰라”고 주문했다.



 그는 또 누구보다 절박하다. ‘지도에 없는 길’을 선택한 것도 그다. 재정을 풀고, 세제를 고쳤으며, 공공기관까지 동원했다. 부동산을 띄운다며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도 풀고 한국은행을 압박해 금리도 낮췄다. 진단도 처방도 직접 했다. “극약 처방이 될 수 있다” “가계·국가 부채만 늘릴 수 있다”는 우려와 비판에는 귀를 막았다. 그래 놓고 경제를 못 살리면, 그래 놓고 실패하면 국민이 용납하겠나. 누구보다 그가 이런 사실을 잘 안다. 그러니 장관들을 불러놓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라고 한 것 아니겠나.



 직(職)을 거는 정도로는 안 된다. 목숨마저 걸겠다는 각오여야 한다. 물론 그가 목숨을 건다고 민생·경제 법안이 국회를 쑥 통과할 리도 없고, 법안이 통과된들 경제가 기적의 영약을 먹은 듯 벌떡 일어선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그것마저 안 되면, 그래서 지금 부어놓는 마중물마저 속절없이 사라지고 나면, 우리 경제엔 정말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지 모른다.



 1기 경제팀과 달리 최경환은 박근혜 정권에 지분이 있다. 지분 있는 정치인 출신 관료에겐 존재증명이 필요하다. 그가 단순히 관료라면 합리성을 택할 것이다. 국회에 대고 계속 구호만 외칠 것이다. 어차피 안 될 일, 생색만 내고 책임은 국회에 떠넘기는 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합목적적 정치인이라면 국회 앞에 천막을 치고 눌러앉을 것이다. 국회의 이주영이 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가 무기한 단식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딸 하나에 목숨 걸겠다는 ‘유민 아빠’도 있는데, 5000만 국민을 위해 목숨 걸 경제부총리 하나 없어서야 되겠나며. 그것이 최경환식 존재증명이 될 것이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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