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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황순원문학상 본심 후보작 ⑨ 시 - 이준규 '마트료시카' 외 9편

중앙일보 2014.08.27 01:34 종합 25면 지면보기

마트료시카


그는 반복한다, 그냥 좋으니까

창을 조금 연다. 언젠가, 너는 마트료시카를 가지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무어냐고 했다. 너는 러시아 인형이라고 했다. 너는 중국 인형도 좋아했다. 나는 너에게 중국 인형이라는 노래를 들려주고 중국 인형이라는 소설도 얘기해주었다. 너는 모두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는 오늘 고케시를 보았다. 일본 인형이다. 나는 그것을 너에게 주고 싶다. 귀엽고 오래되고 조금 두려운 것으로. 그날, 비는 내리지 않았다. 나는 너에게 나의 숲을 주고 싶었다. 조금도 두렵지 않은 완전한 숲을.



이준규는 다작을 한다. 대신 절차탁마 하지 않는다. 10~20분 안에 한 편을 쓰고 잘 고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고치지 못하는 것 이다. 그는 “시를 쓴 순간의 느낌이나 생각이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준규(44)는 반복한다. 반복함을 반복한다. 어지럽다. 그러나 계속된다.



 2000년 계간 ‘문학과 사회’로 등단한 시인은 다섯 권의 시집을 펴냈고, 줄곧 반복에 관심을 기울였다. (모든 시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는 한 낱말을, 한 문장을 시 한 편 안에서 끊임없이 다시 적는다. 그의 시를 처음 읽는 사람이라면 “단어가 참 무의미하게 나열되어 있군”이라며 심드렁해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읽어보자. 읽을수록 코끝이 시큰해진다. 쓸쓸해진다. 어느 순간 눈물이 날 수도 있다. 그리고는 믿게 된다. 시인이 모든 걸 걸고 이 문장을 쓰고 있구나. 이준규의 반복은 반복 그 이상이다. 시인에게 묻는다.



 - 반복하는 이유가 뭔가.



 “시를 쓸 때 막연하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그걸 언어로 바꾸는데 그럴듯한 구절이 만들어지면 반복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 구절이나 그 단어만 말하고 싶은 거니까. 반복하는데 쾌감을 느끼는 것 같다. 마음에 드는 뭔가가 있으면 지겨워질 때까지 반복하고 싶다.”



 - 반복의 효과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좋아서 반복한다는 얘긴가.



 “ 어떤 효과를 노리고 시를 써본 적은 없다. 좀 더 대중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해야 하나 망설일 때는 있다. 하지만 적당히 하고 만다. 잘 만들어진 것, 깔끔한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 ‘아 이거 절창이네’를 안 좋아한다. 삐걱거려야 한다. 문학이 감동을 주려면 작가 자신이 흔들려야 한다. 불안하고 괴로운 게 드러나야 한다 .”



 어린 시절의 이준규는 그림을 그리거나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다. 어쩌다 시를 쓰게 됐는데, 그 이유는 사람을 안 만나도 되고 재료비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업 시인이 됐다. 시만 쓰고 먹고 사는 일은 고되다. 그는 매일 자신의 책상에 앉아 시를 쓴다. 종종 산책을 하고 축구를 하고 술을 마신다. 아내에게 성의를 보이기 위해 가끔 시 쓰기 강의도 하고, 산문 청탁도 거절하지 않는다. 별일없이 단촐하고 부질없이 쓸쓸한 일상이 그의 시를 가로지른다. 지독하게 우울한 풍경도 자주 끼어든다. ‘봄밤은 흩날리는 꽃잎 같고, 나는 자꾸 어려져 눈물이 앞을 가리고//바보야, 바보야’(‘바보야’)처럼. 우연처럼 시작했지만, 이제는 퇴로가 없는 걸, 시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 걸 알고 있다.



  강동호 문학평론가는 “이준규의 시는 독립적인 개별 작품으로 읽어선 곤란하다”고 했다. 그의 시는 하나의 거대한 계열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는 장구한 언어의 드라마에 가깝다는 것이다. “끝없는 반복 속에서 현실을 받아쓰는 그의 시는 일상의 모든 것이 시적인 것과 다르지 않은 어떤 찰나의 순간을 개시하기 위해 부단히 움직인다. 시적 자의식의 최전선에 있는 가장 문제적 시인 중 하나다.”



 아마 이준규는 이 모든 수사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거창한 말을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언어로 울림을 주는 그의 시처럼 말이다.



글=김효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준규=1970년 경기 수원 출생. 시집 『흑백』 『네모』 『반복』 등, 박인환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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