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보고 생선구이에 소주 한잔 … 어르신들에겐 '홍대앞'

중앙일보 2014.08.25 01:55 종합 16면 지면보기
낙원동(樂園洞)에는 떡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머니가 가난한 이들에게는 2000원짜리 국밥에 잠시 시름을 잊고 안락함을 느끼는 ‘낙원’이고, 어르신들에게는 젊은이들의 홍대 못지않은 ‘복합 문화센터’의 역할을 담당한다.


낙원동의 또 다른 매력

 낙원동의 식당들에는 소위 ‘의리’가 있다. 돈 없는 이들을 위해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요, 외상에도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 2008년 국제금융위기가 사람들의 삶을 강타하자 낙원동의 면집 ‘부자촌’ 주인이 2000원 콩국수를 1000원으로 내린 일은 남다른 정이 있는 낙원동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37년째 순대국밥집을 하고 있는 강원도집 주인 서숙녀(76·여)씨는 “10년 전쯤 시골에서 상경해 매번 막걸리만 2통씩 마시던 대학생 둘에겐 매번 순댓국밥을 공짜로 주곤 했다”며 이것이 “낙원동에서 장사를 이어온 이들의 정서”라고 말했다.



 이런 정(情) 때문에 주머니 사정이 나아진 사람들도 잊지 않고 낙원동을 찾는다. 1951년 1·4 후퇴 이후 이곳에 자리 잡은 ‘원조 소문난 집’ 주인 권용희(68·여)씨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30~40년 전 단골 손님이 들러 여전한 가격에 감동한다”며 “가게가 사라졌을 때 실망할 손님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힘든 일을 계속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고작 10년째 단골이라 선배들 앞에 부끄럽다던 김휘모(62)씨는 “2000원짜리 우거지 얼큰탕(사진)에 국물은 무한 리필인데 맛도 기가 막히게 좋다”며 “지난겨울에 벤츠를 탄 여성이 국밥을 뚝딱 해치우는 걸 봤는데 맛이 별로면 찾아왔겠나”라고 말했다.



 낙원동은 어르신들에겐 또래들이 모여드는 핫플레이스다. 연간 200만 명의 노인이 이용하는 노인복지회관과 55세 이상 관람객은 2000원에 표를 살 수 있는 허리우드극장이 있어서다. 김창길(72)씨는 “노인복지회관에서 노닥대다 국밥 한 그릇 사 먹고 영화 한 편 본 뒤엔 임연수어 구이에 소주 한 잔을 걸친다”며 “1만원 한 장에 신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낙원동이 있는데 서울을 떠날 수 있겠나”라고 ‘낙원동 찬가’를 불렀다.



구혜진 기자

문채석(고려대 영어영문) 인턴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