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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별 볼 일 있는 날] 조인성 이 남자, 욕망해도 될까

중앙일보 2014.08.27 02:08 종합 20면 지면보기
조인성이 주연을 맡은 영화 ‘비열한 거리(2006)’의 한 장면. [중앙포토]
이제는 노희경 작가의 페르소나가 된 것일까? 군 제대 후 복귀작 ‘그 겨울, 바람이 분다’(SBS, 2013)에 이어 또 한번 노희경 작가· 김규태 PD 콤비와 호흡을 맞춘 조인성(33) 얘기다. 그가 공효진과 함께 출연한 SBS 수목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가 순항 중이다. 시청률은 10% 내외지만, 젊은 시청자들의 반응은 그 이상이다. 빼어난 영상미, 특유의 심리묘사, 쿨하고 성숙한 캐릭터와 멋진 배우들이 호평의 중심에 있다. 노희경이라면 말랑말랑한 판타지 없이 삶의 상처를 날 것 그대로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다. 그녀의 전작들에 비하면 심히 가벼운 터치지만, 상처라는 주제에는 변함없다. 그 상처의 중심에 대표 꽃미남 배우 조인성이 있다.



 조인성이 맡은 장재열은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자신감 넘치고 자기 멋대로고 까칠한 구석도 있다. TV 토크쇼에 함께 출연했다 알게 된 정신과 의사 지해수(공효진)와 밀당 로맨스를 나눈다. 한편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동생에게 복수심을 불태우는 형(양익준)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얼핏 외피는 경쾌하고 세련된 취향의 로맨스물이지만, 바닥엔 상처와 가족에 대한 묵직한 이야기가 있다. 어린 시절 엄마의 외도 장면을 본 공효진은 섹스가 잘 안된다. 조인성도 자아분열과 환상에 시달린다. 그 역시 어린 시절 의붓 아버지의 폭력과 죽음을 목격한 트라우마가 있다. 드라마는 공효진이 일하는 정신과 병동을 오간다. 여기서 마주치는, 얼핏 비정상으로 보이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의 힘으로 치유해가면서 ‘괜찮아’ ‘사랑해’라고 말하는 드라마다.



 사실 꽃미남의 대표 주자인 조인성은 로맨스의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완벽한 외모에 비해 극중 평탄한 사랑의 주역인 적이 별로 없다(초기작을 제외한 출세작들이 다 그렇다). 깊은 상처에 시달리거나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었다. 재벌남이지만 사랑하는 여자(하지원)를 가난한 연적에게 빼앗기고 연인을 쏴 죽였다(SBS ‘발리에서 생긴 일’). 로맨스물의 간판 스타지만 뻔한 재벌 2세 왕자님 캐릭터도 많지 않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는 시각장애인인 재벌 여자(송혜교)에게 오빠라고 속이며 접근한 호스트였고,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는 3류 조폭의 중간 보스였다. ‘쌍화점’에서는 고려 왕과 왕비와 얽히는 양성애자 호위무사라는 파격적 캐릭터였다. ‘쌍화점’,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비열한 거리’ 모두 결말은 파국이었다. 외모의 아름다움이 그 비극성을 배가시킨달까. 아마 상처 전문 작가 노희경이 그를 두번이나 낙점한 이유도 여기 있는지 모른다.



 조인성은 지금 대세가 된 꽃미남 스타 시대를 연 주역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중반 함께 주목받기 시작한 강동원 등과 함께 ‘꽃미남’이란 용어를 탄생시켰다. 이전에도 미남 배우들은 많았지만 이들은 달랐다. 여성에게만 허용되던 ‘꽃’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모델 출신에 큰 키, 가는 몸매, 여성 못잖게 아름답고 작은 얼굴, 빼어난 패션 감각 등을 공통으로 했다. 단순히 미남 배우의 득세가 아니라 남성상의 변화였다. 성적 욕망을 주체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여성 시청자들은, 이들의 아름다움을 공공연히 품평하고 적극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조인성은 극중 우는 연기로도 주목받았다. ‘꽃’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전유물이던 ‘눈물’ 연기다. 연상인 고현정과 호흡을 맞춘 ‘봄날’(SBS), ‘피아노’(SBS)에 이어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상처받은 재벌 2세인 그가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눈물을 참다 절규하는 장면은 아직도 패러디될 정도로 유명하다. 조인성 하면 떠오르는 장면 중 하나다.



 군 제대 후 출연한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와 ‘괜찮아 사랑이야’를 무난하게 흥행시킴으로써 조인성은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그의 다음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사실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그의 연기에는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다. 마치 CF나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처럼 너무도 아름답게 짜여진 TV 화면 속에서 가끔은 그가 화보 속 주인공처럼 비춰진다는 문제다. 패션 화보에서 툭 튀어나온 듯, 한 순간도 멋지지 않은 적이 없고, 한 순간도 스타일과 매력이 포기 안되는 모습이다. 물론 이것은 배우 조인성의 문제라기 보다는, 리얼리티 보다 ‘뽀샵’ 화면을 택하는 탐미적 연출의 결과로 보이지만 말이다.



 극단적인 자기 분열 상황, 겉으론 자신감 넘치지만 내면은 불안하고, 허세와 공허를 오가는 장재열의 복잡한 심리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가가 앞으로 그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드라마는 이제 막 그를 둘러싼 가족과 기억의 비밀을 한꺼풀씩 벗겨내기 시작했다. 이제 멋진 장재열은 됐다. 제대로 상처받은 장재열을 보여줄 때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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